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에미를 닮다니 ....그러면 ...)
왕세자 융은 그때까지도 자기를 낳은 어머니가 정현 왕후가 친 어머내로 알고 있었다.
성종의 첫부인 공혜왕후는 한명회의 딸이다.공혜왕후 한씨는 12살에 11살인 자산군과 가례를 올렸었다 .그후 자산군이 왕이되자 왕비가되었는데 애석하게도 17세나이에 소생이없이 죽는다 .
두째부인은 판봉상시사 윤기견의 딸인데 성종의 후궁으로 있다가 첫부인인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왕비로 책정 되던 해에 세자 융을 낳았는데 이 사람이 연산군이다.
세째부인이 우의정 윤호의 딸로 후궁으로 있다가 두째 부인 윤비가 폐비 되자 왕비에 책정 되었다.그녀는 진성대군과 신숙 공주만 있었는데
정현 왕후는 융을 자기 친 아들 처럼 키웠다
그러나 친 아들 처럼 키웠다 하더래도 융에게는 어머니인 정현왕후와의 관계가 그리 탐탁치 않았다 .무엇인가 서먹 서먹 했던것이다 .
융에게는 또 다른 큰 어머니인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를 잊지못했다 .
월산대군은 의경 세자의 장남이면서도 두째인 성종에게 임금자리를 양보하고 고양 땅 북촌에 별장을 지어 놓고 시와 술로서 책을 벗삼아 풍류적 생활을 하였다 .월산대군은 부인 박씨를 몹시 사랑 하였고 박씨도 무던히 착한 여인이었다 .말 하자면 월산대군은 동생인 성종과 의 골육 상쟁을 않기위하여 효성 우애,부부애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융의 친 어머니인 윤비는 왕이 자기 보다 다른 후궁방을 너무 잦게 찾는데 대하여 왕에게 투기를 부렸었다.
심지어는 자기 방에서 비상을 감추어 두었다는 이유로 빈으로 강등 될뻔 하다가 결국은 임금의 얼굴에 흠집 까지 나게 했다는 이유로 인수대비가 나서서 폐비로 만든후 사약을 받고 죽게 한것이다.
성종은 죽을 때 자기사후 100년 이내에는 폐비얘기를 일체 꺼내지 말라고 유언 까지 남기었다 .
앞에서 월산대군의 부인 승평 부부인 박씨 얘기가 있었지만 월산대군도 억울하게 왕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한 때문에 시와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동안 궁궐에서는 폐비 사건이 일어나자 박씨 부인은 더욱 외톨이가 된 세자 융을 애틋하게 생각하고 궁궐에 오기만 하면 융을 찾아 말벗이 되어 주었었다
세자 융응 정현 왕후 보다 외로운 처지였던 큰 어머니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모 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정현왕후가 어머니로만 알고 있었던 융에게 우연치 않게 죽은 윤비의 친정 어머니인 신씨가 왕에게 죽은 어미의 피 묻은 옷을 뵈워 줄 사건이 생겼다
왕의 후궁중에 장록수라는 빼어난 미모의 후궁이있었다 그녀는 왕을 음탕한 구렁으로 끌고 들어갔다 .
장록수가 자기와 잘 알고 지내던 임사홍 이란자에게 왕의 외할머니인 신씨와 접촉 윤비가 죽을때 상황을 조사시켜 왕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
"그분이 바로 상감마마의 외 할머니이십니다"
후궁 장록수의 말에 왕이 깜짝 놀랐다.
"뭐라고?"
"그분이 외 조모님이 틀림없습니다"
"그럼 생존해 계시기나 하는가?"
"그러 하옵니다"
"그래, 지금 어디계시느냐?"
"임사홍이 모시고 있사옵니다"
"임사홍이라면 왕실의 집안이 나니냐? 사람이 좀 모자라 등용을 안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하, 그렇지 않사옵니다 임사홍은 폐비 마마를 모함하는 무리들이 아직도 궁중에서 판치고 있어 얼씬을 못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하긴 그렇기는해...맨 옛날에 어쩌구 하면서 도대체 새로운 맛이 없는 썩은 놈들만 있어...."
"전하,폐비께서는 선왕에게 죄를 끼쳤다 하나 이것은 순전히 궁중의 모함하고 있는 인간들 때문에 일어난 사건일 뿐입니다"
"임사홍을 불러 오라고 해라"
다음 날 임사홍은 그의 아들이 성종의 사위로 있으면서도 소외 당하고 있었다가 장록수 덕분에 일약 도승지에 임명 되었다.
