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자동차를 운전하여 2 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나파 밸리를 가벼운 기분으로 자주 찾다보니 이제
나파 밸리도 가깝게 느껴진다. 그래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파 밸리를 찾을 때에는 안내 책자와
인터넷을 보면서 특별한 행사가 없는 지 확인하면서 방문할 와이너리에 대하여 미리 공부를 한다.
우선 유명한 와이너리들을 찾아 보고 다음으로 내가 관심이 있는 역사나 이야기 거리가 있는
와이너리들을 하나씩 방문하다 보니 이제 제법 많은 와이너리들을 돌아 본 것 같다. 물론 멋있는
건물과 정원이 있는 와이너리들은 내가 우선적으로 찾은 곳이었다.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는 프랑스의 와이너리에 비하여 역사가 짧지만 빠른 시일 내에 우수한 포도주를
생산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 포도주 산지가 된 것은 미국 특유의 개척정신과 business mind 가
그 바탕에 있다. 나파 밸리의 와인을 이야기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Mondavi 가족의 이야기다.
특히 Mondavi 가족의 2 세대인 Peter Mondavi 와 Robert Mondavi 에 대한 이야기는 각자의 성격과
사업 전개 방법, 이들의 성격 차이에 의한 불화와 화해, 나파 밸리의 역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등에서 볼 때 나파 밸리를 단순한 포도주 산지를 너머 포도주 문화 산업 지역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지금도 아흔이 넘은 나이에 일을 계속하고 있는 Peter Mondavi 는 Mondavi 가문의 둘 째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가 나파 밸리의 본격적으로 상업화 된 첫 번 째 와이너리인 Charles Krug Winery 를
인수하여 나파 밸리에서 와이너리 산업을 성공시키 후, Peter Mondavi 와 그의 형 Robert 는 서로
다른 성격으로 인해 잦은 마찰을 빚었다. 차분하고 자신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Peter 에 비하여
Robert 는 호탕하고 사업가 기질이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Charles
Krug Winery 에 어머니를 거쳐 Peter 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Peter 와 Robert 의 반목은 심해져
결국 Robert Mondavi 가 가족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와 자신의 와이너리를 만든다.
이 Robert Mondavi Winery 는 현재 나파 밸리의 한 복판에 위치하면서 가장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와이너리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Robert Mondavi 가 Mondavi 가문을 대표하는
나파 밸리 와이너리의 원조로 알고 있다. 실제로 Robert Mondavi 는 사업가 능력을 발휘하여
나파 밸리의 와인 산업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나파 밸리 최고급 와인의 상징인 Opus One 을
프랑스 와인 회사와 공동으로 개발하였고, 나아가 Lodi 라는 지역에 대중적인 와인 생산을 위한
또 다른 와이너리를 개발하는 등 몇 해 전 죽을 때까지 와이너리 산업에서 홥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는 또 대학과 사회에 많은 기부를 하여 좋은 사업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Stanford 대학의
미술관에는 그가 기증한 작품들을 별도로 전시하는 공간이 그의 이름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Robert Mondavi 에 비하여 조용한 성격의 Peter Monvadi 는 그의 부모에게 물려 받은 Charles
Krug Winery 를 현재까지도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3 대에 걸쳐 자신의 와이너리를
소유하면서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와이너리의 이름은 원래 그대로 Charles Krug Winery 로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현재 Charles Krug Winery 를
대대적으로 재 개발하고 있다. 오래 된 포도 나무를 대체하고 와인 생산 시설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2000 만 달러 이상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포도주 시장에서도 Charles Krug 상표는 Robert Mondavi 상표에 비하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Charles Krug 와인은 나름대로의 안정되고 믿을만한 품질로 아는 사람들은 잘 안다. 와인에는
만든 사람의 성격과 인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파 밸리의 와인 산업 전통은 현대에 들어서도 계속 계승 발전되고 있다.
나파 밸리와 인근의 소노마 밸리, 그리고 이 주변 지역의 날씨가 포도 재배에 적합하고 우수한
품질의 포도주 생산으로 유명해지면서 포도밭의 면적과 와이너리의 숫자는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들 와이너리들은 단순한 포도 농업이 아니라 고급 와인을 만들고 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문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재래식의 소규모 포도밭과 와이너리들이 많이 남아 있고
이들이 만드는 소박한 와인들을 나파 밸리의 와인 판매점들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자본과 사업가 의식,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의 문화 의식이 결합된
와이너리들은 나파 밸리를 특유의 예술과 와인 문화 지역으로 만들고 있다.
얼만 전, 우리나라의 유명 장치인 한 사람이 나파 밸리의 한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우리나라의 농업도
이곳과 같이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이 정치인이 나파 밸리의 와인 산업과 문화에 대하여 얼마나
잘 이해하고 그런 말을 하였는 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와이너리를 재 개발하는 데에만 2000 만
달러를 넘게 사용하고 있으며, 작은 와이너리 하나에도 보통 500 만 달러가 넘게 투자되는 이곳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름이 되면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이곳 나파 밸리를 찾는다. 여름은 내가 나파 밸리를 방문하지
않는 계절이다. 나파 밸리 특유의 친절함과 여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소란스러운 와이너리에서는 각각의 와이너리가 가진 고유의 이야기와 풍경을 찾을 수 없다.
내성적인 Peter Mondavi 와 외형적인 Robert Mondavi 형제가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성공을
할 수 있는 곳이 나파 밸리이다. 두 형제는 형인 Robert 가 죽기 전에 화해를 하였다는 소식이 있다.
지금 Charles Krug Winery 에는 Peter 와 Robert 가 손을 잡고 화해를 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한 쪽에 놓여 있다. 전혀 다른 두 문화가 서로를 인정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한 병에 5 달러 짜리 와인과 200 달러가 넘는 와인이 함께 판매되고 있는 곳. 최고급 Opus One 은
한 병에 1000 달러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아직도 와인을 공짜로 시음해 볼 수 있는 와이너리들이
여럿 남아 있는 곳. 와이너리의 정원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온 음식으로 피크닉을 할 수 있는 곳.
그런가 하면 회원제로 사전에 예약을 하여야만 입장이 되고 와인을 시음해 볼 수 있는 와이너리들이
많은 곳. 대규모의 자본이 투자된 기업형 와이너리들과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의 와이너리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 이것이 나파 밸리로 대표되는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이다.
작고 아담한 가족 와이너리들과 오랜 역사의 웅장한 건물을 내세우는 와이너리들을 돌아 보며
새로운 문화 산업으로서의 와이너리와 이들이 모인 나파 밸리의 문화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