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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종, 홍낙민, 최필공등이 고문을 당하다 죽었다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천주교를 믿었다가 그만 두었다는 서약을 받고 사형은 면하고 전라도로 귀양 보내었다.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붓뜰려가 참혹하게 죽어 갔다 .신부 주문모는 양심 상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자기 발로 관청에 찾아가 자수한다 .
천주교를 퍼뜨린 사람은 나 입니다 ,천주교를 믿은 사람들은 죄가 없으니 나를 죽여 주십시요
의금부에서 주문모를 데려다 죽이지는 않고 배후를 캐기시작했다
그래 네가 그동안 전도한 신도가 있으렸다. 도대체 몇명이 드냐?
대 여섯명 됩니다
거짓말 마라 . 지금 표면에 나타나지 않아서 그렇지 너는 알고있을거다
저는 조선사람들 전체와 관계 않고 몇몇 간부들만 상대 했습니다
그러면 조선인 간부 이름은 알겠구나 ,어서 대라...
저는 청국인 신부라 얼굴만 알지 이름은 모릅니다
이놈이 우리를 희롱하나 ? 괫씸한 놈
주문모는 조선 신도의 이름을 끝 까지 대지 않았다 .의금부에서는 더 이상 묻지않고 옥에 가둔뒤 음식을 죽지 않을 만큼만 적게주고 주문모를 문초해 결국 조선인 명단을 받아냈다 .의금부는 그의 말을 근거로 신도들을 잡아들여 매를 때려 죽이었는데 그수가 300 명에 이르렀다
주문모도 한강에있는 새남터 사형장에 데려다 죽이고만다 .
정순 왕비는 11세의 순조 대신 수렴 청정하자 그야말로 보이는 것이 없게되었다 .수렴청정이란 임금이 어려서 어린 왕을 대신해서 어미니나 할머니가 대신 정치를 맡아 하는것을 말한다 .수렴청 정이란 말은 삼강 오륜에서 남여가 유별한지라 임금이 어려 어머니나 할머니가 임금 역활을 대신 하려니 남자 대신 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 남여간의 내외를 분명히하기위하여 임금 역활을 대신하는 할머니 정순왕비가 대신들과 자기 사이에 발을 내리게하고 정순왕비의 얼굴을 자세히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명령을 내리게 하였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수렴청정을 하면서 첫 조치로 천주교인 탄압을 지시한 정순왕비는 다음으로 정조때 역적으로 몰려 죽은 자기 오빠 김구주를 신원하여 이조판서 라는벼슬을 추서하하는 한편 아직 살아있는 다른 오빠 김관주에게는 조정일을 알아서 모두 처리하고 정순대비에게 결과만 보고 하라하였다 .
정치를 자기 오라버니에게 모두 위임 한것이나 다름 없었다 .
이조판서 윤행임이 그꼴을 보다 못하여 정순대비에게 대들었다.
외척이 나라일을 좌지 우지하면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고정하십시요
외척들이 들고일어났다
아니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다 있나?
정순대비는 그 날자로 윤행임을 이조판서에서 해임하고 전라 감사로 멀찍암치 내 쫓았다 .
임시발과 윤가기라는 사람이 조정을 욕하는 글을 올렸다
나라가 망하려면 암탉이 운다더니 한국가의 조정이 외척의 소굴이 되어서 되겠는가 ? 앞으로 얶떻게 되나 두고보자
그런 내용이었다 .정순왕후가 발끈하였다.
어떤 놈이 이런 글을 올렸느냐
정순왕후의 오빠 김관주가 임시발과 윤가기를 잡아 들였다.윤가기는 윤행임과 먼 친척뻘 이었다 ,김관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윤행임도 이사 건에 끌어 들였다.
임시발과 윤가기는 윤행임의 조종을 받고 이런 글을 올린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윤행임과 이놈들을 모두 처형 토록 해 주십시요
정순왕후는 전후 좌우도 묻지 않고 때는 왔다고 두명을 먼저 처단하고 윤행임도 전라감사로 부임하기도 전에 사약을 내려 죽이고만다.