도승지가 된 임사홍은 왕을 그림자 처럼 모시었다.
"도승지 외 할머니좀 봅시다"
"전하 바로 오늘 입궐 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오, 그래 과인의 마음을 아는자는 도승지 밖에 없구려..."
"황공하옵니다"
폐비 윤씨의 어머니 신씨가 들어 오자 임금의 체통도 모르는듯 버선발로 외할머니를 부등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15년만에 외손자인 왕을 끌어않은 신씨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펑펑 쏟아지었다
겨우 눈물을 진정한 신씨가 그제서야 옷소매속에서 낡은 헝겁조각을 내놓았다 .피가 얼룩진 옷자락이었다
"왕비 마마께서는 돌아 가실때 이 옷 자락을 저에게 주시면서 훗날 동궁이 왕이되거든 꼭뵈워 드리라 했습니다"
왕은 얼룩진 피묻은 옷자락에 얼굴을 부비면서 통곡했다
"이 옷자락이 어머니의 한이 맺힌 옷자락이란 말씀이지오"
왕은 신씨 외 할머니의 자세한 이야기를 더 듣자 복바치는 슬픔을 감출수 없었다 .
왕은 통곡을 멈추더니 도승지 임사홍을 불렀다 .
"외 할머니 말씀 들으면 궁중에 누군가가 선왕께 고자질을 한자가 있었다는데 도승지는 누구로 보오?"
"전하 , 폐비께서 궁을 쫓겨 난것은 완전히 정귀인과 엄소용의 참소에서 그렇게 된줄로 아옵니다"
"뭐라고?"
정귀인 이라면 선왕인 성종의 다섯째 부인이고 왕에게는 작은 어머니이다 .귀인 정씨에게는 2 남 1녀가 있고 귀인 엄씨는 1녀를 둔 후궁이아닌가?
"괬심한것들"
왕의 입에서 험악한소리가 튀어 나왔다
"정귀인과 엄귀인을 당장 대령 하여라 "
왕이 직접 친국할 모양이었다
별안간 끌려 나온 두여인은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일이 확대 될줄은 몰랐다 .
왕 앞에 끌려나온 두여인을 꿀어 앉히고 왕은 화를 벌컥내었다
"너희들이 감히 내 어머니를 모함하여 돌아 가시게 까지 했지 ? 너희들 이번에는 너희 차례다 "
두 여인은 엄연히 성종의 부인들이다 .두 여인들은 작은 어머니 뻘인 귀인들에게 조카 뻘인 왕이 그럴수 있는가 하고 눈을 곱게 뜨지않았다.
"네 이년 ,이실직고 하렸다"
왕의 입에서 이번에는 욕까지 튀어 나왔다 .왕은 세자 시절의 성급한 근성이 튀어 나온것이다.
"공부는 원하는 왕자에게나 시킬 일이지 내게 왜 공부 하라고 성화야?"
동궁 시절, 왕이 스승인 조지서에게 내 배앗던 소리였다 얼마전 사슴의 배를 발로 찼던 포학성이나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하기는 싫어 했지만 원래가 총명하고 영악한 세자 였기 때문에 조지서가 간청을 해도 자기가 하고 싶을때만 공부를 했다 .
또 동궁을 보좌 하는 자리에 있던 허침도 항상 부드럽게 동궁을 이끌려 했지만 급한 성깔은 고칠수 없었다 .
"동궁의 성격이 거칠어 앞날이 걱정이군"
이런 소리가 궁중에서는 공공연히 나돌았었다
그런 동궁이 왕이 되어 자기 어머니의 원한 깊은 소리를 듣고 그냥 넘어 갈 왕이 아니었다
정귀인이 결박 당한채 왕에게 항의를 하였다 .
"전하 .아무리 지존의 자리에 계신 임금 이시지만 선왕을 보셔서라도 이렇게 대우 하셔도 됩니까?"
"아니 저 년이 아직도...네가 내 어머니를 모함 하여 폐비 시켰다는 사실이 명백하거늘 아직도 뻔뻔스럽게..."
