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블로그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news_0000116.jpg

 

 

 

인조 14년 인조의 왕비 인렬 왕후 한씨가 별안간 죽었다 .
후금에서는 이를 조상 한다고 하면서 2월 용골대와 마부대에게 태종의 국서를
조선에 보냈다 .

그들은 용골대가 오기 며칠전 이미 후금의 사신이가 지고온 외교 문서에 후금 태종의 존호를 조선에 알리고 정묘
약조을 바꾸어 형제 국가가 아니고 후금이 종주국이고 조선은 신하국이라는 소위 군신 관계로 정묘 약조을 바꾸라고 요구 할 뿐만 아니라 황금과 백금
1만냥을 후금에 받치고 말 3 천필과 군사 3 만명도 지원해 달라고 요구 해왔다
조정은 군신 관계 라는데 더 발끈하였다 .
"아니
오랑캐 놈들이 감히 군신 관계로 격상 하자고? 형제 관계로 한것도 분해 죽겠는데 ......."
"차라리 후금과 한번 싸워나
봅시다"
"이런 버르장 머리 없는 놈들이 다 있나 "
대신들은 제 각각 후금을 성토하기 시작 하였다.용골대가 가지고 온 국서도 보나
마나 비슷한 내용으로 보고 용골대가 가지고 온 후금 태종의 국서를 거부하였다

용골대는 조선 조정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다음날
저의 나라로 부지런히 돌아갔다 . 돌아가는 도중에 공교롭게도 조선 조정이 평안 감사에게 내린 교서를 가지고가던 조선 사람을 잡아 조사해보니
인조가 평안감사에게 내린글이었다
이교서는 전시에 대비 군사 훈련을 강화하고 군인들 기강을 바로 잡아 전쟁에 대비하라는 교서였다


이교서는 즉각 후금 태종의 귀에 들어갔다
교서를 읽은 후금 태종은 조선을 재 침공 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지기시작하였다.
이당시 후금의 태종은 국경을 명나라 수도인 북경 근방 만리 장성 안까지 진출해 있었다 .
태종은 국호를 청나라로
개칭하고 연호를 승덕이라하고 태종은 스스로 황제라는 칭호를 쓰기시작하였다.

청나라 태종은 황제 대관식에 조선 의 사신으로 왕자를
볼모로 보내 줄것을 요구 했고
만일 왕자를 보내지 않으면 조선을 다시 공격 하겠다고 협박 하였다 .그러나 조선조정은 이런 협박이 귀에
들어 올리가 없었다 .청나라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지 않기때문이었다.

추운 12 월이 돌아왔다 청나라 태종은 친히 청나라군 7 만명,
몽고 지원군 3 만, 한족 군사 2 만명 도합 12 만 대군이 압록강을 넘어섰다 도원수 김자점과 의주부윤 임경업은 청군이 이미 평양으로
진군하는것도 까마득히 모르고있었다 .임경업과 김자점이있는 백마산성을 살짝 비껴 진군하였기때문이었다 .
청나라군이 개성 까지 내려 왔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
인조는 즉시 왕족들을 강화도로 피난 시켰다. 인조도 밤을 이용하여 궁을 빠저 나가 강화도로 갈려고 하였으나 청나라
군대가 이미 영서역을 통과 강화도 길을 차단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백관들을 데리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간다.

