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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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이리- 지금도 울프 독 만들기의 최고 인기 이리이다.
반세기도 훨씬 전에 알래스카에서 한 때 울프 독과 이리에 대해서
최고의 전문지식을 가졌던 사람으로 소문났었던 사람이 있었다.
프랭크 그래이저[1889-1974]라는 사람인데 그는 미 서해안 워싱턴주 태생으로
27살인 1915년에 알래스카에 들어가서 1955년 은퇴 할 때까지 알래스카의 야생에서 살았다.
그는 1920년대 후반부터 맥켄리 국립공원 인접 근처 새비지 강가에 오두막을 짓고
십여 년 간 살며 사냥과 덫의 야생의 생활을 했는데
그는 그 곳에 많은 이리들의 생태도 지켜봤고 사냥도 했으며
야생 이리도 길러 보고 울프 독도 만들어 부려 보면서 이리의 전문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래에 그가 십 년 넘게 길렀던 최고의 울프 독 이야기를 옮겨본다.


 


나는 1927년 덫으로 잡은 어린 이리를 길들여서 일 년 반정도 기르다가
내가 가진 마라뮤트 암캐인 넬리와 교배시켜 그 해 삼월 울프 독 5 마리를 얻었다.
여기서 부언 한다면 울프 독은 수컷 이리와 암컷 개를 교미시켜야
성공할 확률이 크지 수컷 개와 암컷 이리를 교미시키면 거의 실패했다.
암 이리가 수캐에게 몸을 주기를 단호히 거부하기 일쑤고
어떻게 임신이 되더라도 해산 할 때부터 안전부절을 하다가
새끼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때로는 죽이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한 이리 암컷이 개와 교미해서 성공적으로 새끼를 낳은 것은 단 한 건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이리가 개를 앞서는 그런 좋은 재주를 부린다면 
이리를 썰매개로 길들여서 쓰지 왜 개와 결합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느냐고 할지 모른다.
나는 진짜 이리를 길들여 썰매개로 사용해보는 시도를 해보았다.
그러나 잘 길든 이리조차도 썰매를 끌지를 않았었다.
다른 개나 울프 독과 팀을 이루어서 썰매를 억지로 끌게 하면
주둥이와 꼬리를 땅에 내려뜨리고 마지못해 끌려가다시피 갔다.
단지 먼 앞에 순록이 보일 때는 사냥 본능을 나타내며 스피드를 냈다.
나는 여러 번 길이 잘든 이리로 썰매 끌기를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이리의 생리에는 썰매 개에게 몇 만년동안 내려오면서 형성된
썰매 끌기라는 사역 본능의 유전인자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회색 이리와 마라무트 개에서 태어난 이 다섯 마리의 강아지로
한 팀의 썰매 개를 만들기로 하였다.
다섯 마리 중에 수컷이 네 마리, 그리고 암 컷이 한 마리였다.
수컷들은 농도에 차이가 있지만 거의 회색계통의 색깔이었다.
그러나 암컷 한 마리만은 전신이 검고 단지 가슴과 목 부분만 백색이었다.
나는 수컷들의 이름을 탄생순서에 따라서 버스터, 울프, 코북,
그리고 데나리라고 이름 지었다.
암컷은 퀴니[Queenie]라고 명명했다.
나는 암컷의 울프 독을 원하지 않아서 퀴니를 처분해버릴 것을 한참 생각했었다.
암컷은 나중에 썰매를 끌게 되면 교미 철이 되면 팀의 분위기를 깨버릴 가능성이 있어서
가능하면 암컷을 배제하는 것이 나의 방침이었다.
그러나 차마 어린것을 그렇게 할 수 없어 생각을 바꾸어서
기르기로 하였다.[이 퀴니가 명견이 되었다.]
강아지들은 토실토실하고 팔팔해서 귀여웠다.
비록 이리의 핏줄이 절반이나 섞였지만 어린 울프 독 강아지들의
외모는 아직 순종 마라뮤트 종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커 가면서 확연히 달라 질 것이었다.


