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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류는 이괄이 병력을 동원 남하 하고 있다는 소식에 접하고 잔뜩 독이 올라 있었다 ,
(이괄이 이놈이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반란을 일으켜 ? 관군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리지 못하고 ...네놈은 이제 끝장이다...어디 두고보자)
왕이 이귀에게 후회하는 말을
했다
"과인이 경의 말을 들었다면 이괄이저렇게 나오지않았을것을 ......"
"............"
이귀와 김류는 할 말이
없었다 . 이귀는 그래도 이괄에대한 배려되는 말을 임금에게 해왔지만 김류가 번번히 물타는 바람에 자기의견을 제대로 펴본적이없었다 .
왕이
나약한 심경을 들어내자 김류는 심기가 편치않았다
"전하 , 그까짓 이괄이쯤 막아내지못하겠습니까?"
"그렇지않소, 이괄은 평소
글잘하고 무예가 뛰어난 인물이오 .도성 백성들도 그를 많이 따르는것을 보아 혹시 이괄과 내통이나 하는 백성들이나 없는지 잘 챙기기나 하시오
."
임금은 그동안 김류가 많은 정적을 잡아죽이었기때문에 혹시 도성내 내부 반란이 있지않을가 우려 했기때문이었다 .
"전하
말씀이옳습니다 .우선 이괄과 내통 될만한 가족과 장인 집안까지 모두 몰살시켜 후환을 없애겠습니다 .틀림없이 이괄과 내응이 있을지
모릅니다"
"............"
김류의 본색이 들어나기 시작했다 .이괄 집안을 몰살시킴으로서 이괄의 기를 꺾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의 결심대로 김류는 이괄의 집을 삿삿히 뒤저 이괄의 부인과 며느리 까지 잡아 죽이었고 이괄의 장인 집도 쑥대 밭을 만들었다 .그
바람에 장인도 이세상 사람이 아닌 황천객이 되었다.
김류는 이괄이 도중에서 잡혀 올릴 것으로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두려움도
갖고 있으면서도 이괄 문제 만큼은 애써 외면 하려고 애를 썼다
그동안 그는 자기의 정책게 반대 했다는 이유로 기자헌을 비롯한 35 명의
선비들이 다른 명목을 붙혀 죽이었다. 온나라가 김류의 전횡으로 공포에 휩쌓였다 .
이괄은 서울 근방까지 도달하는 동안 싸움다운
싸움 없이 한성 인근까지 육박 하였다 .도중에 황주에서 관군을 조우하였으나 관군들이 도망치는 바람에 싸움다운 싸움을 하지도 않았다 .
이괄의 군사들은 사기가 높을 대로 높아지었다 .감히 그들을 진압할 힘이 조정에 없기 때문이었다 .
특히 방어사 이중로가 첫 대응
하다가 전사 당하고 말았다 .
그때서야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거의가 김류와 관계를 맺고 있는자들이라 더욱 이괄의 보복이 두려
웠다
피난 보따리가 눈에 띄게 움직이고 있었다 .임진란 이래 백성들이 겪는 두번째 시련이었다 .
도원수 장만은 각지역에서 차출된
장정으로 군대를 겨우 편성하여 서울 지역으로 이괄과 경쟁이나 하듯이 이괄이 지난는길을 피하고 남하하여 임진강까지 도착하였다.선봉 대장으로는 임진
왜란시 권율의 서신을 가지고 적진을 뚫고 의주 까지 왔다 갔다 하던 정충신이었다. 임금은 경기 감사 이서에게 임진강 사수를 명하였으나 이괄군에게
여지없이 패하고 말았다. 수원부사 이홍립도 이괄군의 위세 밀려 싸움다운 싸움도 못하고 도망하고 말았다
그날밤 왕은 꿈자리가
이상하여 잠을 못자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였다.다음날 날이 밝자 왕은 김류를 불러들였다
"아무래도 이렇게 있다가는 이괄에게 망신 당하게
생겼소 .어제 밤꿈에는 이괄이 자는데 나타나 과인의 목에 칼을 드려 대기에 놀라 소리치니 꿈이었소 "
"전하 ,너무 심려치 마옵소서 ,
이괄이 쯤이야 임진강에서 물고기밥을 만들수 있습니다 .지금 장만 도원수 군이 이괄의 뒤를 쫓고 있어서 걱정 않 하셔도 됩니다."