영의정이된 김류는 남한산성이
불안하니 강화도로 야음을 이용 강화도로 피신하자고했다. 다음날 새벽 강화도로 떠날려고 밖을 내다보니 그날따라 눈이보이지않을정도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남한산성에서 떠날것을 포기했다.
당시 남한산성에는 군사래야 1만 3000명에 불과 했고 양곡도 벋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마 50일정도 벋히기에 족할정도였다.
12월 16일 청나라군대는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지구전으로 들어갔다,
조선군이 얼마나
벋히겠느냐는 계산하에서였다.
40여일동안 청나라군사들도 요지부동이었다 .조선군이 지칠때를 기다리고 있는것이었다
조선조정은 적에게
포위되어 옴짝 달싹 못하는데다가 식량이 떨어저가자 싸우다가 모두 죽고말자는 주전파와 조선의 군사력으로는 적을 막기힘드니 차라리 항복하고 후일을
도모하자는 주화파로 나누저 설전을 벌렸다 .
대신들은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주화파 최명길이 국서를 써서 좌의정
홍서봉과 호조판서 김신국을 청나라 진영에 보내었다 .
청태종은 조선국왕이 직접 청태종 앞에나와 항복을 하고 주전파 대신 3명을 잡아
대령하라고 하였다
대신들은 말도읺되는 소리라고 갑론 을박하며 날자만 보내고있었는데 강화도에서 청군의 포로가된 윤방의 장계가 올라왔다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것이다 .
이제는 잘못하다가는 인조도 청태종 앞에서 죽게되는 비운을 당할지모른다는 강박감이엄습했다
(이렇게
국가의 힘도 없으면서 떠들고만있어서 되겠는가 ? 적들이들여 닥치면 오히려 더큰 비극이 벌어질지 모른다 .항복하자)
인조는 항복을 결심하게
된다.
우선 최명길을 용골대에게 보내 협상안을 만들도록했다.청나라와 군신관계를 수락하며,명나라 와도 앞으로 상대 않을것,청을 적대시하지
않고 청나라에 앞으로 군사와 물자를 지원할것등 열한가지 조건을 수락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교부하였다.

인조 15년1월 30일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와 한강 동쪽에 있는 삼전도에 나와 청태종 앞에서 신하의 예를 갖춘뒤 두 무릎을 꿇었다 .
조선임금이 큰절로 청태종에게 절을
하자 대신들은 통곡을 했다 .
청나라는 소현세자를 볼모로 잡아 데려가고 주전파 신하 3 사람인 오달제,윤집 ,홍익한도 잡아갔다

이른바 역사에서는 병자호란이라는 난리였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왕은 영의정으로 최명길을 임명하고 임경업을 시켜 군사 훈련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명나라와 합심하여 언제인가는 청 태종에게 당한 수치를 만화하려는 속셈이었다 .왕과 서인들은 아직도 명나라 에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최명길은 명나라와 관계를 끊겠다는 청태종과의 약속을 깨고 은밀히 명나라에 국서를 보내 명나라가 힘을 다시 얻으면
합작하여 청나라를 치자고 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글 내용이 명나라 장수 홍승도가 청나라에 항복 하면서 청 태종에게 알려지었다
,

청 태종이 가만 있을리 없었다 .영의정 최명길과 주전파인 김상헌을 잡아갔다.
청나라로 끌려간 두사람은 옥에 가두었다가
다음날 청 태종 보는 앞에서 용골대가 두사람을 심문하기시작했다.
"너희는 감히 어디라고 군신의 예를 버리고 명나라와 다시 손잡고 우리를
치려 했느냐"
"조선은 역대 이래로 남의 나라에 항복한사실이 없었소 .이번에 우리나가 불운하여 항복을 했습니다만 내 나라의 국력을 키워
나라를 한번 일으키려는것이 무엇이 잘못 되었다는 말씀이오?"
"좋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를 치려 했느냐?
"
"........."
"말 안하면 좋다 내 그냥두지않겠다"
용골대가 고문이라도 할듯이 몸을 틀자 보고 있던 청태종이