나는 다음 해에 이리를 다시 넬리에게 교배시켜서
그해 5월에 강아지 한 마리를 얻었다.
또 다음해인 1929년, 암컷 퀴니가 두 살이 되었을 때 퀴니를
이웃에 사는 덫 사냥꾼 빌 그린의 수컷 울프 독에 교미시켜서
무려 열세 마리의 강아지를 얻었다.
이중 열 마리가 암컷이었고 수컷이 세 마리였다.
나는 암컷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분양하고 수컷 세 마리만 길렀다.
세 마리의 이름은 케나이, 유콘, 그리고 또 다른 울프였다.


나는 1926년부터 정부기관에 고용되어 새비지 강을 떠났던 1937년까지
손에 넣을 수 있는 최고품성을 가진 울프 독 일곱 마리에서
열 한 마리를 항상 확보하여 인근에 소문이 났던 최고의 썰매개 팀을 운영했었다.
내가 가졌던 울프 독들은 절반 혈통의 이리에서부터 사분지 삼의
이리혈통까지 여러 가지였다.
명견이라 소문났었던 두어 마리는 단지 사분지 일만이 울프 독이었다.
이리의 혈통 정도는 각각 달랐지만 모두 최고의 썰매 울프 독들이었다.


울프 독들은 여름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목을 묶이거나 견사에 가두어져 매일 매일 쉴 뿐이었다.
나는 어린 울프 독들을 이 한가한 여름부터 가을까지의 기간에 훈련을 시키기로 하였다.
훈련 대상의 울프 독들은 대개 삼월 하순에서 오월 초순에 태어난
단지 4개월에서 5개월의 나이에 아직 강아지였었다. 
나는 처음 울프 독 강아지들을 썰매개로 훈련시키면서 이내
이들 강아지들이 이리의 영리함과 개의 순종성을 같이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품성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울프 독들은 훈련과 지시에 마라뮤트나
허스키 개들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마라무트 같은 썰매 개들 보다 울프 독 훈련시키기가 더 쉬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최고의 울프 독들을 소유했던 행운을 가졌던 것  같다.
나는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기르는 사납고 길이 잘 들지 않은 울프 독들을 많이 보아왔다.


 내 개라면 그런 개들은 5분 이상 옆에 두고 보고 싶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나는 울프 독들이 그렇게 망쳐진 이유를 알 수 있다
주인이 함부로 다루어서 길러낸 울프 독들은 그렇게 거칠고 반항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오다가다 알게 된 얼래스카 내륙에서 온 덫 사냥꾼은
자신이 알래스카의 황야에서 썰매를 끌던 울프 독 세 마리가 갑자기
그에게 떼로 덤벼드는 봉변을 당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위기를 느낀 그는 썰매에서 뽑아낸 몽둥이로 이들을 때려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문제를 야기한 책임이 그에게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평소에도 썰매 개들을 매우 함부로 다루었었다.
위의 사례가 암시하듯 내가 최고 품성의 울프 독들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나의 울프 독들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었던 듯하다.
나는 내 울프 독들에게 엄격하게 다루기는 했지만 가혹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나의 울프 독들은 내가 나무라거나 회초리로 가볍게 휘두르면
자기들이 먼저 알아서 말을 듣고 복종했다.
굳이 주인을 화나게 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울프 독들을 가지기 전부터 마라뮤트나 허스키 같은
썰매 개를 10여 년 동안이나 부려 보아 봤고 주변의 많은 썰매 개들을 보아 왔다.
마라뮤트나 허스키등의 썰매 개를 소유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와 인내심과 신경을 써야했다.
그러나 울프 독 팀을 관리하는 것은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고 더 신경을 써야만 한다.
내가 다른 곳에 업무가 있어서 긴 기간 집을 비울 때는 그렇게
다루기 힘들고 까다로운 울프 독을 누구에게 맡길 수가 없어서
큰 골치 아픈 문제가 되곤 했었다.
내 주위에는 이 영리하고 까다롭고 사나운 울프 독을 장기간
제대로 관리해 줄 솜씨 좋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울프 독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고 절대 다른 마라뮤트나
허스키 같은 보통 썰매 개처럼 다루어야 해서는 안 되었다.
내가 가끔 업무로 패어뱅크스 시로 갈 때에는 썰매를 타고 가서 
최고의 노련한 솜씨를 가진 썰매 개 전문가에게만 맡기곤 했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 내가 수시로 견사에 들려서 울프 독들을 첵크 해야만 했다.
나는 사실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을 이 울프 독들과 같이 보내며
이 울프 독들을 돌봤다.
나는 쉰 두 살 나이에 새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 할 때까지
어느 식구나 친구 같은 인간들보다 울프 독들과 보낸 시간이 더 길고,
더 신경을 쓰는 밀착된 생활을 했었다.
이렇게 정성을 쏟는 울프 독들도 야생의 이리들이 자신들의
두목에게 절대 복종하듯이 나를 자기들의 보호자며 큰 지도자로 알고
나를 따르고 나에게 복종했다.


