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의 발자취' 독후감 및 부고 을지로 재이전(1958년) 비화 / 6 이완규, 9 안재훈

by revhokim1 posted Jan 01,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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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규 선배님께

“모교의 발자취”를 잘 읽었읍니다. 왜  이선배님을 비롯한 선배님들이 모교를 그렇게 사랑하는지 알았습니다.                

모교의 발자취 중 생각나는 한 토막이  있읍니다.   6.25전 을지로 5가에서 용두동으로 이동하는 장면은 잘나타나 있으나   용두동에서 을지로 5가로 다시 이동하는 장면은 나타나지 않았읍니다. 우리가 다시 가야할  교사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아주 낡은 건물이었읍니다. 교실바닥에 깔린 송퓽?먼지속에서 골이 많이 파이고 못이 높이 솟아나 있었읍니다. 청소부터 해야하는 상황에서 쌓인 먼지를 청소하는 문제는 쉽지 않았읍니다. 더군다나  물을 뿌리면 즉시 꽁꽁 얼어 붙는 겨울, 물걸래로 교실바닥을 닦을수 없었읍니다. (6회까지는 경험하지 못한일)

강당청소를 할 때 – 각반에서 차출된 학생들이 손을 대지 못하고 손을 호호 불고 있을때   김영훈 교장선생님이 오셔서   “너희 마음을 닦는 자세”로 해  보라고 권면해 주셨읍니다. 그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읍니다. 물을 뿌리면 즉시 얼어 붙는 강당 바닥을 열심히 닦았고  그 말씀은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해 주었읍니다. 평생 살아 오면서, 지금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이 말씀을 기억합니다.  사대를 졸업하고 학생들을 가르칠때도 이말씀으로 가르첬읍니다.

이 교육철학은 부고의 교육에도 적용되어 교사와 학생이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잠재능력을 길러냈고 서울대학 입학율을 최고로 올려 천하부고라는 별칭을 받게 된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기적으로 을지로5가로 옮긴이후의 일입니다. 천하부고라는 꼬리가 붙게된 7회,8회,9회의최선을 다하는 에피소드가 부족한것 같습니다.

(6회 선배님들의) 용두동에서 패싸움이 있었을때  김영훈 교장이 싸움에 가담한 학생을 퇴학시킨것은 교육자의 자세가 아니라는 비판에 대하여,  용서해서 기회를 주어 더 큰인물로 키우는 것이 교육자의 자세로 보는 견해도 있을수 있으나  법을 어기면(싸움하면) 벌을 받고 선한일을 하면 상을 받는것이 정의의 사회라는 것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부고는 자랑입니다. 자랑을 어디서 찾을것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겠읍니다.  

안재훈 


 


 


■ 안재훈 후배님:


오늘 모임에 고단하실텐데, 또 내일 교회 나가실 준비도 있으셨을텐데, 졸고 '모교의 발자취'를 단숨에 읽고 독후감을 보내 주신것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1954년 3월에 우리 6회가 졸업한 후에 그해에 다시 을지로 5가로 부고만 이사 간 걸 사실은 나는 전혀 몰랐었고, 연전(2007년)에 내가 동창회보 주필로서 '모교의 발자취' 기획을 하면서 그 직전에 도합 4번의 좌담회를 했고, 안재훈 동문님이 지적하신 교사 재이전(부고)은 제2회 좌담회에서 전개될 토픽이었고, 매번의 좌담회 직전 며칠간은, 아까 낮의 모임(석산정)에서 보여드렸던 '서울사대부고 반세기사' 및 '부중60년사'에서 해당되는 회기의 관련사항들을 나름대로 스터디하고 그렇게 해서 매 좌담회 때마다 토픽을 사전에 준비하여 나갔었습니다.


 


그런데 제2회 좌담회때, 즉 을지로 재이전 때의 부고 재학생 당사자들이었던 7, 8, 9회에서 단 한사람도 그날의 좌담회에 참석을 안했습니다. 물론 인선은 동창회장등 임원들에게 일임 하였으되 몇회부터 몇회가 해당되니 꼭 각 회기에서 최소 한 두 사람씩이라도 참석토록 독려해달라고 매번 회장단에게 부탁 했었습니다. 사실 회보 주필로서 좌담회 기획 그리고 기사 작성만 해도 엄청난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일 (참석자 동원문제)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제1회 좌담회(이때의 인선 및 접촉은 내가 직접 했습니다. 바로 나 자신이 그 좌담회의 내용에 해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의 제2, 3, 4회 좌담회의 참석자들 면면을 보고 나 자신이 많은 실망과 좌절을 느꼈었읍니다.


 


모교의 소위 '야사'를 쓴다고 하면서, 정작 그 역사의 주인공들이 많이 참석을 안했고 귀중한 증언들을 많이 들을수가 없었으니, 내 마음대로 창작을 할수도 없는 것이고...그래서 그 정도로나마 기사를 작성하는데도 참 애 많이 먹었지요.


그래서 사실 솔직한 내 심경(마음 밑바닥의 깔린 소망)을 피력하자면, 오늘 우리가 발족한 '한줄기회'를 통하여 '모교의 발자취' 를 보충 증보하는 우리 모교의 야사(野史)를 만들어 나가자 하는데에 주안점이 있었습니다. '모교의 발자취' 뿐만 아니라 오늘 큰봉투속에 있는 몇가지 통신문들을 일부러 삽입한 이유는 바로 안재훈동문같은 분들이 나오셔서 재학시절의 감춰진 이야기, 비화, 비사, 심지어 스캔들까지라도 낱낱이 꺼집어 내어서 우리 모교의 역사(야사)를 재창조하자는 뜻에서입니다.


