아래의 글은 퍼온 글로서 20회 게시판에 서울대 권태억 교수가 게시했던 글입니다.
원래 3차례로 나누어진 글인데 여기에는 한꺼번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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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부는 미련한 놈이 한다고 하는 것은 사료 뒤적이는 것이 지겹기 때문인데, 간혹 재미난 사료에 접하게 되면 한 순간 피로가 사라진다. 혼자 보기 아까워 소개하는데, 양이 많아 몇차례 나누어 싣는다.
두세대 남짓에 우리의 사는 모습이 그렇게 많이 변하다니!
한*봉(韓*鳳) 1929년 씀 (별건곤, 1929년 12월호)
내가 첫번 장가를 가기는 열여섯살 중학교 2년급에 다니던 해 늦은 봄이었었다. 봄 방학에 시골집에 갔을 때에 선을 보러 오느니 어쩌느니 하는 것을 보기는 하였으나 그닥지 관심치도 아니하고 도루 서울로 올나 왔는데, 5월쯤하여 집에서 때아닌 서류편지(등기편지?)가 왔었다.
받아보니까 그 때면 한달에 겨우 20원씩 학비를 올려다 쓸 때인데 돈을 30원이나 보내면서 혼인 날이 아무 날이니 모자와 새 구두를 사가지고 곧 내려오라는 편지였었다. 나는 여러 동무들에게 절대로 장가를 가지 아니하고 버티겠다고 호언을 하고 그 돈을 무엇에
원래 3차례로 나누어진 글인데 여기에는 한꺼번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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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부는 미련한 놈이 한다고 하는 것은 사료 뒤적이는 것이 지겹기 때문인데, 간혹 재미난 사료에 접하게 되면 한 순간 피로가 사라진다. 혼자 보기 아까워 소개하는데, 양이 많아 몇차례 나누어 싣는다.
두세대 남짓에 우리의 사는 모습이 그렇게 많이 변하다니!
한*봉(韓*鳳) 1929년 씀 (별건곤, 1929년 12월호)
내가 첫번 장가를 가기는 열여섯살 중학교 2년급에 다니던 해 늦은 봄이었었다. 봄 방학에 시골집에 갔을 때에 선을 보러 오느니 어쩌느니 하는 것을 보기는 하였으나 그닥지 관심치도 아니하고 도루 서울로 올나 왔는데, 5월쯤하여 집에서 때아닌 서류편지(등기편지?)가 왔었다.
받아보니까 그 때면 한달에 겨우 20원씩 학비를 올려다 쓸 때인데 돈을 30원이나 보내면서 혼인 날이 아무 날이니 모자와 새 구두를 사가지고 곧 내려오라는 편지였었다. 나는 여러 동무들에게 절대로 장가를 가지 아니하고 버티겠다고 호언을 하고 그 돈을 무엇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