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 Homeless를 돕는 목적
1. Homeless를 돕는 일반적인 목적
1) 게으른 거지들을 왜 돕느냐?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까짓 게으른 거지들을 왜 돕는냐? 돈 벌어 놀기도 바쁜데... 흑인이나 맥작놈(히스패닉인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들 도와줘봤자 소용없어. 도둑질이나 하고, 마약이나 하는 것들...”
맞습니다. 대부분의 Homeless들의 모습이 그리고 생활이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이 듣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 말하는 속에 돕기 싫다는 이유 속에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핑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마음속에는 예수님의 마음이 조금은 있습니다. 남을 도와야 한다는 양심(?) 같은 것이 모두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당장 하기 싫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 그 이유를 찾으려 하는 것이지요. 돕고 있는 사람은 그런 이유를 말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이 따로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으로는 도와야 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지만 행동에 옮기지 않고 말만합니다.
2) 저 좋아서 하는 일에 왜 남에게 부담을 주느냐?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 좋아서 하는 일에 왜 남에게 부담을 주느냐고. 그건 부담을 주어서가 아니고 스스로 부담을 느끼는 것일 겁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움켜쥐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양 99마리 가진 사람이 1마리 가진 것을 빼앗고 싶다는 말로 잘 표현이 되지요. 가진 사람일수록 의심이 많습니다. 마누라도 못 믿는다는 말이 있지요. 그렇다고 가진 사람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가진 사람은 그만큼 노력을 해서 갖게 되었기에 쓰는 데는 더욱 신중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쓰는 목적이 뚜렷하고 효과에 큰 비중을 두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분들은 낭비를 가장 두려워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Homeless 선교를 하려면 Homeless가 되어야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Homeless 선교를 하려면 Homeless가 되어야 한다.” 고. 그러나 나는 강력하게 반발합니다. "내가 Homeless가 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고 말입니다. 만약 내가 Homeless가 된다면 그들과 놀아주는 것 외에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들 보다는 나아서 그들을 돕고, 그들을 낮고 천한 자리에서 적어도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본 위치로 되돌려 놓아야 되지 않을까요?
어려서 내가 배가 고파서 고생을 해보았기에, 그들의 고통을 내 몸으로 느낄 수 있어 그들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희망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굶주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기에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수리에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조상들로부터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수혜국에서 수여국으로 바뀌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우리 가족들을 전쟁으로 인해 오랫동안 Homeless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산 세월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바로 살려고 노력한 우리 부모님들 덕에 미국까지 와서 남을 돕는 일을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고 삽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을 말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영양가 없는 일만 골라 하느냐?” 고. 위탁양육 시설에서 자란 나의 아이들은 이모가 ‘바보’ 라며 그 동안 배우고 취득한 학위로는 얼마든지 돈도 많이 벌고 잘 살 수 있는데 왜 거지들하고만 노느냐고 대들기도 했습니다.
잘못 키운 아이 하나가 온 동네와 온 사회를 시끄럽고 많은 이들을 두렵게 만들듯이, 잘 키운 아이 하나가 온 세상을 밝고 행복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Homeless 한 사람이 온 동네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더럽고, 냄새나고, 도둑질하고, 때론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 새 삶을 찾아주면 온 동네 사람들의 염려와 근심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는 그들을 꼭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4) Homeless들을 도와야 하는 이유를 정리하면,
(1) 그들을 도우면 범죄가 줄어듭니다. (2) 그들을 도우면 거리가 깨끗해집니다. (3) 그들을 도우면 밤거리의 위협이 줄어듭니다. (4) 그들을 도우면 마약이나 알코르 사용이 줄어들고, 사회를 정화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5) 그들을 도우면 새로운 일꾼들이 생깁니다. (6) 그들을 도우면 우리가 내는 세금이 절약됩니다. (7) 그들을 도우면 우리의 앞날이 밝아집니다. 5) Homeless를 돕는 것은 선택(Option)이 아니라 의무(Obligation)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 더불어 사는 삶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을 살다 죽으면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필요한 것이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사람답게 살려면 쓸 수 있는 분량이 정해졌다고 봅니다. 나머지는 남을 위해 써야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보다 더 많이 써버리는 것은 모두 낭비를 하는 것이지요. 그건 하나님의 경제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겠지요.
‘십일조’ 라는 말을 아시겠지요.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십일조 정도는 남을 위해 쓸 수 있어야 이 사회가 바로 서지 않을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시대부터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십일조란 원래 구제헌금을 말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십일조 헌금으로 커다란 성전을 짓는데 모두 써버리고 원래의 하나님의 목적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교회 분열에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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