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효막심 했던 이야기

by purenat posted Jan 01,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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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1 때였다.
여름방학 때 부모님과 가족이 다 대천해수욕장을 갔었다.
이른 아침, 일찍이 잠을 깬 나는 형하고 둘이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바닷가에서 우연히 다른 친구들 셋을 만나 우리 다섯은
바닷가를 따라 미군부대 쪽으로 가고 있었다.
아침 공기는 신선했었고 우리들은 기분이 좋아있었다.
물은 썰물이라 조용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 때 한 녀석이
"어~ 저기 섬이 나왔네." 하며 바다를 가리켰다.
바라보니 정말 저어~만치 바위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썰물에 물이 빠지면서 물에 잠겨있던 바위섬이 나온 것이었다.
누군가가 "우리 저기 갔다올까?" 하고 제의를 했다
우리는 아침 먹기 전에 갔다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반대 없이 우리는 그 바위섬에 갔다오기로 동의했다.
서로의 수영실력을 알 지 못한 채 섬을 향해 수영을 시작했다.
물은 썰물이라 조용했고 우리는 쾌적하게 섬을 향해 수영해 갔다.
두어 시간 가니 지쳐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위섬은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해는 많이 떠올라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아무도 말없이 섬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얼마를 더 가니 지친 느낌은 사라지고 몸에 아무런 감각도 없이
그저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도 가도 바위섬은 그대로 있었다.
이젠 돌아가기도 멀고 그냥 그대로 섬으로 가고 있었다.
또 한참을 갔다.
이젠 해가 중천에 뜬 느낌이었다.
이제는 섬이 조금 가까워진 것으로 보였다.
한참을 또 갔다.
이젠 드디어 섬이 가깝게 보였다.
그래도 한참을 더 가서야 섬이 잡힐 듯 다가왔다.
그 때 오른 쪽 무릎에 큰 충격이 왔다.
물 속에 잠겨 있던 바위에 부딛친 것이었다.
무릎을 들어보니 면도칼에 찟긴 것처럼 피가 흐르고 있었다.
헐.....
계속 수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왼쪽 무릎이 부딛쳤다.
들어보니 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제는 물 속을 들여다보며 시커먼 바위덩어리가 다가오면 바위를 타고 넘어가며
섬으로 접근했다.
드디어 바위섬으로 기어오르는데 굴 껍질이 온통 뒤덮고 있어
발다닥이 갈라지고 피가 났다.
더구나 바위는 미끈미끈 거려서 더 올라가기 어려웠다.
가까스로 바위섬에 올라간 우리는 웅덩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말미잘도 있었고 불가사리도 있었다.
이때 갑자기 뒤에서 큰 파도가 섬에 부딛치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앗!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섬 주변에서는 물이 소용돌이치며 섬이 물에 잠기고 있었다.
위험을 직감한 우리는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소용돌이치는 섬에서 멀어져 가려고 온갖 힘을 다해 빠져나갔다.
곧 이어 뒤에서 큰 파도가 덮쳐왔다.
이젠 친구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뒤에서 덮쳐드는 큰 파도에 삼켜지지 않으려고 몸을 솟구치며 안간힘을 썼다.
파도에 덮쳐져 물을 먹으면 끝장이다.
뒤만 보며 계속 덮쳐오는 파도를 타고 몸을 솟구쳐 오르며 육지를 향해 수영을 했다.
파고에 올려졌다가 또 밑으로 한참 내려졌다가 하며
우리는 망망대해에 뜬 가랑잎 같은 미미한 존재였다.
누군가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씩 소리를 질러 서로가 살아있는 가를 확인하자고 했다.
가끔씩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나도 가끔 소리를 질렀다.
"어이---"
우리는 육지를 향해 길고 긴 시간을 수영했다.
뒤에서 파도는 여전히 덮쳐왔다.
이제는 아무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누가 포기하고 파도에 삼켜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윽고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뒤에서 덮쳐오는 파도는 시커먼 산처럼 흉물스럽게 다가왔다.
계속해서 다가오는 그 시커먼 파도가 증말 징그러웠다.
우리는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몸은 지쳐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육지에서 애타게 기다리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이대로 죽을 수는 절대로 없었다.
이젠 완전히 캄캄해지고 멀리 육지의 불빛이 보였다.
저기에 도착해야 한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일념 밖에 없었다.
한참을 수영을 해도 육지는 안타깝게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밤은 캄캄했다.
뒤에서 다가오는 시커먼 파도에 삼켜지지 않으려고 뒤만 보며 계속 수영을 했다.
한참을 수영하다 육지를 보면 육지는 여전히 가까워지지 않았다.
이제는 아예 육지를 보지 않고 계속 수영만 하기로 했다.
한참만에 앞을 보니 육지가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기쁜 마음이 일었다.
그러나 기쁜 마음도 잠깐, 몸이 지칠 대로 지친 것이 느껴졌다.
과연 육지에 당도할 수 있을까?
조금을 남겨두고 물 속에 가라앉지는 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들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쯤 얼마나 애간장을 태우고 계실까?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
오로지 살아야만 한다.
이런 힘이 솟구쳤다.
계속 수영을 했다.
육지의 불빛은 하나 둘 꺼져가고 있었다.
밤이 깊어 가는 것 같았다.
한참 후 육지는 많이 가까워졌다.
이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한참 후 육지가 잡힐 듯 가까워졌다.
형은 살아있을까?
친구들은 살아있을까?
만약에 죽었다면...........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무릎이 모래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이젠 육지를 밟았다!!!!
땅은 물처럼 흔들거렸다.
어지러웠다.
그 때
앗, 오른 쪽에서 누구인가 하나가 육지로 나왔다.
이어서 또 하나...또 하나
또 하나....
다섯 전원이 다 살아 돌아온 것이었다.
이 때의 기쁜 마음은 지금도 생생하다.


형과 나는 숙소를 향해 걸었다.
호텔이고 여관이고 방을 잡지 못한 우리는 민박을 구해 있었다.
이 민박집은 바닷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가는 길에 맹꽁이, 개구리 우는소리가 요란했다.
동네는 불이 다 꺼져있었고 밤이 깊은 것 같았다.
거의 다 가자 우리 민박집에 아직도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 아버님이 아직도 잠 못 주무시고 별 생각을 다 하시며 애를 태우고 계실 것이다.
우리는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 때 어머님, 아버님은 멍하니 쳐다보시며 아무 말씀도 못하셨다.
물에 빠져죽은 아이들 귀신이 온 줄 아시는 것 같았다.
...................................


한참 후 정신을 차린 어머님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셨다.
"가까운 줄 알고 앞에 섬에 갔다가 이렇게 늦었습니다."고 했다.
"어서 자라."
물 한 컵을 달게 먹고 우리는 이불에 쓰러졌다.
우리는 하루 종일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했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님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어떻게 생각 없이 분별 없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아버님은 아무 말씀 없이 우리들이 살아온 것에 대해 신기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아침에 바다로 나간 아이들이 밤늦도록 안 돌아오면
틀림없이 익사한 거라고 얼마나 애간장을 태우셨을까?
이 생각하면 지금도 죄송스럽기 짝이 없다.


돌아가신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