나는 울프 독들에게 강에서 잡아서 말린 연어나
사냥해서 잡은 순록이나 뿔사슴[moose]들의 고기를 먹였다.
썰매개들에게 가장 흔하게 먹였던 grayling.
알래스카의 맑은 강에서 많이 잡히는 담수어종이다.
울프 독이 먹는 것을 보면 이리를 꼭 닮았다.
순록이나 뿔 사슴의 굵은 뼈를 앞 다리로 잡고 한쪽부터 이빨로 부수어 먹는다.
어떤 큰 뼈도 이들 이빨의 괴력에 거침없이 부수어 나간다.
그리고 울프 독들은 뼛속의 골수를 먹는다.
울프 독의 턱과 이빨에서 발휘되는 파괴의 괴력은
보통의 썰매 개들은 흉내도 낼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육류나 어류만 먹이지 않고 때로는
밀가루와 곰 기름으로 만든 핫 케이크를 별식으로 만들어서 먹이기도 하였다.
곰 기름은 내가 매년 가을마다 살찐 곰을 잡았을 때마다
곰의 지방을 끓여서 만들어 놓은 식용유지였다
핫 케익을 구우면 나는 개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울프 독들은 마치 선생 앞의 학생들처럼 일 열로 서서 자기 순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마리 당 대 여섯 개의 핫 케익을 배급받고 집에 들어가서 먹었다.


울프 독을 만들고 기르고 부리던 11년간의 세월동안
나에게 유일하게 때때로 반항하고 대들던 울프 독은
명견 퀴니의 아들인 케나이 뿐이었다.
케나이는 개의 혈통보다도 이리의 피가 사분지 삼쯤 섞인 거친 놈이었다.
케나이는 생김생김도, 크기도, 그리고 행태에서 그런 거친 이리의 꼭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의 어미 퀴니[Queenie], 검정 암컷인 울프 독은 내가 최초로 가진 울프 독이었으며
그리고 내가 길렀던 울프개중 가장 영리한 울프 독이었다.
그리고 어떤 개보다도 나를 따랐던 개이기도 했다.


 


명견 퀴니


 