김류는
일부러 임금을 안심시키느라고 애써 태연 한척 하였으나 기실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괄이 거느린 군대는 조선 최강을 자랑하는 정예군이었기 때문에
이에 필적 할만한 군대가 김류 손아귀에는 없기때문이었다 .오직 믿고있는것은 도원수 장만뿐이었다.
임진강 방어선을 지키고 있던 이홍립의
방어군이 무너지고 관군들은 모두 산속으로 도망쳤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
김류는 더이상 서울에 가만히 앉아서 이괄에게 무릎을 꿇을수
없었다
그는 임금을 뵙고 잠간 충청도 공주 산성으로 피신할것을 권한다
임금이 피란을 더나자 한성은 다시 뒤숭숭 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괄 장군을 어떻게 대접 했길래 임금이 피난을간담....?"
"김류란놈 때문이지 ...엇그제 보니까 아무 죄도
없는 이괄 장군의 부인과 며느리 까지 잡아다 죽이지 않나 ....죄없는 선비들이 바른소리좀 한다고 잡아 죽이지 않나 .....보복정치의 대가지
뭔가?"
뜻있는 선비들은 자업 자득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괄군이 도성 가까이 처들어오고있다는 소문은 온 서울장안을
어수선하게 되었다 .임진왜란때는 집을 비우고 피난가는 백성들이 속출하였으나 이번만은 그정도는 아니고 이괄군이 도성내 진입해 벌어질 일이 더
불안했다 .
아직도 찬기운이 가시지 않은 인조 2년 2월 10일 이괄군이 보무도 당당하게 한성에 입성한다 .
능양군이
왕이되어 채 2 년이되지 않은때 텅빈 궁궐에 무혈 입궐하는 이괄은 감개가 무량하였다
(2 년전 목슴을 내놓고 광해군을 쫓아 낸것이 엇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다니.....)
이괄은 궁궐을 접수하고 자기뒤를 쫓는 장만과 수원부사 이홍립,파주목사 박효립을 경계토록
기익현에게 특별지시를 내렸다
이괄은 우선 아들과 함께 자기가 살던 집부터 방문하였다 .집안은 흉가 처럼 텅비었고 금방이라도 도깨비라도
나올듯 을씨년스러웠다
(김류 이놈 , 배은 망덕한놈 , ....) 부인과 며느리가 김류로 하여금 살해 되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정도로
할 줄까지는 미처 생각못했다 .
궁궐 숙소로 돌아온 이괄에게는 또다른 선물이 와 있었다 .수원부사 이홍립과 파주 목사 박효원이 이괄에게
항복하고 포박되어 와 있었다.
이괄은 미련한 사람은 아니었다 ,김류 같은 사람을 잘못 만나 이런 사태 까지 왔지만 그는 장군으로서의 글과
무예와 군인 특유의 기품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포박을 풀게하고
"이부사, 박목사 , 참으로 반갑소 , 내 익히 명성은 듣고
있었습니다만 항복 해주어서 고맙소, 앞으로 같이 우리일에 합세 해 주오"
하고 두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마지한다 .
두사람은 이괄이
자기들을 고문 학대 할줄 알았다가 오히려 환대 하는데 놀랐다 .
(역시 김류와는 다르구나.....)
두사람은 이날자로 이괄의
충실한 동반자로 변한다
이괄은 기익헌을 불렀다
"능양군은 왕 재목이 못돼 왕족중에 쓸만한 인물이 없나?"
"........"
인조를 왕으로 취급 않겠다는 얘기다
기익헌은 이괄의 의도를 알아 채리고 자기의견을 피력했다
"선왕의 부인이 8 명이나 되고 자식들만 해도 아들해도 14 명에다가 딸만도 11 명이나 됩니다 . 그중에 왕이 될만한 인물이 누군지 좀
알아봐야겠습니다"
"선조왕이 자식들복은 엄청 많았구만....허허"
이괄의 입에서 오래간만의 너털 웃음 까지나왔다 .
