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속에 새겨진 학창시절
추억이니, 즐거움이니, 그리움이니,
공주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기만 했다.
애시당초 맞지 않는 교복을 입게 된 무수리가
소위 일류라는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6학년 담임선생님 덕분이었지.
입학원서 써주고,
입학금 손에 쥐어주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던가.
버티기 힘든 학교생활, 턱없이 좋은 학교였다.
꼭 같은 교복 속에 친구들
그들과 나 사이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거리가 멀었다.
내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하려해도
가정교사다, 과외다, 학원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무수리에게는
도저히 경쟁이 될 수가 없었다.
과제물을 준비할 수가 없어
잊어버렸다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허구헌날 교실에서 쫓겨나
벌을 설 수밖에 없던 시절
복도에서 벌을 서면서
속절없이 먼 산을 쳐다보며
교실 안에 공주들을 부러워했다.
아버지의 돈벌이가 없는 겨울
활짝 핀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에 가을이 싫어진다.
말똥이 굴러가도 깔깔거리던 시절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지긋지긋한 배고품에 시달렸다.
그 뿐이랴!
출석은 했으나 결석으로 처리되던 서러움
일년에 4번 내는 등록금을 단 한번도
제날짜 안에 납부할 수가 없었다.
유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감생심 공주가 되고 싶었다.
배고픔을 면하려면,
공주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을 하고 또 하고
교복을 벗어버린 후
질박한 삶 속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헛손질과 몸부림에 지쳐버렸다.
Why me?
지금에 와서야 깨달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자맥질을 오래 견뎠다.
하나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