정귀인도 만 만치 않았다
"폐비는 엄연히 국법을 어기고 선왕께 강짜를 부렸으며 독약을 두어 우리를 해치려 했다는 죄목이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왕이 이 말에는 말이잠시 막히었다
"네 이년 , 그래서 너희들이 피해를 본것이 있다더란 말이냐?"
"피해는 없었지만 , 피해를 볼 뻔은 했습니다"
"저런 뻔뻔스러운...."
왕은 용상에서 직접 일어 나더니 곤장을 내 놓으라고 하여 직접 정귀인과 엄귀인을 개 패듯이 패기 시작하였다.
정귀인의 머리가 터지고 엄귀인의 허리에서는 붉은 피가 낭자하여 그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성종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던 후궁들이었지만 왕의 매질에는 옴짝 달싹 하지 못하고 숨을 걷운것이었다.
왕은 이것도 분이 풀리지 않아 정귀인의 아들인 안양군과 봉양군도 옥에 가두었다가 훗날 이마저 죽이고 말았다
임금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점 잖지 않게 자기 선왕의 부인을 때려 죽이게 한 사건은 금새 소문이 퍼저 나갔다 .
"그럴 줄 알았서....임금이 어찌 그럴수가 있다는 말인가?"
궁중에서는 여기 저기 수군 수군 대기 시작하였다
왕은 그것으로 끝나지않았다 .다음날 자기 어머니에게 사약을 전했던 이세좌를 꿇어 앉히었다
"네 이놈, 아무리 선왕의 지시였다 한들 사약을 내 어머니에게 전해 돌아 가시게끔 하다니 ....괫심한놈 "
이세좌는 어명을 받들어 전한것 밖에 없는데 왕이 노하고 있는 이유를 몰라서 무슨 말인가를 할려고 했다 .왕은 이세좌의 변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저놈에게 사약을 내리라"
이세좌는 다른 곳으로 끌려 나가 자기가 폐비에게 내렸던 똑같은 사약을 들고 벌컥 벌컥 들여 마시고 죽고 말았다 .
왕은 폐비윤씨를 죽게 찬성한 사람은 물론이고 반대 않고 눈치만 보던 사람들 까지 모조리 죽이었다 .영의정 윤필상은 폐비를 찬성한 죄, 의금부 당상 이극균은 성종의 행동이 부당하다는것을 깨우치게 하지 못한죄,정창손,한명회,심희는 눈치만 보고 있었다는 죄 였다 .죄 치고는 별 희한한 죄를 뒤집어 씨워 죽이던가 부관 참시 까지 서슴치않았다 .
이미 저승의 불귀객이 되어 있던 정창손 , 한명회, 심회의 경우에는 무덤을 파내어 시체를 두동강이를 내었다.
그외에도 수십명이 무참하게 죽었다 ,숫자가 자그만치 100 여명정도 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왕이란 권력이 잘못쓰여지면 어떤 결과가 돌아온다고 후회 해보았자 소용 없는 짓이었다.
권력 그래서 함부로 아무에게나 주어져서는 않된다는 것이 대신들입 에서나 궁중 사람들 입에서 퍼저 나갔으나 그러나 권력은 벌써 저쪽에 가있으니 어쩌랴?
죽고, 귀양보내고 ,벼슬을 빼앗고,...성종시대의 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은 모두 오들 오들 떨고 있었다.
(이놈들, 선왕 시절에 기득권을 갖었던 놈등 뽄 때좀 보여 주리라)
왕은 점점 오만한 마음이 들기시작했다 .
뜻있고 학식 높은 선비 충신들은 궁중에서 점점 사라지고 요염한 여인 장록수와 모함질 잘하는 임사홍이 임금 옆을 맴돌며 왕의 마음을 더 자극하였다 .
피비린내나는 보복은 여기서 끝나지않았다 왕은 또 어명을 내렸다
앞서 세조가 단종을 페위 한 사건을 두고 김종직이란자가 조의제문을 지어 심저을 토로한사건을 두고 유자광이란자가 왕에게 일러바치면서 김종직이 왕에게 역심을 품었다하여 그일당을 죽인 일이있었다 .소위 무오년에 일어났다하여 무오사화라는 사건을 두고 또 거론을 하여 사건화 시키었다.