퀴니는 낯선 자를 다른 어느 개보다도 싫어하고 경계했었다.
퀴니가 나를 너무 잘 따라서 추운 겨울밤에 심심할 때면 이 녀석을
내 통나무 오두막으로 불러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오두막의 더운 기운이 전신이 털 뭉치인 퀴니에게 더 버틸 수가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얌전하게 나와 잘 놀아 주었다.
나는 퀴니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 싹수를 알아보고 썰매개 팀의 리더를 시켰다.
리더 썰매 개의 기능은 한국의 멧돼지 사냥개 리더인 썰개의 기능보다도 더 훨씬 중요하다.
주인과 호흡을 맞추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여러 마리의 개를 이끌고 힘든 지형을 찾아서 가야 했기 때문에 그 능력은 그야말로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이리 떼 두목의 그것을 합쳐 놓은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
내가 울프 독들을 훈련시킬 때 처음 가르친 것은
울프 독들에 자기 이름을 기억시키고 부르면 달려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땅위에 놓인 썰매를 보여주고 거기에 달린 썰매 개를
묶는 줄[하네스- harness]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자기 이름을 알게 하고 하네스를  보여주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일이다.
개 썰매 - 북방의 자작나무로 만들었다.
실제로는 사람들은 썰매를 잘 타지 않고 개와 썰매 중간에서 걸으며 개들을 컨트롤했다.
다음 단계는 명령에 의해서 줄을 지어 자기 순서 자리에 개들에게 엎드리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네스를 매게 하는 것인데 개들이 움직이면 안 된다.
이 단계에서 주의 할 것은 개를 함부로 끌어다가 줄에 묶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할 경우 개는 반발하여 돌출행동을 한다.
어디까지나 개가 부르는 소리에 따라 스스로 자기 위치에 와서
엎드려 자발적으로 채비를 채워주기를 기다리게 만들어야한다.
그들이 이 단계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훈련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퀴니를 리더의 자리에 엎드리게 하고 하네스를 매게 한 뒤에
그 뒤에 두 줄로 각 개들을 한 줄로 묶게 하는 단계로 들어간다.
퀴니는 처음부터 얼른 눈치를 채고 시키는 대로 따라서 했다.
그 뒤를 따라서 다른 개들도 줄을 지어서 앉아서 얌전하게
하네스를 다 받게 하는 연습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하네스로 묶었다가 다시 풀어주었다가 또 불러서
묶어주었다가 하는 훈련을 오랫동안 되풀이했다.
나는 겨울철이면 울프 독들이 메인 줄에 다 묶여서 열을 지어 엎드려서
출발을 대기하는 동안 오두막에 들어가서 장갑과 모자와 파카를 찾아 입고
추운 날씨에 썰매여행 차비를  하곤 했다.
그러나 울프 독들을 훈련하는 기간에는 오두막에 들어가서 문틈으로
이놈들이 무엇을 하는 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길이 어느 정도 들면 울프 독들은 이 단계에서 부산을 떨지 않고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내가 들어간 오두막 쪽을 쳐다보곤 했었다.
때때로 내가 들어간 오두막을 지켜보다가 슬며시 일어나려고 하는 놈들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다시 나와서 엎드려 지시를 하고 서려고 하는 놈들을 강제로 앉혔다.
이런 반복연습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이들 울프 독들을
겨울이 올 때쯤 되면 완벽한 썰매개 팀으로 만들었다.
내가 방한장구를 다 찾아 입고 나와서 썰매 위에서 "All Right!"하면
그들은 총알처럼 튀어 나가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울프 독들을 훈련시킬 때 ‘gee!' 또는 'whoa'라는 말로
왼쪽, 오른쪽, 정지, 출발 등의 명령어를 알아듣는 것부터 훈련시켰었다.
그러나 천재적인 선도견 퀴니에게는 그런 것은 필요 없었다.
퀴니는 선두에서 달릴 때도 방향전환이 의심스러운 곳에서는
항상 수시로 나를 돌아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소리를 지르기 전에 그저 손이나 턱 끝으로 가리키기만 해도
퀴니는 알아서 제 곳에서 정확히 방향전환을 하거나 정지를 했었다.


내가 꼽을 수 있는 울프 독의 장점은 그 엄청난 내구성이다.
울프 독들은 순수 마라뮤트나 허스키들보다는 훨씬 더 강인했다.
험한 장거리를 달리기에 썰매 개들의 발은 아주 중요하다.
개들의 체력이 다하기 전에 발이 다 헤어져서 개들을 몰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칼 같은 돌기물이 얼키설키 나있는 호수나 강, 또는
들길의 얼음 위나 눈밭 위, 그리고 호수나 강 위를
하루 종일 달리면 허스키나 마라뮤트들의 발들은 금방 탈이 날 텐데도
이런 면도날이 무수히 깔린 것 같은 지형을 여러 날 달려도
울프 독들의 발바닥은 끄덕 없었다
울프 독들은 다른 허스키나 마라뮤트들이 나가떨어질 길을 여러 날 달리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들의 발은 멀쩡했다.
우리들이 언제 그런 최악의 길을 왔냐하고 시치미를 떼는 표정이었다.