"잠간 , 조선의 영의정은 군신지의를 모르는가 ?이미 삼전도에서 조선왕이 약속했거늘 그대가 파기하면 되겠는가?"
하고
묻는다.
"폐하 ,사실은 명나라와 합세하여 삼전도의 설욕을 씻어보려고 계획했 던것은 사실입니다 .임경업에게 훈련을 강화 한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책임은 영의정인 제게 있아오니 저를 처벌해주십시오"
"................."
청태종은 물끄러미 최명길을 내려다
보다가
"조선의 영의정은 참으로 충신 이로다,그를 돌려 보내 주어라 .그리고 김상헌도 죽이지는 말라"
황제의 한마디에 용골대는 표정이
싹 바뀌고 포승줄을 풀어주었다
최명길과 김상헌은 청태종이 그들의 충절에 감동한 나머지 별 고생 없이 있다가 돌아왔다
그러나 조정은
여전히 권력이 무언지 권력을 잡고 있던 서이간에도 분파가 일어 났다. 서인들 간에 분파로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어 논쟁을
일삼았다.

한편, 청태종은 영의정 최명길은 조선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앞으로 위협이 될지 모를 임경업을 잡아 올리라고 지시했다
.
이소 식을 듣고 임경업은 스님 복장을 하고 명나라로 도망치었다. 차라리 조선의 장수인 그가 명나라군에 들어가 청나라 원수를 갚으려는
생각에서였다 .
그러나 명나라 수도 북경은 청 태종이 점령하고 있어 다시 도망치려다 청나라군사에게 붓뜰리고 말았다

임경업은
청나라에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청나라는 날로 강해저 중국본토를 완전히 석권 했다.명나라가 존재가 없어진 이상 청태종은 볼모로 잡아간
소현세자를 구태어 청나라에 잡아 놓을 필요가 없었다
소현 세자는 청나라 있는동안 서양문물을 많이 알게 되었다.
조선으로 돌아 올때는
서양 서적과 선교사까지데리고 들어온 개화 인물로 변해 있었다.게다가 청나라 태종이 소현세자를 신뢰하고 그 인물 됨됨을 높이 사고있자 인조는
그점이 못 마땅하였다 .인조는 병적 이리 만치 명나라를 떠 받들려 하였다 인조의 정치적 기반은 명나라에 있기에 쉽게 포기할수는없었다. 소현세자와
청 태종간의 원만한 관계가 미웠다.
그런이유로 인조는 소현세자를 못 마땅하게 생각지 않을수 없었다. .소현세자가 왕이되면 서양문물에
접해있는것도 못마땅한데다가 청나라와 결탁하여 어떤짓을 할지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인조는 이런이유때문에 세자를 미워하였다 .
결국 소현세자는
왕이 몰래 내린 독약을 먹고 죽고만다 .
인조는 심지어는 후환이 두려워 세자비인 강씨와 세자의 자식 까지 죽인다.
겁이 많은 인조의
행동이야 말로 어처구니 없는 태도였다.


노론 소론으로 갈리어진 정치권은 권력 싸움에 헤어 날줄 몰랐다 .
이를 보다
못한 심기원이 나라가 어지러운 원인이 왕인 인조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나라를 바로 잡으려면 왕을 갈아 치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또 다른 역모였다. 그러나 이역모사건은 사전 누설되어 심기원과 그 동조자들이 잡혀들어왔다 .
심문자인 김자점은 이때를 놓지지않고
평소에 자기와 사이가 좋지못한 사람들을 모두 잡아들였다.그중에는평소에 사이가 좋지않았던 이역모 사건에 얼토당토 않은 임경업이 관련있다고 결론을
내려 왕에게 보고했다 .임경업은 청태종이 침공해왔을때 의주부윤으로있던 임경업이 도원수였던 김자점을 무시하고 직접 청태종이 지나간 뒤를 추적한
장본인이었다 .당시 왕은 임경업에게 모든 명령을 보내었고 도원수인 자기에게는 칭찬 한마디 못들어 평소부터 감정이 많았었다.왕은 임경업이 자기에게
보고도 없이 북경으로 도망친것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왕은 발끈하여 청나라에 임경업이 역모가있으니 문초하기위해 조선에
보내달라고요청했다 .청나라로서는 임경업 처치를 곤란해 하고잇던 차에 자기들이 죽이느니 차라리 조선에서 저희들 손에 죽이는것이 났겠다고 생각하고
순순히 조선으로 보내준다
임경업은 죄없는 죄인의 몸으로 조선에 돌아온다
심문하는 김자점은 임경업을 노려보며
"역적모의 사실릉
털어놓아라"
하고 호령한다
"무슨말씀이오 나는 그런짓을 모의한 사실이 없소"
하고 임경업이 단호히 부인한다
"아니
저놈이 북경에 까지 가서 조선 내부에까지 역모를 계획 한것이 들어 났는데도 부인만 하는구나 여봐라 바른 소리 나올때 까지
매우처라"
임경업의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놈 자점아 청나라를 칠때는 도망만 다니던 너희들이나를 이렇게 고문할수있느냐? 앞으로
누가 청나라의 원수를 갚으려고 나를 역모로 몰아 죽이려 하느냐?'
피투성이가 된 임경업을 옥에 가두어 놓고 김자점은 왕에게 경과를 보고했다