"그럼
왕재목을 구해 보구려 ,건방진 사람 말고 앞으로 우리 말에 잘 협조 될만한 인물을 알아오게 "
기익헌이 알아온 왕이될 재목은
선조의 마지막 애첩에 해당되는 온빈 한씨 소생의 흥안군이었다 ,온빈 한씨 소생으로는 3 남 1 녀 인데 한씨 소생으로는 장남 인셈이고 선조의
자식 14 명중에는 10 번째 아들이었다
이괄에 의해 졸지에 임금이된 흥안군은 자기의 형님이 공주에 피신가 있는 상황하에서 거절하고
싶었으나 이괄 일당의 서슬에 밀려 팔자에 없는 왕으로 추대 받게 된것이다
이괄은 불안해 하는 서울시민을 안정시키기 위해 평상시와 같이
생활을 하라하고 자기휘하 병사들에게도 민폐가없 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민심을 얻기 위해 갇혀 있던 죄수들을 사면하는 한편, 궁궐과
용산에있는 양곡 창고를 모두 열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게 하였다
새임금의 새나라 ....모든것이 순조로웠다 .
그러나
공주에 가있는 김류와 인조가 골치덩이였다
(능양군 이놈을 없애 버려야겠는데.....)
이괄은 인조를 왕으로 인정 않고 대군 시절의
호칭을 그대로 사용하고있었다
이괄이 공주성의 인조 칠것을 구상하고있는때 기익헌은 도원수 장만이 마음에 걸리었다
"장군, 그까짓
능양군 무슨힘이 있습니까? 우선 장만의 군사수가 날로 늘어 나고 있다는데 이놈들 부터 처치하고 공주 공격을 해도 늦지않습니다 "
"아니야
새임금이 들어섰다는 명분을 찾으려면 능양군 부터 처치해야 하지"
"장만이 세력을 불린 모양이네요...."
"장만? 그 병신 같은
놈이 감히 우리를 ? 걱정말아요 . "
"아닙니다 ,정충신이라는 놈을 앞 장세워 나오는 모양인데 그리만만한 놈이아닙니다"
"그놈이어째서?"
"임진란때 적진을 뚫고 전라도에서 의주까지 서울 공격 목표를 보고하라는 권율장군의 명을 받고 이를 수행한
장수라합니다"
"그야 담력좀 있다고 제가 얼마나 훌륭 하다는거야...."
"아닙니다 ,담력뿐만 아니라 지략도있다 합니다"
"교활 한놈이구먼 ....하긴 김류 같이 교활한 놈이면 나도 못당하지...."
기익현이 말한대로 관군에게는 인물이없었다
.도원수 장만이 군사수를 늘리기 위해 각지역의 수령들에게 내린 공문에 의해 모여든 장수들중에 쓸만한사람은 만포첨사 정충신밖에 없었다 ,나머지
목사 ,부사들은 모두 문관 출신으로 무예와는 담싼 사람들이었다.
정충신은 나주 사람으로 어린시절 권율이 광주 목사로 있을때부터 권율의 잔
심부름하는 소년으로 있었다 .임진란이 일어나자 권율이 전라도 군사를 이끌고 서울 수복에 관한 계획을 내용으로 하는 장계를 의주로 피난가 있던
선조에게 보낼려 했지만 보낼 방법이없었다 .이때 자원하여 나선 사람이 정충신 청년이었다
정충신은 권율의 장계를 받아들고 적진을 허름한
행객 행색으로 왜군의 눈을 피해 전라도 광주에서 평안도 의주 임금의 행재소 까지 전달한 인물이었다 .
이때 이 장계를 가지고 먼저 병조
판서이며 권율의 사위인 이항복에게 전달 하였는데 이에 감복한 이항복 휘하에 잡아 놓도록 하고 동시에 무예와 글을 가르치며 왕을 호위케하였다
정충신은 이해 무과에 급제하여 무인의 길을 나가기 시작한다 .세월이흘러 정충신은 광해군시절 만포 첨사로 있으며 국경경비에 여념이없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이번에 도원수 장만은 정충신을 알아보고 그를 전부대장(前部大將)으로 임명하였다 .
이괄은 여전히 장만군에
대해서는 관심 조차 갖지 않고 공주에 있는 인조 처치에만 골몰하고있었다.
장만이거느린 관군은 다음날 서울 길마재 고개로 처들어왔다
이괄은 이소식을 듣고 코웃음을 치었다
"장만이 이놈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르고.....네 목슴은 오늘로 마지막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