" 생각해보니 무오년 사건이 뒷처리가 잘못 되었어, 당시 영의정 윤필상 같는자가 영의정으로 서 일을 처리했은니 옳바로 되었겠는가? 다시 조사를 해서 명명 백백하게 밝히라"
왕이 자기의 권력을 이용해 자기에 걸림돌이되는 사람들을 씨 까지말리려 거세 하려는 술책이었다 .
이런면에서 왕은 영악하고 결단력이있는 인물이라고나 할까?
궁중의 모든 사람들은 왕의 안하무인적인 행동에 반감을 갖고 있었지만 감히 누구도 입밖에 내지를 못하였다
정성근은 승지로 있으면서 부모에게만 효도하고 정사를 돌보지않는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를 들어 죽이었다 .또 홍귀달이란 사람은 자기의 손녀를 왕이 후궁으로 달라는것을 거절했다가 귀양갔다가 죽임을 당했다
동궁 융에게 왕의 권력을 주어진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왕의 권력은 온나라를 뒤흔들고 있었다
피 비린내 나는 왕의 보복 바람은 세차게 전국을 난타했다.
다만 왕의 보복대상이 아닌 유일한 왕족이있었으니 그는 고양땅북촌에서 왕의자리를 자기아버지인 성종에게 왕의자리를 양보하고 유유자적하고 있던 월산대군 뿐이었다 .
월산대군과 왕과 사이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월산대군 부인 승평부부인 박씨를 왕이 세자 시절 친어머니같이따르던 정때문에 박부인의 말이라면 유일하게들어주었다
이를 기화로 박씨 부인인 박원종이 누이인 박씨에게 부탁 왕의 동부승지와 좌부승지자리를 차지하게 하고 왕의 내탕금 책임을 지게 하였다 .월산대군과 부부인은 유일하게 왕의 신임을 받는 사람중의 하나였다
왕은 가끔 사냥을 나갔다가 월산대군댁에 들여 박씨부인에게 공손히 문안 드리는 것을 잊지않을 정도였다 .
무오 사화때 살아 남은자와 강직하다고 소문난 선비 체포 작업이 다시 시작되어 바야흐로 세상은 왕의 입이 어떻게 떨어 질가 저전 긍긍하고 있었다 .
세자 융에게 권력을 쥐어준 대신들과 성종을 인수대비는 뒤늦게 원망하였으나 이미 때는 놓지고 만것이다. 인수대비는 왕이 저지르는 행동 생각을 하면 요사이 잠이 통 오지를 않았다 .
더구나 왕이 끼고 도는 장녹수라는 계집을 생각 하면 갈아 먹어도 시원치 않았으나 이제 인수대비는 그 계집을 견제할 힘이 없었다 .왕이 통 인수대비 앞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 궁궐은 온통 왕의 권력 남용과 장록수라는 여인의 손아귀에 있게 되었다.조정은 임사홍이라는 간신의 생각에 의해 모두가 좌우되는 세상이 되었다. 모든 대신들과 선비들은 왕을 탓하기 시작했다
"임금이 ... 저렇게 나랏일을 그릇쳐서야 내 원 참..."
임금은 한술 더떠 지금까지 좌부승지로 있었던 박원종등을 그 자리에서 해임 시키고 도승지 한자리만 남겨두었다.
박원종은 월산대군의 부인인 박씨를 누이로 둔 덕분에 그동안 동부승지,좌부승지를 하면서 왕을 보필하였으나 왕이 필요로하는 내탕금 문제로 자주 왕의 비위를 건드렸다 .
왕은 도승지 자리 만을 남기면서 박원종이 밉기는 했지만 그동안 왕의 재정 담당이었다는 정을 생각해서 그를 평안도 절도사로 멀직암치 귀양아닌 귀양을 보내었다 .
병마절도사 라는자리는 평안도 병권을 쥐게하는 중요한 자리였지만 박원종은 이를 좌천이라고 생각하고 평양 보다도 서울에 자주 드나 들며 누이인 박씨를 찾아 뵙고 한성으로 다시 들어 오게 해 달라고 간청 하고만 있었다 .
한편 왕은 임사홍을 도승지로 임명하여 왕주변에서 시끄럽게 간언하는 동부승지 좌부승지등 기구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명실공히 임사홍의 독무대가 된것이었다.
임사홍은 임금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였다 .왕의 폭정이 날로 심화 되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감히 이를 간하는 사람이없었다 .왕의 잘못을 간해 보았자 자만심에 빠저 있는 왕이 들어 줄리가 없고 오히려 죽이거나 유배를 보내는 판국에 누가 나설 사람이 없었다 .