나의 울프 독 팀은 대단한 능력을 가졌고 장점도 많았다.
매 3월이나 4월이면 온도가 높아지고 낮에 표면의 녹은 눈이 밤에
얼어서 굳어져 썰매를 몰기가 수월해지면 나는 가끔
먼 거리에 있는 친구 덫 사냥꾼의 집을 찾아서 돌아다니곤 했다.
이때의 즐거운 추억은 내 인생에서도 길게 남아있다.
내 생각에 세상에 눈 덮힌 알라스카의 산야처럼 아름다운 설경은 없다.
공기는 맑디맑고 초봄에는 한 겨울에 비하면 날씨도 별로 춥지가 않았다.
나는 썰매에 총과 도끼, 슬리핑 백, 그리고 천막, 여분의 로프와
하네스, 그리고 나와 개들이 먹는 식량만 적재한 경량의 채비로 먼 거리를 달려갔다.
내 덫사냥 꾼 친구 중에는 60마일이나 70마일이나 되는
멀디 먼 곳에 사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강인한  울프 독 썰매개 팀은 그 먼 거리를 단 하루에 주파 할 수 있었다.
울프 독들은 그렇게 먼 거리를 달리고도 그 친구 집에 숙박하지 않고
바로 다시 썰매를 돌려서 온 길을 밤새 되 달려
집에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만큼 피로한 기색도 없이 원기왕성했다.
그만큼 나의 울프 독들은 강했다.
다른 허스키나 마라뮤트같은 보통 썰매 개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울프 독들이 커 가고 경험도 싸여가면서 한층 원숙한 썰매 개가 되어갔다.
리더가 된 퀴니는 리더로서 강력한 장악력을 발휘하였다.
내가 썰매를 멈추어 놓고 개들을 엎드려서 대기하게 지시했는데도
일어서서 한 눈을 팔려고 하는 개가 있으면 퀴니는 이빨을 들어내고
으르렁거리며 위협해서 그 한 눈 파는 개를 다시 엎드리게 했다.
내가 기른 울프 독들은 사납기는 했지만 함부로 사람들에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특히 나만 따를 만큼 예민했던 퀴니는 그래도 누가 자기 몸에 손만 대지만 않으면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누구에게도 적대하지는 않았었다.
누가 자기에게 접근하면 조용히 몇 걸음 피해서 지켜 볼 따름이지
낯선 사람에 대해서 화를 내거나 물으려고 들지를 않았다.


1934년, 나는 시애틀에 사시는 아버지를 방문하였다.
나는 얼래스카의 오지를 떠나면서도 퀴니와 그 남매 버스터를
오랫동안 놔두고 가기가 맘이 편치 않아 그들을 데리고
워싱턴 주의 아버지 집까지 데리고 갔었다.
나는 항해 끝에 도착한 아버지 집에 마당에 임시 견사를 만들고
그 안에 퀴니와 버스터를 묶어 놓았다.
어느 저녁 나는 두 녀석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서 견사에 가서
두 마리의 밥그릇들을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 견사의 문을 열어 놓았던 것 같다.
그들의 식사를 그릇에 담고 견사로 다시 간 나는
이웃집의 네 살쯤 되는 작은 여자애가 견사에 들어와서
퀴니의 귀를 잡아끌고 견사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했다.
남에게 좀체로 곁을 안 내주는 퀴니가 그런 모욕을 용서 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정신없이 견사로 달려들어 꼬마 애를 안아 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퀴니가 견사 문 앞에 서있는 그 아기에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꼬마 애의 얼굴을 핥아 주었다.
알래스카의 야생에서 살아와서 어린 여자 애를 본 일조차도 없는 퀴니는
이 여자 꼬마 애를 좋아하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 집에 있는 동안 여자 애는 자주 놀러 와서
내가 개들을 돌보는 동안 견사에 들어와 퀴니와 정답게 어울렸다.
퀴니는 때로 여자 꼬마를 등에 태우고 싫은 빛 없이
견사 안을 걸어 다니기도 하였다.
나를 빼놓고는 남이 자기 머리나 등을 만지는 것조차 싫어하는
퀴니로서는 이변적인 내면을 보였던 것이다.