다행하게도 필라델피아 부고동창회(비록 숫자는 30여명밖에 안되지만, 그 애교심, 동창회 사랑은, 공칭 500명을 자랑하는 우리 남가주 동창회는 '저리 가라' 입니다.) 동문들 임원 몇 명이 bugophila.org를 1년여 전에 시작하면서 웹사이트 관리자인 15회 동문 김호중 목사가 토 일 양일 교회일 빼고는 주중에는 이 사이트 관리에 매달려 있습니다.


 


나는 우리 남가주 웹사이트가 관리자가 책임을 수행하지 않아서 사장되어 버리다시피 되어 정말 절망하고 있는 중에, 동부에 있는 이병응 후배 동기생들(10회)의 소개로 그들의 웹사이트를 알게 되어 간단한 글도 써보내고, '모교의 발자취'도 보냈더니, 미국 각지 및  한국의 총동창회 및  각 동기회 등에서 반응이 예상외로 커지는 과정에서, 이 김호중 관리자가 사이트 이름도 bugoUSA.org 로 바꾸고, 또 '동문 링크란'도  신설하고, 미국 한국 등  지역을 초월한 사이트로 개방했더니, 작년말에 사이트 방문객이 1만명에 불과했던 것이 7, 8개월 만에 4만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나의 숙원이던 우리 모교 역사 다시 쓰기 (야사라고 함이 마땅)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고, 오늘 방금 보내 주신 안재훈 동문의 글이 바로 그 효시가 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우선은 안재훈 동문부터 시작해서 을지로 5가로 재이전한 이야기를 위시하여, 우리 선배나, 더더군다나 후배들이 모르고 있는 야사 이야기를 당장 시간 나시는대로 간간히라도 집필을 하시고, 또 동기생이나 선후배들에게도 많이 권해 주십시요.

오늘 써 보내주신 '모교의 발자취'의 독후감도, 일간에 동부의 bugoUSA.org  로 보내겠고, 잇달아서 관리자 김호중 동문이 안재훈 동문께로 직접 접촉하실수 있도록 여기 안 동문의 이메일 주소도 포함시킵니다 (jaehoonahn38@hotmail.com).


 


바로 이런 일들이 앞으로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발족한 '한줄기회' 회원들(1회-10회)에게서 많은 비화/야화등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그 이후 동문들의 역사는 상술한 부고 및 부중 정사(正史)에 거의 정확하게 나와 있거든요.

그리고 평생을 교직에 계셨던 분의 입장에서 '간단한 소신/소감' 말씀하신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그 사건(1953년말 겨울의 6회 동기생들과 동네 깡패들과의 난투극 사건)의 당사들이었던 우리 6회는 그 사건이 불과 졸업 몇 달 전에 일어났던 일이고, 퇴학 당한 4명은 바로 졸업 한 달 전에 퇴학 당했던 것이고, 또한 단순한 깡패 행위의 싸움이 아닌, 실로 명명 백백한 대의명분 (우리 여학생들을 밤길에서 기다려서 괴롭혔던 동네 깡패들의 행패)이 있었던 사건이었고, 오죽했으면 고3 남녀 200여명 전체가 한달후에 거행될 졸업거부를 결의 했겠습니까. 졸업 바로 그 직후에 대학 입시가 기다리고 있었던 바로 그러한 중요한 시기에........ 그 일만큼은 당시 당사자들이었던 고3학생들이 아니면 깊이 이해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쨌건간에, 안재훈동문이 지적하신 점도 결코 한 마디로 무시할 수만은 없는 좋은 지적이신 것임은 틀림 없습니다. 앞으로 많은 야사들이 발굴이 되면서, 수반해서 활발한 의견의 교환도 있음직하리라 보며, 바로 다 이러한 것이 우리 후세의 후배들을 위한 우리 선배들의 귀한 '선물'이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바라건대 안재훈동문을 위시, 많은 동문들에게 이 좋은 취지를 널리 알려 주시고 많히 참여하도록 솔선 수범해 주십시요. 참으로 감사 합니다. 당장에 독후감을 보내주셨으니....

이완규 드림

추신: 오느 모임에서 잠간 언급했지만 모교의 부중 부고의 정식 역사에서 누락된 6.25 당시의 6학년(3회), 5학년(4회), 4학년(5회...나도 바로 여기에 해당)들중 무려 수백명에 달하는 진짜배기 부중 본교생들 이름이 증발되었습니다. 아예 재학했었다는 존재 조차 없다는 기맥힌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교 (부고... 현재 종암동 위치)의 낡은 교사 지하 창고 어느 구석에 6.25 이전의 학적부들이 먼지에 쌓여서 있는 걸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수백명 학생들은 4년제 부중, 5년제 부중, 6년제부중 졸업생으로서 정식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나의 목적입니다.


 


서울의 이런 처지의 본교생 동문들을 규합해서 특례법을 만들어서라도 이들에게 특별졸업장을 그들 생전에 가슴에 안겨주려고 하는 웅대한 계획과 포부가 있고, 당사자들인 동지들만 규합이 되면 반드시 실행이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주: '한줄기회' 모임 10월 17일(토)의 행사후 그날 밤에 보내온 안재훈 후배님과의 메일 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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