모두가 정순왕후와 김관주의 작난이었다 .
순조2 년 순조는 안동 김씨인 김조순의 딸을 왕비로 맞아 들인다 .
정순대비는 경주 김씨였다 .정순왕후는 경주 김씨 집안에서 왕비를 간택 하려 하였는데 엉뚱하게도 순조의 생모인 가순궁 박씨가 반대하는바람에 안동 김씨 김조순의 딸을 간택한것이다.
이렇게되자 조정은 정순왕후의 경주 김씨.김조순의 안동 김씨,생모 가순궁 박씨의 반남 박씨등 외척들이 판을 치기시작하였다.
반남 박씨들과 안동 김씨가 손을 잡고 정순왕후 경주김씨에 대항 하였으나 경주김씨는 정순왕후가 있는한 대항 할수 없었다 .
그러던중 별안간 순조 5 년 정순대비가 죽는다
경주 김씨들의 기둥이 쓸어 진것이다.
조정을 좌우 할수있는 것은 안동 김씨 김조순의 세상으로 변하였다 김조순은 자기 의심복인 서매수를 영의정에,한용귀를 좌의정에 친척 김달순에 우의정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반남 박씨 두목격인 박종경도 당상관으로 올려주었다.
경주김씨들은 자연히 모두 밀려나가고 조정에는 한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김조순은 정순왕후가 하던 대리청정을 사실상 떠 맡다 싶이하였다 .
조정은 안동 김씨 일문인 김이도, 김달순, 김이익,김명순이 좌우하였다.
김조순은 우선 경주김씨의 두목격이며 정순왕후의 오라비인 김귀주가 이미 죽었지만 그의 관직을 삭탈 해버리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게 되었을때 방관했다는 죄목 이었다.정순왕후가 대리청정때 신원한것을 부정함으로서 역적으로 몰아 버린것이다.
이어 김조순은 정순 왕후의 오라비 김관주를 죽이고 경주김씨의 대표격인 김한록의 벼슬도 박탈시키고 혹시 있을지 모를 김한록의 아들 김일주의 행동을 트집 잡아 그도 죽이었다.
조정은 김조순의 세상이되고 말았다.
경주 김씨인 정순왕후와 그녀의 오라비 김관주가 정권을 잡고 좌지 우지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리고 왕의 장인인 안동김씨 김조순이 나타나 온 나라의 권력을 한손에 휘어 잡고 티격 태격하는사이에 골탕을 먹는 것은 백성들이었다.
조정은 백성들이 잘 살던 말던 세금만 걷워 들이고 백성들 돌 볼 생각은 뒷 전이었다
권력을 잡은 안동 김씨 일파는 우선 굶주린 이리떼 처럼 재산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백성들은 굶주리는데 안동 김 씨들과 반남 박씨 일문들은 호화스러운 생활의 극치를 이루었다.
하늘도 무심하여 봄가뭄이 극심 하였다.백성들은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아 농사를 짓지못하고 울상이었다 .
아, 하늘도 무심 하구나 .비 까지 않 내려주니......권력을 잡은 자들은 저의 배가 부르니 백성들이야 어떻게 살던 말던 세금 걷기에만 혈안이니 우리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
백성들은 한숨만 짓고있었으나 정치를 하는 권력층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가뭄이 6 월을 훌쩍 넘자 모심기는 포기했다 .
조정에서는 백성들에게 크게 봐 주는척하며 모 대신 밭 곡식인 메밀을 심으라고 영을 내리었다.그러나 하늘은 계속 백성들의 편이 되지 않았다 여름철에 난데 없는 우박까지 내려 농사는 완전히 망치었다.
7 월이되자 엎친데 덮친격으로 폭우 까지 쏟아 지었다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 하였지만 조정은 대책이 없었다. 그해는 그런대로 추수를 하여 환곡을 갚았다 .환곡은 봄에 쌀이 떨어저 살기 어려울때 조정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꿔주고 가을에 10%의 이자를 받아 조정에서 걷워 들이는 제도이다. 어려운 농민을 구제한다고 만들어 놓은것이 권력층의 배만 불리는 제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
말하자면 봄에 꿔 줄때는 반 백이니 분 백이니 하여 겨를 쌀에 섞어 나누어 주는 쌀의 양만 부풀리었는데 집에 가서 양을 맞추워 보면 절반은 쌀이 아니고 겨 였다.
