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눈`이 서양화 `눈`으로 완전동화되어 감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나 스스로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하고자 한다
거울속에 비친 ` 그` 는 바로 나 자신인것을 깨달고 되돌아 와
주체적인 `나` 와 주체적인 `타자` 와의 인격적 만남으로서 관계맺음을 이해하자
또한 항상 열려있는 경험(존재론적 경험)속에서
나와 너가 ` 마음` 의 만남을 가능케하는 존재론적 관계맺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국어사전에 `마음` 이란 `사람의 몸에 깃들여서 지성 ,감정 ,의지등의 정신활동을 하는것이다`
라고 나와있다
고어에도 마음은 언어로 나타나고, 본디 말의 뜻을 지니는 말이다
말의 고형은 `묻`이다 묻다의 `묻`이 말의 고형이다
또한 만주어에서 보듯이 `소리`란 말과 동원어다
언어가 사고(마음)을 따라간다는 말이다
여기서 `마음`의 3요소 (지성 ,감정, 의지 )중 지성은 도덕으로서 윤리적인 측면이 강하고
감정은 심리적인 측면이 , 의지는 정신 ,의식 ,영혼을 의미하는 존재론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윤리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은 보편성을 띄고 있으나
영혼은 시대정신 즉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특수성과 유일회성을 띤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너는 누구냐 즉 정체성을 묻는다면 `나는 나다` 라고 우리는 (전화에서도) 대답한다
우리는 나와 너의 마음(언어의 음색과 리듬)으로서 그 말뜻을 이해할수 있다
서양의 논리학에서는 무의미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 동어 반복에 불과 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서양사람들은 `나는 철학자다` ` 나는 소설가다` `나는 시인이다` 라고 답한다
그들은 분할적 자아를 소개한다 즉 그들의 신분은 복수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양은 근대 철학의 이성의 빛 아래서 부분(나무) 에 집착하여 사물의 현상과 실재를 인식하였다
그러나 주체적인 `나` 는 타자를 객체로 바라보게 됨에 따라 사물자체(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보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것이다
이들은 합리성( 이성)이라고 불리우는 여신을 우상화 한 것이다
한편으로 망원경과 현미경을 통한 과학문명이라는 영광된 전리품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 나는 나다` 여기서 나는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서 포괄적인 자아를 의미한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전체(숲)을 보는 `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거시적 안목으로 신비와 영혼통하여 존재의 의미를 보고자 한 것이다
`나는 나다`라고 말하기위해서는 나와 너의 인격적 만남을 전제로 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서양과 우리의 관점을 한번 존재론적으로 살펴보면
인간의 이해(완결될수 없는 경험과 인식) 는 숲(전체)와 나무(부분)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실현된다
나무는 언제나 숲에서 이해되어야한다
나무로는 숲의 구성은 완결될수 없다
마찬가지로 숲(전체)에서 나무(부분)이해도 완결될수 없는 과제이다
우리는 신비로운 숲(전체)를 경험할 수가 없는것이다
경험하지 못한 숲에서 나무를 이해해야 하는 것도 이해 자체가 완결될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숲을 보는 세계관과 나무를 보는 세계관의 한계를 뛰어넘어
항상 열려있는 경험(존재론적 경험)속에서
나와 너가 ` 마음` 의 만남을 가능케하는 존재론적 관계맺음의 이해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너는 누구냐?` `나는 나다`라는 의미의 의미는 무엇인가 ? 를
다시 이해의 지평에서 새겨보면
이와같은 질문과 대답은 선문답형식을 띤다
자기 스스로 `왜` 이것을 질문하는가 ?
`왜` 이것을 묻지 않으면 안되는가 ? 라는 긴박한 물음을
먼저 자신에게 끊임없이 추구하는것이다
선문 답은 인식론 중심의 관점에서 존재론 중심의 관점으로 변화이다
의미의 의미에 대한 이해는 은유.환유.비유를 통한 상징적 의미외에 그것이
자신의 인격적인 실체에 가해지는 깨달음으로의 내것 만들기이다
`너는 누구냐 `,`나는 나다 `
이러한 우리의 존재물음의 의미의 의미는 무엇인가 ?
