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s_0000136.jpg38 세의 나이로 명종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게는 세자가 없었다.유일한 세자 였던 순희 세자는 어려서 죽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중종의 서자인
덕흥군의 아들 하성군을 임금으로 추대 하였으니 그의 나이 16세였다 .
인순대비가 수렴 청정 하였고 그녀는 친 정동생 심의겸을 대사헌
요직에 앉혀 놓자 대사간 백인걸이 나서서 인순 대비에게 대들었다
"일찌기 문정 대비의 수렴 청정으로 나라가 말도 많았는데 대비께서는
어찌하여 수렴 청정 하시려는겁니까?"
여자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식이었다 .
인순대비는 이말에 마음이약해저 뒤로 물러 앉고
임금이된 선조가 직접 챙기기로 하였다 .이렇게 되자 심의겸의 위치가 난처 해질수 밖에 없었다.
심의겸은 한꾀를 생각했다. 자기 누이인
인순 대비를 찾아가 선조의 왕비 감을 물색 선조의 마음을 잡아 놓자는 계교였다 .자기 무리에 협조될 왕비감을 고르자는 속셈이었다 .
하지만 자기 집안에는 마땅한 왕비 감이 없었다.심의겸은 자기 친구중에 박응남이란 사람의 딸이 이쁘고 덕이 있어 보여 왕비로 추대하였다 이
왕비가 의인 왕후이다
심의겸의 발언권이 강화 되었다 .하지만 의인왕후의 몸에서는 소생이 없었는데 공교롭게도 대비가 데리고 있던
나인인 김씨의 몸에서 왕자를 낳았다 . 이름이 진이니 후에 임해군이다,두째 아들도 낳았는데 이름은 훈으로 후에 광해군이다 .나인김씨는 아들을
낳은 덕분에 공빈이된다 .
심의겸과 인순 대비는 경악했다 .두사람은 공빈에 못지 않는 여자를 골라 왕에게 소개하니 인빈이라는 여자다
.인빈은 요염한 여자로 소문난여자였다 . 금방 선조의 눈에 들었다 .
인빈은 질투심도 많았다 .그녀는 자기도 왕자를 낳아 공빈에
대항하려고 마음먹었다 .
인순대비가 추천한 여자이니 두사람은 조화가 잘 맞았다 .두사람은 아들을 낳기위하여 유명한 사찰 여러군데에다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리라고 하면서 궁중에 있는 황납 5백근을 각절에 보내고 그것으로 초를 만들어 기도 하라고 하였다
이때 정언 벼슬에 있던 정희적이라는 사람이있었다 .정언이라는 직책은 바른말을 임금께 고해 받치는 직책이었다 .정희적은 황납이 절로
새 나간것이 인순왕비 짓인줄 알아채리고 그녀의 동생인 심의겸을 표적으로 하여 임금에게 심의겸을 대사헌직에서 박탈 할것을 간언하였다
.
왕은 인순대비를 생각하여 정언 정희적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
심의겸을 미워하는 사람은 또있었다
김효원이라는
사람으로 퇴계 선생으로부터 학문을 배워 이름난 문장가였다 .그는 심의겸보다 3 살위였으나 명종때 세도가인 유원형에 붙어 밥술이나 얻어먹는
식객으로 있을때였다 .이때 심의겸도 윤원형의 집에 드나든 적이 있었다 .
공교롭게도 심의겸은 자기 친구에게 김효원을 얏 잡아 보는 발언을
하였다
"병신 같은 놈, 당대의 문장가란 놈이 겨우 세도가 윤원형에게 붙어 밥이나 얻어 먹는 거지 꼴로 있어?"
하였다 .이말은
김효원에게 들어갔다 .김효원은 이말을 듣고 분함을 참지 못하였다 .하지만 어쩌랴 ? 심의겸은 그 때 한참 뜨고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김효원은 열심히 분발하여 과거 시험에 응시 전랑이 되었다 .이때 마침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을 전랑에 추대설이 있자 김효원이
이를방해하였다
심의겸과 김효원은 적이 되고 만것이다 .
이렇게 되자 조정은 두개의 세력로 나누어 지게되 는데 김효원파는
영남이 고향인 파로 이성중, 허봉, 허엽, 류성룡, 이산해, 이발, 등이 었고 심의겸파는 신응시, 정철, 박순 ,이해수, 윤두수, 이산보,
등이었다 .
김효원의집은 서울 동쪽에있었으므로 동인이라 부르고 , 심의겸 파는 집들이 서쪽에 있다하여 서인이라 불렀다 .
끼리 끼리
모인 패거리가 나중에 큰 불씨가 될 줄은 모르고 자기 편 끼리의 붕당의 역사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가 이렇게 세력 다툼으로
시끄러운때 일본의 풍신수길이 지휘하는 15 만 8000 명의 대군이 부산 앞 바다에 나타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