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앞의 이름 모를 꽃들
5/25/11 (수)
새벽 3시, 위의 통증으로 잠이 깼다.
먹은것이 언쳤는지 화장실도 다녀왔건만 계속 수상쩍다.
이럴까봐 얼마전 동네 약국에서 미리 사두었던 정노환 설명서를 읽어 보니 각종 배탈, 설사에 쓴다고.
Creosote 냄새 나는것을 한알 삼키자 마자 구토가 났다.
달려가 다 토해버리니 속이 시원하다.
이럴때는 토해 버리는것이 제일 좋은 약이다.
어제 저녁 청기와 집 순두부가 맞지 않았나?
그여히 탈이 나고 말았다.
서울 올때마다 맛있다고 막 먹어대는 탓인지 꼭 이렇게 한번씩 탈이 난다.
저녁 먹은지 8시간이나 지났건만 음식이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침에는 천마차, 커피등 다 생략하고 물 한병만 들고 또 침 맞고 뜸뜨러 갔다.
오늘도 입 아픈데 뜸은 여전히 왼손 네번째 손가락에,
그러나 허리 아픈데는 침을 발바닥에 놓는다.
침을 꽂고 누어서 두어시간 비몽사몽하며
"고어 성사 (古語成事) 또는 고사성어(故事成語)," 사자 성어(四字成語) 책을 읽었다.
You name it. 모르는것 빼고 다 알아 나는 아직도 한자에 꽤 유식하다.
언감생심 (焉敢生心)도, 비몽사몽 (非夢似夢) 도 어떻게 쓰는건지 알았다.
죽마고우(竹馬故友), 점입가경(漸入佳境), 임전무퇴(臨戰無退), 이판사판(理判事判),
금지옥엽(金枝玉葉), 만사형통(萬事亨通),
망연자실 (茫然自失), 단도직입(單刀直入), 간악무도(奸惡無道), 구태의연 (舊態依然), 궁여지책(窮餘之策)...
한자(漢字)로 어떻게 쓰는지를 알아야 재미 있다.
또 "대죽골" 점심상을 대했으나 먹을수가 없었다.
죽을 파는 집으로 갈것을 그랬나 보다.
힘이 다 빠진대로 지하철 타고 인사동 안국역에 내려 조계사 근처 승복 가게에서 개량 한복을 찾아보았다.
옷 가게를 여러곳 들렀으나 마음에 드는것은 없고, 무지 비싸고.
저녁은 바지락 칼국수. 먹을수가 없어 국물만 한 공기 홀짝거렸다.
저녁때 병한이 세종회관에서 듣는 오페라 강좌에 가야하는데 저녁을 아무거나 간단하게 먹어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에 와서 배탈 나는것이 제일 속상하다.
조금 기다렸다가 집에 가서 탈이 나던가 할것이지 먹고 싶은것 많은데서 이렇게 탈이 나면 내 꼴이 참 한심하다.
칼국수도 2009년에 왔을때 전북 익산, "남포 면옥"이라는 식당에서 먹어보고는 처음이다.
그날 비는 주룩주룩 오는데 Halloween 의 마귀 할멈이 연상되는
커다란 검은 무쇠 남비가 밥상 한 가운데 있어 식구대로 국수를 떠서 먹는것이 맛도 있고, 분위기도 아주 멋이 있었다.
더 비싸고 호화스런 음식 대접을 많이 받았으나 뻘건 배추 포기 김치와 함께 나오던 이 칼국수 집이 제일 생각난다.
오늘이 오페라 강좌의 마지막 날이라 손님 하나 데리고 올수있다기에 내가 빌빌거리면서도 따라 갔다.
오늘 순서는 Puccini의 "Gianni Schicchi."
내가 오페라에 무식한건 잘 알지만 적어도 여기 나오는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o mio babbino caro)" 는 잘 알지 않느냐고 병한이 끌고 갔다.
나도 오페라 강좌는 또 어떤건가 궁금도 했다.
세종회관의 작지만 깨끗하고 현대적이고 아주 고급스런 강의실에서 오페라를 영상으로 보여주는데
생방송은 아니지만 좋다.
본래 음악 전공이 아니고 무슨 상대 출신이라는 젊은 남자 강사는 간단한 오페라 줄거리를 이야기하고 나니
별로 할말이 없었다.
사람은 착하게 보이는데 더 이상 할말이 없어 무려 6명의 가수들이 부르는 이 노래만 한 사람 앞에 두번씩,
도합 12번을 보여준다.
누가 제일 마음에 드냐고 물어 가수 #2, #6 를 골랐으나 거기 대한 결말도 없다.
무척 좋아하는 노래지만 너무 여러번 들으니 골치가 아팠다. 게다가 고급스런 이 방에 에어콘은 부실한지
덥고 답답해서 계속 부채질을 해댔다.
이 사람 강의는 그만 들어야겠다고 병한에게 조언했다.
O mio babbino, caro
mi piace, e bello bello
vo'andare in Porta Rossa
a comperar l'anello!
Si, si, ci voglio andare!
E se l'amassi indarno,
andrei sul Ponte Vecchio
ma per buttarmi in arno!
Mi struggo e mi tormento,
O Dio! vorrei morir!
Babbo, pieta, pieta!
Babbo, pieta, pieta!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그를 사랑해요.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우리는 함께 포르타 로사로 가서 반지를 사고 싶어요.
예, 저는 가고 싶어요.
제가 그를 헛되이 사랑하는 것이라면
베키오 다리로 달려가겠어요.
달려가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지겠어요,
내 이 괴로움을, 이 고통을!
오, 신이시여, 저는 죽고 싶어요
강의가 끝 나자 멋있는 로비에서 wine, banana, 고급 cookie, 크로쌍 등을 놓고 종강(終講) 파티를 한다.
오늘이야 말로 서울의 별 봄밤, 창밖으로 화려한 광화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 년배의 사람들은 찾아 볼수가 없는데 이런곳에서 우아하게 오페라 감상하며 사는 젊은 이들.
참말로 격세지감 (隔世之感)을 어쩔수 없었다.
올때는 401번 뻐쓰를 타고 오랫만에 서울역, 남대문 등, 휘황찬란 (輝煌燦爛)한 서울의 야경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