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by khwi12 posted Jan 01,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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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김 혜 원 
 
 

동네에 할인마트가 새로 개업을 하였기에,

부식거리를 사러 들러 보았다.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온몸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해 오면서 집에 가서 빨리 쉬어야겠다며  

거센 항의를 해오고 있다.

 

그래도, 마음 먹고 나왔는데 쉬라니 말도 안된다며

내몸의 호소를 그냥 무시해버렸는데.

하나하나 고르다 보니 어느 덧 쇼핑 바구니에

온갖 생필품들이 자리를 차지해 버려서

제법 무게가 나간다.

 

몸이 자꾸 바닥을 향하여 기어 들어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쇼핑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 놓아 보았다.

천근이던 몸이 가벼워지면서 한결 가뿐하다.

 

그런데, 그만 앞자리에 서있는

어느 아주머니의 발목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 아주머니가 나를 흘낏 하고 쳐다 보길래,

"너무 힘들어서 내려 놓아 보았어요.

몸이 땅으로 주저앉을 것 같네요."

눈꺼풀은 밑으로 내려앉아 있었고,

말투는 어눌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는 화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준다.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기도 전에, 나의 피로와 노고를

여인네들의 간단한 눈짓 하나로 모두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따스한 마음의 미소를 건네어 온다.

나는 그녀를 예전부터 알아 온 듯한

착각속에 빠져들어간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참으로 멋지고 다정한 민족들이다.

느낌만 통하면 만사가 서로 통할 수 있는.

그래서, 나는 처음 본 그 아주머니가 너무나

친근해진 느낌이 들었고,

일순간 참 좋은 사람이란 감정을 지워내기 힘들었다.

   

문득 또 하나의 생각이 난다.

 

며칠전의 일이다.

그날도 퇴근 후 시내에 볼일이 있어

전철을 탔는데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물에 젖은 행주처럼 늘어지는

피곤한 몸을 어쩔 수 없어

그냥 손잡이를 부여잡고 의지하고 있었다.

바로 앞에 앉으신 나이드신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바라본다.

 

몇 정거장을 가다보니 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앉으라고 권유를 해온다.

그래도 양심이 있지 어떻게 나보다 나이드신

분의 자리에 홀랑 앉을 수 있겠는가.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나는 괜찮다고 사양을 하였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가 자기는 다음에 내린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그 아주머니의 말뜻을 알아 듣고는

재빨리 날렵하게 그 자리에 앉았는데,

온몸에 피로감이 몰려 오면서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 아주머니가 나를 바라보더니 빙그레 웃으신다.

난 고맙다는 표현으로 사알짝 미소를 지어보이며

간단한 목례를 보내어 드렸다.

그 아주머니가 나를 한참을 바라보신다.

 

왜일까?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힘이 들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나는

낯모르는 사람이던, 가까운 사람이던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도움을 받을 적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주위를 빙빙 도시면서

나를 돕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누리는

마음의 편안함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