언론의 주축 이었던 사간원이 왕의 잘못을 간하였으나 왕은 이 기관 마저 없애 버렸다 .왕은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관과 아침 마다 대신들과 하는 경연 조차도 없애 버렸다.
왕은 동궁시절 부터 말 많은 학자들을 미워 했었는데 권력이라는 칼이 쥐어지자 학문의 전당 이라고 할수 있는 성균관을 아예 없애 버렸다
왕은 동궁시절 골치 아픈 글 공부 보다 몇명의 시종들과 함께 말타고 우이동 근방에 사냥을 나갔을때였다
앞에 나타난 노루를 쫓다가 민간의 밭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동궁은 기분 좋게 궁궐에 돌아오자 사간원에서 이소식을 듣고 조사하여 성종에게 보고 한 일이 있었다
왕은 그것으로 성종에게 꾸지람을 들은 일이있었다
왕이 된지 얼마후 어느날 왕은 우이동 사냥하던 장소로 가자고 했다
밭이 밟혀 손해 보았다고 탄원했던 그 집앞에 당도 했다
채소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왕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시종 한사람을 부르고 귓속말을 해놓고 멀찍암치 시원한 정자나무 아래서 쉬고 있었다 .물론 귓속 말을 듣던 시종은 말을 타고 그 채소 밭을 엉망으로 하고 돌아왔다
조금있더니 헐레 벌떡 농부 한명이 뛰어 왔다
"아이고 어쩌자고 밭을 저지경을 만들었습니까? "
나이좀 들어 보이는 시골 노인이었다 밭에서 일하다 왔는지 옷도 후질근하게 더럽고 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왕은 기다렸다는듯이 노인을 노려보며
"노인께서는 무슨 일이오?"
하고 질문하였다
"밭이 저게 무엇입니까? 아무리 양반 들이시지만 저 채소 밭을 말 발굽으로 엉망이되었으니 이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노인의 말을 들은 시종이 나섰다
"감히 어디라고 임금님 앞에서 무엄한 소리를 하는고?"
"임금이신지 무시깽이신지 모르지만 사냥을 하겠다고 백성들의 밭을 이렇게 해 놓으셔도 되는겁니까?"
노인은 거침없이 말을 내 배앝았다
시종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임금의 얼굴만 처다 보고 있었다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노인을 바라보며 호령을 내렸다
"아니 무엄하게 ... "
왕이 이말을 듣더니 시종의 말을 막고 묘한 웃음을 웃으며
" 음 ,노인장 맞는 말씀이오 ,내일 노인장의 밭에 손해 본 만큼 보상 토록해 드리리다"
하고 궁으로 돌아왔다 .이날 시종들은 몹시 걱정했으나 기분 나뻐야 할 왕의 입에서는 묘한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
다음 날이 왔다 .왕은 임사홍에게 명령을 내렸다
"도승지는 어명을 내리되 도성을 기준으로 30 리 내외 있는 민가를 무조건 모두 철거 하도록 하라 ,특히 우이동 근방은 사람들이 살지않도록 조치하라 사냥에 방해가 된다 "
간신 임사홍은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임금에게 물었다
"그 노인 밭의 채소 값 문제는 어찌 하오리까?"
"도승지는 무슨 소리요? 임금이 하라면 했지 무슨 노인 채소 밭 어쩌구 하는거요? 채소 밭은 임금의 땅이지 백성들의 개인 땅이오? 그래서 무조건 철거하라 하지않았소? 보상을 하려면 노인만 보상해서 되겠소? 공정하게 도성 30 리내외 땅은 전부를 해야지 ...이 나라의 땅은 모두 과인의 땅이오 .불법행위를 한 백성들은 당연히 거처를 딴곳으로 옮겨 야지 ,그러니 이유 불문하고 일체 보상은 없고 강제 철거 토록 하오 "
왕이 명령을 내리자 그 노인 밭은 보상은 커녕 무보상 철거 대상 제 1호로 강제 철거 하였음은 물론이었다 .왕은 이 조치를 해놓고 얼굴에 묘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왕은 얼굴고운 여자를 골라오기 위해 채홍사라는 벼슬 자리를 만들어 전국에서 차출하기도 하였다 .차출되어온 여자들은 왕을 위안하는 노리개로 변하였다 .권력의 남용이 극에 달하게 된것이다
딸들을 차출당한 백성들의 원망은 극에 달하였다.왕은 점점 정치 보다도 먹고 노는데로 빠저들어갔다 .
