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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이 행주 산성에 진을 치자 서울 을 점령 하고 있던 적들은 회의가 열렸다 .총대장 우희 가수가가 질문을 던졌다.
평양 까지 처 올라
갔다가 철수한 소서행장이 나섰다.
"우희다 총대장님 지금 행주산성에 진을 치고 있는 권율 이란자는 전라 감사로 있는 자입니다.만만히 볼
인물이 아닙니다. 듣기에는 응변 장략이 용호(龍虎)같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이것은 권율 이란자가 우리를 깔 보는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불과
한성에서 20 리 밖에 안되는 거리입니다.
권율군을 전멸 시키지 않고는 우리가 벼개를 높이 베고 이곳에서 잠을 이룰수 없습니다 .적들이
자리 잡기전에 선제 공격밖에 대안이 없다고 봅니다"
"........"
모두들 침묵하였다
우희다수가가 좌중을 둘러 보았다
권율에게 이치령 전투에서 혼이났던 소조천융경이 노장 다웁게 강력히 주장한다
"맞습니다 , 조선군들이 진지 구축이 완전히 되기전에
공격해야 합니다.병법에도 善戰者致人而不致於人(전투를 잘 하는자는 상대를 조종하는 것이며 상대에게 조종당하지않는다)라고 했습니다 . 공격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흠, 그러면 3일후 공격하기로 합시다, 삼 봉행께서는 생각이 어떠시오"
석전삼성과 증전장성,대곡길계등 풍신수길이
딸려 보낸 참모들이 모두들 고개를 끄떡였다
이렇게하여 7개 종대로 병력 배분을 완료하였다 .
어마 어마한 3 대군을 동원 불과
1만여명의 조선군을 공격하기로 한것이다 . 그만큼 일본군은 권율의 비중을 두려워 했던것이다.
그들의 병력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제 1 대 소서행장
제 2 대 석전삼성, 전야장강,증전장성,대곡길계
제 3 대 흑전장정
제 4 대 우희다수가
제 5 대 길천광가
제 6 대 모리원강,소조천수포,
제 7 대 소조천융경
총 병력 3 만여명
한편
조선군은 행주산성에서 소모사 변이중이 화차(火車)를 만들어 처음 배치했고 권율은 수차석포(水車石砲)라는것을 직접 고안해 만들게 하여 대비하였다.
화차 라는것은 수레에 총구를 40 개정도 만들어 그 안에다 총기를 꽂아 일시에 쏘게하는 장치였으며 수차석포 라는것은 돌 던지는 기계의
일종으로 수차(水車)같이 돌아가면서 그 탄력을 이용 돌을 연발로 던저지게 하는 무기였다.
권율은 전국에 흩어저 있다가 집결한
일본군의 위력이 심상치 않을것에 대비 성책을 나무로 이중 삼중 쌓아 대비 토록하였다.
그는 또 사병 전원에게 수건을 물에 갖고 있게하고
회 가루 주머니를 각자 옆구리에 차게 하였다.
서울에 들어갔던 정탐꾼이 돌아와 권율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장군, 왜군이
서울시내 곳곳에서 전투 준비를 하고 챙기고 있습니다.경희궁 근방에서 왜군 한명을 잡아 알아본 결과 내일로 공격 일자를 잡았다합니다"
"음
알았다 , 수고했다"
권율은 전체 군사들을 둘러보고 병사들에게 다짐했다
"이사람, 권율이 병사들에게 고하노라,호남의 전주에서
시작하여 공주,천안 , 오산을 거처오는동안 독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쳤는바 이제 한강을 건너 비록 야산이나마 이작은 산에 진을 치고 왜군의 대군을
맞이하여 일전을 벌리게 되었다,
돌이켜보건대 병사들에게는 상세(常勢)가 없는것이며 물에는 상형(常形)이 없는것 같이 이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것은 이 사람의 방략에 달려 있고 공격하고 방어하는것은 이사람의 일담략(一膽略)에 있나니 아무리 적의 숫자가 많다고 하여 하물며 이를 두려워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