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한다
이 문장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전형적인 서구식 3형식 문형이다
내가 인식과 행동의 주체로서 , 타동사가 주로 쓰인다
테카르트의 보편적 회의론과 칸트의 보편적 근거 위의 과학적 진리론!
~을 ~한다 여기에는 `목적성과 방향성`이 잘 나타나있다
사후에 평가 분석도 가능토록 주체와 대상이 분명히 전제 되어있다
그러나 이성의 빛아래
오직 타자는 나의 종속되는 소유물이다
나와너는 주체적으로 서로 만날 수 없다
나만이 너`를` 객체로서 바라볼 뿐이다
이러한 과학적이고 방법론적인 객관주의로 우리는 몰인간성에 빠진다
이 도구의 실용주의로 인간이 과학의 노예로 전락되었다
이로서 자연은 인간의 발아래 정복되어야 할 그것이 되었다
나무`눈`이 숲의 `눈` 과의 경쟁에서 이겼다고 한다
우리의 사고에도 암암리에 ~을 ~한다의 언어구조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밥`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인간은 영혼과 더불어 산다
나는 너와 그들이 있음으로써 존재하고
나와 너 그리고 그들은 서로 무한책임진다
우리는 목적없이 `자연`대로 산다
~ 이다, ~ 롭다
서술어는 주로 자동사 또는 형용사다
조사와 접미사 그리고 복합어의 다양한 표현이 돋보인다
이문장은 존재론적 표현이다
나는 나다 ! 자유로운 사람만이 자유롭다!
영혼의 그림자는 우리가 찾아가야 할 안식처이다 !
동어반복의 비논리적인 표현인가?
이는 숲의`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전체적으로 자연과 일체가 되는
인격적 관계맺음 그자체이다
현대와 같은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도
여전히 파편화된 개별 지식보다는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감정, 영혼, 상상력 의 가치가 더 가치있는 시대가 아닐까?
균형잡힌 교양이 요구된다 !!
우리가 즐겨부르는 동요, 시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됨이 자주 보인다
~이다, ~롭다 의 글귀가 자주 눈이 띤다
그렇다 우리는 자연과 합일하여 일체가 된다
~을 ~한다의 야만적이고 문명의 이기가 서려있는
그런 표현은 거의 눈에 안 띤다
목적성과 방향성이 존재 하지 않는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새소리를 듣는다` 에서 우리의 작위성과 인위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새소리가 나의 귓전에 들려온다`
이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존재의 표현이다
신비롭고 주관적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하나로 되어 더불어 살아간다
이게 바로 삶이다
역사와 문화는 진보하지 않는다
우리의 옛삶이 더 아름답지 않았는가?
지금은 인간성이 파괴되는 살벌한 야만의 시대가 아닌가?
우리가 ~을 ~하자 라는 표현은 되도록 삼가자
서구의 양식이 우리의 언어 깊숙히 들어와 도무지 나가지 않는다
우리는 원래 주체와 객체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사고가 없었다
우리는 `나와너` 의 공동 운명체이다
우리는 원래 `하나`다
`나는 밥을 먹는다` 이 문장보다는
`밥먹는 내가 있다` 이표현은 존재탐구의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한다
숲(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너무 강조됨으로써
인간의 영혼이 신비의 형이상학의 노예로
전락될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숲과 나무의 `눈`의 한계에 직면해 있는 오늘날 현실!
더욱 우리의 그 `눈` 이 찬란하게 꽃피도록 하여야 한다
미래의 철학적 사유는 `~을 ~한다`의 도구적이고 과학적인 장악의 진리와
` ~이다, ~ 롭다`의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진리에서 부터 탈출하여
자연과 세계뿐만 아니라 존재와 진리의 영역까지 포함되고 있는 `깨달음`의 길로
나가야 한다
~을 ~한다의 인식론 관점과
~이다 의 완전치 못한 존재론 관점에서부터 벗어 날 수 있다
온전한 존재론적 관점이 구태여 말로 표현된다면
` 영혼이 본다` `영혼이 생각한다`
또는 존재의미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 즉
상징적인 의미외에 자신의 인격적 실체로서 가해지는 깨달음
으로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혼은 마음의 한 속성이다
영혼의 존재는 드높은 실재와의 합일로 인도하여
이로써 우리의 아픔이 치유되고
영혼의 위대함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인간의 언어로서 표현될 수 없는
그깨달음의 진리와 어떻게 한 몸이 될 수 있는가의 물음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문장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전형적인 서구식 3형식 문형이다
내가 인식과 행동의 주체로서 , 타동사가 주로 쓰인다
테카르트의 보편적 회의론과 칸트의 보편적 근거 위의 과학적 진리론!