이런 죽일 놈들이있나 ? 우리를 위한다고 꿔 준것이 쌀겨가 반이고......
백성들은 속만 태우고 쌀겨 반 쌀 반으로 배를 채우고 가을 추수기에 순수한 알곡만 그것도 10%를 덧붙여 국가에 받쳤으니 백성들이 갚을 때 얼마나 속 상했겠는가?
이건 나라가 아니고 협잡 꾼이지 무슨 나라 인가? 백성들을 속여 고리 대금 하는 것이나 똑 같지.....
백성들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더해 갔다.
국가는 날이 갈수록 아랑곳 하지 않고 백성들로 부터 곡식과 돈을 뜯어 낼 궁리만 하고있었으니,
그 첫째가 전정 이라는 것으로 땅 넓이에 따라 세금을 걷는제도였다. 아무리 넓은 땅을 갖고있어도 그해 풍년이냐 , 흉년이냐에 따라 세금을 조정 해주어야 하는데 국가는 풍년이고 흉년이고 관계 없이 법대로 만 한다고 무조건 강제로 일정량을 걷워갔다.
게다가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 수령들도 도결이라는것을 만들어 별도의 세금도 걷워갔다.
다음은 군정으로 군인 나가기 싫은 사람들로 부터 베 한필을 받는제도 인데 대부분사람들은 옷도 못해 입고 정부에 갖다 받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
다음은 환곡인데 봄의 춘궁기에 꿔다 먹은 쌀을 가을에 10%이자를 붙여 갚는 제도였다. 백성들은 정부에 세금으로 양곡으로 이리 빼앗기고 저리빼앗기고 살길이 없었다 .
세금 , 홍수, 가뭄,등으로 농사 까지 망치었으니 백성들은 굶어 죽는수 밖에 없었다. 배 부른 사람들은 정치를 하는 세도가 밖에 없었다.
농민들의 이농현상이 나타나기시작 하였다.농토를 버리고 서울로 읍내로 나가니 농토는 잡초로 황폐화 되었고 도시로 나간 농민들은 모두 거지가되었다
밥 한 술만 주세요
거지가 된 농민들은 이집 저집다니며 구걸 행각을 하고 다니었으니 읍이나 서울은 땅을 버리고 나와 방황하는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아니 이흉년에 밥이 어디 있어 썩 물러 가지 않을가?
거지가 된 농민들은 문전 박대에 큰 소리 한번 못치고 양반이 못 된것을 한탄 만하였다.
밥 한술만 주세요
거지 농민들은 오도 가도 할데가 없는 몸이었다 .문전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없다는데도 ...
하고 문전 박대하자 배곺은 농민 거지는 여인을 밀치고 부엌으로 들어가 솟 안에 주인이 돌아 오면 줄 밥을 뺐어다 허기를 면하였다
도둑이야!
여인의 째지는 소리에 동네 청년들이 몰려나와 몽둥이로 늘씬 하게 맞고 늘어 지어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굶주림은 강도와 다름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것이다.
그런데도 정치를 하는 조정의 대신들과 지방 수령들은 제 배가 부르니 민생은 뒷전이었다.그것도 모자라 권력층은 참봉이니 주사니 하는 공직 벼슬 까지 돈을 받고 사고 팔아 제 배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밥술이나 먹는 부농은 과거를 보지 않아도 어느새 참봉이되고 주사가 되었으니 말세는 말세였다.
족보도 돈을 주고 뜯어 고치는 세상이 되었으니 조선의 정통성이 문제 되지 않을수 없는 지경 까지 도달했다.
나라가 길데 까지 가고 있었다.
오직 재미 보고 있는것은 정치를 하는 권력층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