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사무실에 나와 e-mail 을 확인하고 급한 메일에 답장을 보내고 나면
30 분 정도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 이 때 회사 앞에 있는 공원을 2 ~ 3 바퀴 산책을 하면서 심호흡도
하고 하루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공원 주위를 산책하면 계절과 요일에 따라 만나는 대상들이 다르다. 비둘기와 검은 새들은 텃새로
항상 만나는 데, 늦 봄에는 검은 새들이 새끼를 부화하여 기르기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고
가끔씩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아이들을 포함하여 사람들들로 공원이 붐비며 아침부터 시끄럽다.
가을이 되어 찬 바람이 불면 공원은 조용해지며, 공원 주변에 심어 놓은 참나무들에서 도토리 열매가
산책길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봄부터 공원의 잔디밭을 뛰어 놀기 시작하는 다람쥐들은 새로
태어난 새끼들이 대부분이고 작년 가을에 보았던 덩치 큰 다람쥐들은 보이지 않는다.
새끼 다람쥐들은 주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 사람들이 조금만 가까이 가도 재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가
숨곤 하여 좀처럼 가까이 할 기회가 없다.
산책길에 도토리 열매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길을 걷다가 잘 익은 도토리가 보이면 집어들고
주변에 다람쥐가 없는 지 살펴 본다. 그리고 다람쥐가 보이면 도토리를 던져 준다. 작년 가을 내내
몇 마리의 다람쥐들과 아침마다 사이 좋게 지내며 도토리를 던져주곤 하며 사진도 찍었는 데, 올해는
그 때 사귄 다람쥐들은 보이지 않고 경계심 높은 새끼 다람쥐들만이 보여 아쉬움이 컸다.
도토리가 떨어지는 계절이 오면서 나는 다시 도토리를 주워 다람쥐들에게 던져주는 일을 시작했다.
아침 산책길에 몇 일동안 도토리를 던져주자 그동안 낯을 가렸던 다람쥐들이 하나씩 도망가지 않고
일정한 거리는 유지하되 내가 던져주는 도토리를 받아 먹기 시작하였다.
날씨가 더 추워지고 공원에 사람들이 자신들의 요란한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잔디를 덮고 장식물들을
설치하는 11 월 중순까지는 아침마다 이 다람쥐들과 친구를 하며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이 잘
익은 도토리를 많이 먹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 그들의 부모들과 같은 모습이 되면 그들도 다시 겨울에
새끼들을 낳고 내년 봄이면 그들의 새끼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내년에도 아침마다 산책길을
걷겠지만 만나는 다람쥐들은 다를 것이며, 가을이면 또 다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 만나는 다람쥐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내년 봄은 잊자. 대신 올 가을, 아침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라도 더 잘 익은 도토리를 던져 줄 수 있도록 산책길과 나무 아래를 잘 살펴 보자.
그리고 그들의 맑은 눈동자를 보면서 나도 행복감을 느껴 보자.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