이런일도 있었다.
공길(孔吉)이란 광대가 있었다.
왕은 이자를 불러 광대 놀음을 시키었다.
공길이가 외줄을 타며 늙은 선비 흉내를 내면서 임금 앞에서 대사를 뇌었다 .
"전하는 요순(堯舜)과 같은 임금, 나는 고요(皐陶)와 같은 신하 입니다 .요순은 어느때나 있는 것이 아니고 고요는 흔하디 흔하여 길가라면 어디서나 어느 곳에나 널려 있는 것이 고요 입니다 "
왕이 옆의 도승지에게 묻는다
"저놈이 금방 무엇이라 하였냐?"
".............."
도승지가 무슨 취지로 무엇을 물어 보는지 몰라 어리둥절 하자 왕이 화를 내며 말한다 .
"요순은 말 뜻은 알겠으나 고요가 무엇 이라는 말이야?'
그때서야 도승지가 말한다.
"고(皐)자는 본래 언덕이라는 뜻도있고 무엇을 부르고 고(告)할때는는 호자로도 부르기도합니다 .요(陶)자는 질그릇이라는 뜻이 있으나 화락(和樂)할 요자로 말하는듯 합니다, 또 고요라는 것은 화평하고 즐거웁게 노래 해주는 신하라는 뜻이 아닐가 하옵니다 "
그럴듯한 대답 이었다.
"뭐라고?"
"저 공길이라는 놈이 즐거움을 주는 신하라는 뜻같습니다 "
그때서야 왕은 얼굴 표정을 바꾸어 야릇한 얼굴로 공길의 연기를 주시한다 .
공길이 줄을 계속 타며 대사를 읊는다
"논어에 이르기를 임금은 임금 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 다워야 한다고 했다 .임금이 임금 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 답지 못하면 아무리 나라가 잘 살단고 해도 그말이 새빨간 거짓이 아니냐?? "
왕이 보다 못하여 줄 위에 공길에게 직접 묻는다
"방금 무엇이라 했느냐?"
공길이 대답한다 .
"논어의 말씀을 전했을 뿐입니다 "
왕이 되 묻는다
"이놈 , 방금 임금이 임금 다워야 한다고 했지?"
공길이가 왕의 말을 거침 없이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또 신하는 신하 다워야 된다고 했습니다 "
왕이 발끈한다 .
"아니 저놈이 ,이제 막 가자는 얘기냐? "
"......................"
"당장에 저놈을 끌어 내어 곤장 50 대를 치고 유배시켜라"
조선실록 연산군일기 기록된 연산 11년 12월 29일 일어난 사건 얘기 이다
이때 조정에서는 임금의 행동을 간하는 사람들을 한명도 구경 할수 없게 되었다. 언제 연산군한테 트집잡히어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
젊은 선비 박은이 왕에게 간하였다
"전하 ,모든 정사를 앞으로는 대신 원로들과 상의하여 처리 하시 옵소서"
"내가 누굴 무서워 누구에게 물어 처리한다는 말이냐?"
"선왕 들께서는 항상 조정 대신들에게 물어서 했나이다"
"그런 구태 의연한 늙은이들과 무엇을 상의 한단 말이냐"
"하오면 사간원을 부활하여 사간부나 사간원의 말을 들어 정사를 봄이 타당 한줄로 아뢰오"
(아니 이놈이 누구를 가르치는가?)
왕은 화가 났다
"그래 , 사간원이나 사헌부의 인사권이 내게 있느니라. 사간원이나 사헌부 벼슬있는 자들이 내 말대로 하지 않을때는 어찌하겠느냐?"
"아니옵니다 ,두 부서의 의견은 공정하게 검증된 것이니 들어 주실것은 들어 주셔야 합니다"
"네 이놈"
참다못한 왕이 화를 내었다
"저놈을 당장 하옥하라 "
바른말 잘하는 박은(朴誾)은 하옥과 당시 사형 시키고 말았다
왕의 집권 10 년이 이렇게 사건과 사건으로 얼룩지어갔다
왕의 학정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자 전국 각지에서 대자보가 붙고 투서가 들어 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