~을 ~한다 여기에는 `목적성과 방향성`이 잘 나타나있다
사후에 평가 분석도 가능토록 주체와 대상이 분명히 전제 되어있다
그러나 이성의 빛아래
오직 타자는 나의 종속되는 소유물이다
나와너는 주체적으로 서로 만날 수 없다
나만이 너`를` 객체로서 바라볼 뿐이다
이러한 과학적이고 방법론적인 객관주의로 우리는 몰인간성에 빠진다
이 도구의 실용주의로 인간이 과학의 노예로 전락되었다
이로서 자연은 인간의 발아래 정복되어야 할 그것이 되었다
나무`눈`이 숲의 `눈` 과의 경쟁에서 이겼다고 한다
우리의 사고에도 암암리에 ~을 ~한다의 언어구조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밥`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인간은 영혼과 더불어 산다
나는 너와 그들이 있음으로써 존재하고
나와 너 그리고 그들은 서로 무한책임진다
우리는 목적없이 `자연`대로 산다
~ 이다, ~ 롭다
서술어는 주로 자동사 또는 형용사다
조사와 접미사 그리고 복합어의 다양한 표현이 돋보인다
이문장은 존재론적 표현이다
나는 나다 ! 자유로운 사람만이 자유롭다!
영혼의 그림자는 우리가 찾아가야 할 안식처이다 !
동어반복의 비논리적인 표현인가?
이는 숲의`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전체적으로 자연과 일체가 되는
인격적 관계맺음 그자체이다
현대와 같은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도
여전히 파편화된 개별 지식보다는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감정, 영혼, 상상력 의 가치가 더 가치있는 시대가 아닐까?
균형잡힌 교양이 요구된다 !!
우리가 즐겨부르는 동요, 시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됨이 자주 보인다
~이다, ~롭다 의 글귀가 자주 눈이 띤다
그렇다 우리는 자연과 합일하여 일체가 된다
~을 ~한다의 야만적이고 문명의 이기가 서려있는
그런 표현은 거의 눈에 안 띤다
목적성과 방향성이 존재 하지 않는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새소리를 듣는다` 에서 우리의 작위성과 인위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새소리가 나의 귓전에 들려온다`
이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존재의 표현이다
신비롭고 주관적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하나로 되어 더불어 살아간다
이게 바로 삶이다
역사와 문화는 진보하지 않는다
우리의 옛삶이 더 아름답지 않았는가?
지금은 인간성이 파괴되는 살벌한 야만의 시대가 아닌가?
우리가 ~을 ~하자 라는 표현은 되도록 삼가자
서구의 양식이 우리의 언어 깊숙히 들어와 도무지 나가지 않는다
우리는 원래 주체와 객체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사고가 없었다
우리는 `나와너` 의 공동 운명체이다
우리는 원래 `하나`다
`나는 밥을 먹는다` 이 문장보다는
`밥먹는 내가 있다` 이표현은 존재탐구의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한다
숲(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너무 강조됨으로써
인간의 영혼이 신비의 형이상학의 노예로
전락될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숲과 나무의 `눈`의 한계에 직면해 있는 오늘날 현실!
더욱 우리의 그 `눈` 이 찬란하게 꽃피도록 하여야 한다
미래의 철학적 사유는 `~을 ~한다`의 도구적이고 과학적인 장악의 진리와
` ~이다, ~ 롭다`의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진리에서 부터 탈출하여
자연과 세계뿐만 아니라 존재와 진리의 영역까지 포함되고 있는 `깨달음`의 길로
나가야 한다
~을 ~한다의 인식론 관점과
~이다 의 완전치 못한 존재론 관점에서부터 벗어 날 수 있다
온전한 존재론적 관점이 구태여 말로 표현된다면
` 영혼이 본다` `영혼이 생각한다`
또는 존재의미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 즉
상징적인 의미외에 자신의 인격적 실체로서 가해지는 깨달음
으로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혼은 마음의 한 속성이다
영혼의 존재는 드높은 실재와의 합일로 인도하여
이로써 우리의 아픔이 치유되고
영혼의 위대함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인간의 언어로서 표현될 수 없는
그깨달음의 진리와 어떻게 한 몸이 될 수 있는가의 물음이 우리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