나 스스로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하고자 한다
거울속에 비친 ` 그` 는 바로 나 자신인것을 깨달고 되돌아 와
주체적인 `나` 와 주체적인 `타자` 와의 인격적 만남으로서 관계맺음을 이해하자
또한 항상 열려있는 경험(존재론적 경험)속에서
나와 너가 ` 마음` 의 만남을 가능케하는 존재론적 관계맺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국어사전에 `마음` 이란 `사람의 몸에 깃들여서 지성 ,감정 ,의지등의 정신활동을 하는것이다`
라고 나와있다
고어에도 마음은 언어로 나타나고, 본디 말의 뜻을 지니는 말이다
말의 고형은 `묻`이다 묻다의 `묻`이 말의 고형이다
또한 만주어에서 보듯이 `소리`란 말과 동원어다
언어가 사고(마음)을 따라간다는 말이다
여기서 `마음`의 3요소 (지성 ,감정, 의지 )중 지성은 도덕으로서 윤리적인 측면이 강하고
감정은 심리적인 측면이 , 의지는 정신 ,의식 ,영혼을 의미하는 존재론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윤리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은 보편성을 띄고 있으나
영혼은 시대정신 즉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특수성과 유일회성을 띤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너는 누구냐 즉 정체성을 묻는다면 `나는 나다` 라고 우리는 (전화에서도) 대답한다
우리는 나와 너의 마음(언어의 음색과 리듬)으로서 그 말뜻을 이해할수 있다
서양의 논리학에서는 무의미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 동어 반복에 불과 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서양사람들은 `나는 철학자다` ` 나는 소설가다` `나는 시인이다` 라고 답한다
그들은 분할적 자아를 소개한다 즉 그들의 신분은 복수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양은 근대 철학의 이성의 빛 아래서 부분(나무) 에 집착하여 사물의 현상과 실재를 인식하였다
그러나 주체적인 `나` 는 타자를 객체로 바라보게 됨에 따라 사물자체(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보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것이다
이들은 합리성( 이성)이라고 불리우는 여신을 우상화 한 것이다
한편으로 망원경과 현미경을 통한 과학문명이라는 영광된 전리품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 나는 나다` 여기서 나는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서 포괄적인 자아를 의미한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전체(숲)을 보는 `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거시적 안목으로 신비와 영혼통하여 존재의 의미를 보고자 한 것이다
`나는 나다`라고 말하기위해서는 나와 너의 인격적 만남을 전제로 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서양과 우리의 관점을 한번 존재론적으로 살펴보면
인간의 이해(완결될수 없는 경험과 인식) 는 숲(전체)와 나무(부분)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실현된다
나무는 언제나 숲에서 이해되어야한다
나무로는 숲의 구성은 완결될수 없다
마찬가지로 숲(전체)에서 나무(부분)이해도 완결될수 없는 과제이다
우리는 신비로운 숲(전체)를 경험할 수가 없는것이다
경험하지 못한 숲에서 나무를 이해해야 하는 것도 이해 자체가 완결될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숲을 보는 세계관과 나무를 보는 세계관의 한계를 뛰어넘어
항상 열려있는 경험(존재론적 경험)속에서
나와 너가 ` 마음` 의 만남을 가능케하는 존재론적 관계맺음의 이해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너는 누구냐?` `나는 나다`라는 의미의 의미는 무엇인가 ? 를
다시 이해의 지평에서 새겨보면
이와같은 질문과 대답은 선문답형식을 띤다
자기 스스로 `왜` 이것을 질문하는가 ?
`왜` 이것을 묻지 않으면 안되는가 ? 라는 긴박한 물음을
먼저 자신에게 끊임없이 추구하는것이다
선문 답은 인식론 중심의 관점에서 존재론 중심의 관점으로 변화이다
의미의 의미에 대한 이해는 은유.환유.비유를 통한 상징적 의미외에 그것이
자신의 인격적인 실체에 가해지는 깨달음으로의 내것 만들기이다
`너는 누구냐 `,`나는 나다 `
이러한 우리의 존재물음의 의미의 의미는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