왕도이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임경업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
임경업 은 이렇게 당파 싸움에 희생되어 목슴을 잃었다
.

인조 27 년 겁 많고 전 생애를 피난으로 생을 살다시피한 인조도 이세상을 하직한다
인조가 죽자 봉림대군이 왕위에
올랐으니 바로 효종이다
계속



  1. 봄 봄 봄 !

    Date1970.01.01 Byhyounglee Views603
    Read More
  2. Spring has come ~~♡

    Date1970.01.01 Bykpsung Views604
    Read More
  3. 조선왕조이야기 (46)-이렇게 힘도 없으면서 떠들고만 있어서 되겠는가?-

    Date1970.01.01 By5443738 Views731
    Read More
  4. 조선왕조이야기(45)-內憂 外患의時節 -

    Date1970.01.01 By5443738 Views644
    Read More
  5. 조선왕조이야기(44)-왕이라는 사람이 -

    Date1970.01.01 By5443738 Views854
    Read More
  6. 조선왕조이야기(43)-무너지는 이괄의 꿈-

    Date1970.01.01 By5443738 Views715
    Read More
  7. 조선왕조이야기 (42)-쫒겨다니는 임금-

    Date1970.01.01 By5443738 Views664
    Read More
  8. 조선왕조이야기 (41)-왕을 갈아치는 수밖에-

    Date1970.01.01 By5443738 Views573
    Read More
  9. 조선왕조이야기(40)- 仁祖의 武官들 -

    Date1970.01.01 By5443738 Views545
    Read More
  10. 조선왕조이야기(39)-光海君의末路)

    Date1970.01.01 By5443738 Views572
    Read More
  11. 조선왕조이야기 (37)-광해군의 헛된 꿈-

    Date1970.01.01 By5443738 Views588
    Read More
  12. 조선왕조이야기(36)-망나니 主君을 어찌할고?-

    Date1970.01.01 By5443738 Views603
    Read More
  13. 조선왕조이야기(35)-光海君 泥田鬪狗 시대-

    Date1970.01.01 By5443738 Views494
    Read More
  14. 조선왕조이야기 (34)-再現되는 黨派 싸움-

    Date1970.01.01 By5443738 Views584
    Read More
  15. 조선왕조이야기 (33)-首都 奪還-

    Date1970.01.01 By5443738 Views495
    Read More
  16. 조선왕조이야기 (32)-血戰-

    Date1970.01.01 By5443738 Views491
    Read More
  17. 조선왕조이야기 (31)-運命의時間-

    Date1970.01.01 By5443738 Views575
    Read More
  18. 조선왕조 이야기(30)-기 씨움의 행주산성-

    Date1970.01.01 By5443738 Views666
    Read More
  19. 조선왕조이야기 (29)-행주대첩-

    Date1970.01.01 By5443738 Views548
    Read More
  20. 조선왕조 이야기(28)-반전되는 전황-

    Date1970.01.01 By5443738 Views53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 161 Next
/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