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에 첫 아이를 낳은 며느리에게 무슨 음식을 해다 줄까 이리저리 생각을 하다가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 했는데 평소에 식성이 짧은 며느리라서 더욱 조심이 간다.
“얘, 다음 주 목요일에 애기보러 올라 갈 때에 음식 좀 해다 주련?”
“고맙습니다, 어머니. 힘드시지 않으세요?”
“힘은 무슨! 그래, 무얼 먹고 싶으냐?”
“군만두가 먹고 싶어요.”
“군만두?”
문득 38년전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일이 떠오른다. 남편이 부산 건축현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공사장 울타리에 붙어 있다 싶이한 단칸 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하는 중에 애가 들어 몸이 몹시 나른했다. 읽던 책을 덮어두고 잠간 눈을 부쳤는데, 어느 새 해가 져서 남편이 귀가했다. 미안한 마음으로 일어나 서둘러 밥을 지으려하는데, 남편이 묻는다
“내가 나가서 음식을 사 오는게 더 낫지. 뭐가 먹고 싶소?”
“야끼만두...”
“그래? 그럼 잠깐만 쉬고 있어요. 내가 저 밑에 있는 중국집에 금방 다녀올테니...”
이해심 많은 남편이 참 고마웠다. 사실은 요즘들어 부쩍 야끼만두가 먹고 싶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휘파람을 불면서 음식봉지를 들고 들어선다. 조그만 밥상위에 음식을 펴 놓으니 그 냄새가 얼마나 구수한지! 맛있게 먹는 나를 위해 차가와지라고 우물속에 담궈 놓은 코카콜라 한 병을 가져 오더니 수건으로 물끼를 닦아내고 뚜껑을 따 준다.
얼마전에 우물속의 지렁이를 보고 질겁을 한 뒤부터, 남편은 상관치 않고 끓인 물을 마시지만, 나의 지정 음료수는 코카콜라로 바뀌었다. 하기사 남들이 모두 칠성사이다를 마시는데 나는 코카콜라를 마시니까 특권층으로 소속된 것 같아 은근히 유쾌하던 터였다. 거기다가 며칠동안 먹고 싶었던 야끼만두를 아직 따끈따끈한 채 먹으니, 너무 행복했다.
“어때요? 맛 있오?” 남편의 물음이 다정하다.
“그럼요. 아주 맛 있어요. 정말 고마워요.” 사실 말로 한 대답보다도 내 속 마음으론 더 고마웠다.
눈 깜짝할 틈에 한 상자를 다 먹고, 다른 상자를 열었다. 나도 믿을 수 없이 두 상자나 되는 군만두를 거의 다 먹어간다. 배가 부르니 기분이 대단히 좋았다. 다 먹고 이제 마지막 한 개가 남았을 때에 남편의 저녁이 생각났다.
“참, 당신은?”
빙긋 웃으며 남편이 대답한다.
“지금 나가서 하나 더 사와야지.”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일이 남편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내가 그렇게 군만두 2인분을 다 먹는 동안 맛 있는 음식을 코 앞에 두고 기다리면서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그러나 남편은 그 때 내가 잘 먹은 것이 오히려 무척 고마웠던 모양이다. 친정어머님이 살아계셨을 때 사위 장모간의 대화중에 이따금 그 일을 회상하고 어머니와 함께 한 목소리로 나를 늘 칭찬했다.
“저 사람이 애를 가지면 음식을 평시보다 오히려 더 잘 먹어서 아이들이 저렇게 튼튼합니다. 복중에도 아주 큰 복이지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닮기도 하는가? 이번에 보니까 본시 입이 짧은 우리 며느리도 아이 갖고 나서 식성이 확실히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