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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련의 아들 한윤은 아버지가 역모 사건으로 죽자 자기에게 불 똥이 뛸 것이 뻔한지라 일찍암치 후금으로 도망하였다.
후금에는 광해군 시절
명나라를 지원 하러 나갔다가 이미 포로로 잡혀 있던 강홍립과 박난영이 살아 있었다 .
한윤은 강홍립에게 찾아갔다
"장군, 장군께서
전 왕시절 어명으로 명나라 지원 병력으로 나가셨다는 사실과 후금에 항복 하였 다는 이유를 내세워 장군의 형제와 부인까지 죽이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
그렇지 않아도 고국에서 전왕인 광해군을 몰아내고 광해군 시절 도원수로 1 만여병력을 이끌고 명나라를 도우러 나가되 후금의
비위는 건드리지 말고 요령있게 행동하라는 광해군의 당부가있어 거짓 항복은 하고 있었으나 인조 반정으로 사태가 복잡해지자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소문이 사실이렸다 ? 그렇지 않아도 가족의 안부가 걱정 되었는데 김류 이귀가 작당하여 내 가족 까지 죽이었구나 .그런
행동들을 하니까 이괄 부원수가 놈들을 몰아내려고 한것이야 .그래 자네 아비는 무사했던가? ......소문으로는 자네 부친도 온전치못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저의 부친께서는 반역을 생각치도 않았는데 잡아 들이라는 왕명을 받고 잡혀가기 직전에 이괄 부원수께서 구해 주었지만 결국
힁사하고 말았습니다"
"자네도 불우한 사람이구먼..."
강홍립은 새로 들어선 인조 정권이 자기가 나라를 위해 거짓 항복 하라는
광해군의 분부를 충실히 이행 한것 뿐이었는데 자기를 명나라의 의리를 저바리고 후금에 항복한 역적으로 보는것이 분했다 .더구나 자기 가족 까지
죽였다는 소문이 한윤의 입으로 거짓이 아님을 확인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 했다 .
하지만 한윤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강홍립의 가족은 죽이기
직전에 광해군이 중지명령으로 아직 까지 살아 있었다 .
강홍립이 한윤의 말을 믿을수 밖에 없는것이 문제였다
강홍립은 후금의
누루하치를 찾아갔다
"명나라 모문룡이 조선 땅에 머물면서 전하의 땅을 노리고있습니다 .문제는 모문룡을 지원하는 조선이 문제입니다.전하가
지금 명나라 를 치고 대업을 이루려는 차제에 압록강 넘어 모문룡이 처들어온다면 양쪽으로 군사를 분산시켜야 합니다 .우선 모문룡을 치고 조선을
굴복 시켜야 안심하고 중원땅을 뺏을수있습니다"
누루하치는 당초부터 조선정도는 안중에 없었다 .오직 거대한 대지를 차지하고있는 명나라를
처부수고 대 후금을 세우고 싶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강홍립의 얘기를 듣고보니 틀린 얘기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냥 두면
안되지...."
누르하치는 조선공략의 눈을 돌리다가 인조4 년되던 해에 와병으로 죽고만다 .
조선공략은 누루하치의 사망으로 끝
날줄 알았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후금의 태종이 가만 있지 않았다 .누루하치의 유명을 받들어 조선을 치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는 우선
조선을 치려면 명분이 있어야 했다 .그는 조선에다 트집을 잡기 위하여 국서를 보낸다
"조선 국왕은 예의도 없는가? 이웃나라인 후금의
시조가 상을 당하였는데도 조문 한마디없으니 ,더구나 앞서 명나를 지원 한다면서 우리를 적대시 할적에도 전투에서 포로로 잡은 조선군 만큼은 대우를
해주고 있는데도 배은 망덕하게도 지난 임진왜란때 명나라가 좀 도와 주었기로서니 세상이 뒤밖여 가는줄도 모르고 명나라 모문룡을 조선에 주둔케하여
우리를 위협하고있다.이에대하여 시정을 하지 않고 게속 우리를 적대시하면 가만있지않겠노라 "
태종의 국서 내용은 실로 날카로웠다
.
"이를 어찌 하면 좋겠소?"
인조는 무능한 사람이었다 .모든것을 김류나 이귀에게 의존 만 하고있었다 .
"전하 무엇이 걱정이
옵니까? 우리에게는 막강한 명나라가 있지 않사옵니까? 그까짓 오랑캐놈들이 무슨짓을 한다해도 못막아 내겠습니까?"
김류가 그 특유한 말
솜씨를 발휘하고있었다
"그래도 후금이라는 나라는 새로 일어나는 청년같고 명나라는 늙어 힘빠진 호랑이가 이니겠소.."
