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s_00007.jpg
세조에게는 4 남 1 녀가 있었다. 부인이 두명이 있었는데 정희 왕후와 근빈 박씨였다 .
정희 왕후에게는 세종대왕때 태어난 세자 장(暲)이 첫 아들이었었는데 그는 이유 없이 병명을 알수 없는 병으로 시름 시름 앓다가 죽었다.
단종이 죽던 다음 해였는데 .그때 나이 스므살이었다.장은 평소 삼촌인 단종이 억울하게 죽은 사건에 대하여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다
장남 장이 죽은다음 차남으로 해양 대군이 있었고 그밑으로 의숙공주가 있었다. 근빈 박씨에게서 태어난 자식으로 덕원군과 창원군이 있다.
세자 장이 죽던 3 일전 장이 꿈을 꾸었는데 자기의 큰 어머니인 문종 왕비 현덕 왕후 권씨가 흰 옷을 입고 긴 머리를 풀어 흐뜨린채 꿈에 나타나 장의 아비인 세조를 저주 하는 것이었다.
"나는 홍위(단종의 본명)의 어미다. 네 애비가 감히 내 아들을 목졸라 죽이게 하고 너희들도 마음 편히 살줄로 알았느냐? 그러고도 네 가 온전 할줄 아느냐? 오냐 , 내가 며칠후 너를 데려 가겠다"
의경세자가 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는 온몸이 식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온몸이 갑자기 춥고 떨리었다.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 꿈 이야기를 어머니인 정희 왕후 에게 말하자 담이 컸던 그녀도 속으로 소름이끼첬으나 겉으로는 태연 한척 하면서 의경세자의 나약함을 나무랬다 . 그러나 이 꿈이있던 세자 의경 세자 장은 3 일후 세상을 떠난 나고 만다
세조는 맏 아들 장을 몹시 사랑했었다. 장은 평소 예의 바르고 학문을 좋아 했었다.아까운 아들이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이었다
세조는 아들이 죽은후 잠을 제대로 이룰수 없었다 .장이 살아 있을 때 악몽에 시달렸다는 얘기가 자꾸만 떠 오른 것이었다.
의경세자의 세자빈인 소혜왕후는 좌의정으로 있던 한확의 딸 이었는데 졸지에 남편을 잃은 그녀는 아들 월산대군과 아주 어린애인 자을산 대군과 딸 명숙 공주에게만은 죽은 단종에 대한 생각을 못하도록 철저히 단속하였다
세조는차남 해양대군을 세자로 삼았다.해양 대군은 바로 후에 왕이된 예종이다 .그의 나이 19세 때이다 .
세조는 아들 장이 죽자 눈앞이 깜깜해지는것 같았다 .그는 자기의 잘못으로 천벌을 받는게 아닌가하고 하고 두려워했다.죽음이 두려워진 세조는 자주 용문산에 있는 절에 나갔다 . 마음을 달래기위하여 사냥을 나가기도 했다.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그는 죽인다는 소리자체부터 싫어젔다 .사륙신 사건 이후로 역모 소리도 듣기싫었다.
게다가 세조 11년에는 김처와 최윤이 반역을 꾀하다가 들켜 처형된 사건이 또 생기었다.
세조는 국가 대사보다 자신 스스로의 마음병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세상에는 좋지않은 소문이 떠돌았다 .세조가 단종의 어미인 현덕왕후의 묘를 파헤처 없애 버렸다는 소문이 나돌고 세조가 상원사에 사냥을 나갔었는데 별안간 천둥 번개가치며 부처님 상이 났었다는 얘기도 퍼지었다 .그는 피부병 때문에 몹시고생하여 온천에 자주 다녔는데 이를 두고 단종의 어미인 현덕 왕후의 저주때문이라는 소문도 퍼지었다
세조 13년에는 이시애라는 자가 함경도 지방에서 민심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었다.조정에서는 남이를 대장군으로 삼아 3만의 군사를 데리고 이들을 치게 하였다.
이싸움을 주도한 남이는 27세의 청년대장으로 이시애를 잡아들이고 북쪽의 여진족 촌을 습격하여 공을 세웠다
세조는 당장 남이장군을 병조판서에 앉히었다..파격적 인사였다.27세 나이에 병조판서에 오르자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타났다.세조가 골치가 아팠다 .그는 병조판서를 취소하는등 처음의 살기등등하던 마음도 점점 나약해지기 시작했다 .
세조는 결국 52세의 나이로 권력이 무언지 마음 고생만 하다가 왕이된지 14년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왕이죽자 세조의 왕비이며 예종의 어머니인 정희왕후는 아들 해양대군에서 왕이된 예종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자기가 섭정을 선언한다 (29)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