하고 인조가
혼자말로 짓거리자 최명길이
"전하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명나라는 이제 바람 앞에 촛불과 같습니다 . 차라리 후금의 태종에게 화해를
구함이 옳지 않을가합니다 "
하고 아뢴다
김류가 가만 있지않았다
"무슨 망발이오? 조선은 동방예의지국이오 .어찌 조선이라는
나라가 북쪽 오랑캐들에게 굴복한다는 말이오? 명나라와 의리로서 맺어진 혈맹을 끊겠다는거요? 그까짓 오랑캐들이 명나라를 망하게 할수 있을것 같소?
말도 않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김류의 한마디면 조정 대신들이 떠는 판국이니 누가 나서서 말 한 마디 하는 사람이 없다.
사실 후금을
막아 낼 인물은 역모 사건으로 죽은 이괄 밖에 없었다 .이괄군은 그래도 북방을 견제하고 있었던 최 정예 부대 였던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국방이
말이 아니었고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
김류계산으로는 후금이 명나라와 대치 상태에서 설마 조선을 처 국력을 낭비 하겠느냐는데 있었다
.그러나 후금의 태종은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
인조 5년 1월 13일이었다
후금의 3만병력이 압록강을 도강하여
남쪽으로 쳐들어 오기시작하였다 .겨울철이라 강이 얼어 붙어 조선 침공은 처음부터 순조로웠다 .이괄이 없는 조선군은 여지없이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의주부윤 이완이 후금군이 칼에 맞아 죽고 그들은 압록강을 넘어 용천을 거처 안주로 남하하기시작했고 명나라 모문룡은 싸움도 제대로 못하고 대패하여
신미도로 도망치었다 .
조선군의 저항은 있었으나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후금군은 파죽지세로 남하를 계속하자 인조가 부랴부랴 도원수
장만을 불러 급하게 도체찰사로 승진시키는 동시 그때서야 각도에 공문을 보내 군사들을 모아 전선에 보내라고 지시했다 .후금군은 평양을 점령하고도
잠시 머물지않고 황해도 황주까지 내려왔다.
장만은 예성강을 장애물로 삼아 방어 계획을 수립했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서울이 위태로워지었다
인조는 김상용에게 서울 사수를 명령하고 자기는 강화도로 피하기로 하였다
인조는 도저히 후금군을 막아낼 자신이없자 후금과
더이상싸울것이 아니라 화해하는것이올하다고 하였다 .이에 조정은 싸움과 화해 두파로 갈라저 내부 갈등이 노출되었다.
김류는 끝까지싸우겠다고
주장하고 이귀와 최명길은 현실적으로 보아 싸워서 이길방법이없으니 화해 하는것이 났다고 주장하였다
결국은 화해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었다
.김류는 큰소리는 치었지만 후금의 대병력을 막아낼 힘이없었다 .왕은 그래도 같은 핏줄인 강홍립에게 서신을 보내 후금과 친화를 맺게 주선하라고
강홍립의 동생을 통해 전달하였다 .그때까지 몰살되었던것으로 알았던 가족이 무사하였다는 얘기를 동생에게서 듣고 적극적으로 화해를 태종에게 진언한다
후금은 화해하는 대신에 몇가지 조건을 내세운다 . 내용은 명나라 모문룡을 잡아 보낼것 ,명나라를 칠것이니 조선군사 1만명을
지원해줄것등이었다 .후금의 화해 서신을 받고 조정에서는 화친이냐 싸움이냐를 놓고 설전이벌어지었다
결국은 최명길 주장대로 화친으로
기울었다.조선은 후금의 주장은 받아들일수 없고 수정제의를 제시하였다
후금군은 지금있는 평산에서 철수할것 , 후금군은 앞으로 압록강을
넘지말것, 우리두나라는 형제국이될것,후금과의 약속을 하지만 명나라와 조선간의 관계를 너무 간섭하지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
후금의 태종은
서신을 읽고
"흠, 좋은것은 다 하겠다는 얘기군......우리 요구 조건은 하나도 안 들어주고....."
하고 코 웃음을 치는 한편
"그래 그렇다면 조선은 앞으로 명나라 연호를 쓰지 말고 왕자를 인질로 보낸다면 수락하지..."
하고 답신을 보냈다 .
왕자를
인질로 잡아 놓으면 조선의 1만명의 군사를 보내주는것보다 더 효력이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조정은 왕자는 너무 어리니 대신 종친인 이구를
동생이라고하여 보내기로 하였다
후금은 일단 만족스럽지못하지만 명나라가 제2 전선을 피어 공격해오지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일단 철수 하기로
하였다 .
이를 역사에서는 정묘약조라 부른다
당시 조선은 후금을 막아낼 여력이 없는 국가이었으니 이정도로 만족할수밖에 없었다
.
전쟁에서 승자는 패자에게 강력한 요구가 많기마련이다 .후금은 돌아가서도 조선에 여러가지 요구조건을 걸어 트집을 일삼았다 .
그들은
조선에 쌀을 요구하였고 조선은 지원해주는척했다 .그러나 후금은 그것에 만족하지않고 후금군이 국경을 침범 약탈 행위 까지 있자 조정은 화의 조약을
깨고 후금과 전쟁을 다시 하여 후금을 굴복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