울프 독들은 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라 이리의 냄새가 났다.
그 것은 개 냄새와 확연히 다른 야성의 냄새이기도 했다.
내가 나의 오두막에서 제일 가까운 히어리 읍으로
울프 독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들어가면 동네의 개들은 모두
꼬리를 다리 사이에 끼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울프 독에서 나는 이리 냄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종국에는 동네 어구 먼 곳에서 나의 울프 독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기만 해도
동네의 알아주는 사나운 개들도 뺑소니를 쳐버렸다.


울프 독들은 가끔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기도 했다.
이놈들이 싸움을 할 때는 상대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무시무시할 만큼 난폭하게 싸운다.
울프 독들의 이빨은 허스키나 마라뮤트 썰매 개들보다 훨씬 컸다.
울프 독은 더구나 억세어서 그 억센 이빨에 물리면 어떤 개는 물론
강하다하는 울프 독도 목숨을 잃기 십상이었다.
나는 강아지 때부터 서로 싸우지 않도록 지도했으나 이들은 듣지를 않았다.
이런 시절에는 회초리를 들어서 때려주면 그런대로 멈추었는데
커가면서 어지간한 회초리질로는 이야기가 되지가 않았다.
울프 독들은 덩치가 일반 썰매 개들보다 훨씬 컸다.
대개 125파운드 수준이지만 그 중의 체격이 큰 케나이는
155파운드나 되어서 격투가 붙으면 요란해서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말릴 방법이 없었다.
나는 작은 가죽주머니에 일 파운드의 납알을 넣어서 이것으로
피 터지게 싸우는 놈들의 콧잔등을 한방씩 후려쳤다.
얻어맞은 놈이 나에게 으르렁거리거나 더 싸움을 계속하려고
하는 놈이 있으면 한방 더 치면 그제야 깨깽대며 싸움에서 물러났다.
개들은 달리다가 하네스가 얽히면 그것이 옆 개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옆 개를 공격해서 싸움이 벌어진다.
단지 영리한 퀴니만이 다른 개들과 싸우려고 하지를 않았다.
내가 개들이 싸우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퀴니는 다른 개가 싸움을 걸면 피해버렸다.


내가 가진 썰매 울프 독에서 제일 가는 싸움꾼은 퀴니의 아들 케나이였다.
덩치도 제일 컸고 성질도 제일 고약해서 툭하면 동료들을 공격했었다.  .
케나이는 사납기도 했지만 영리하기도 했다.
내가 개들을 몰고 썰매를 타고 나갈 때 허리춤에 그들을 응징하는
납압을 넣은 가죽 주머니를 차고 나가면 케나이는 눈치를 채고 주의를 한다.
동료 개들과 잘 싸움질을 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한두 번 맞아보아 그 매운 맛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깜박 잊고 그 납알 주머니를 집에 남겨놓고 갈 때는
케나이는 어김없이 동료를 공격해서 싸움판을 벌렸다.
끊임없이 싸움을 찾는 케나이는 자기를 잘못 알아보고 덤벼든
마라뮤트 두 마리를 한방에 저 세상으로 보내 주변 사람들을 경악시키기도 하였다.
1931년 나는 그때 부업으로 하던 사냥 가이드 일로
남쪽 본토에서 온 손님을 맞으러 페어뱅크스에 갔을 때였다.
나는 나의 울프 독들을 개들을 아주 잘 아는 페어뱅크스 교외의
에드 데이에게 잠시 맡겨놓았었다.
내가 하루 종일 여기저기 다니며 사냥준비를 하고 돌아왔을 때였다.
안색이 변한 에드가 나에게 와서 케나이가 줄을 끊고 도주했다고 했다.
가죽 목 끈이 많이 낡아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사나운 케나이가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아가는
페어뱅크스 시내로 내뺐다고 하니 나는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케나이를 찾으러 나섰다.
페어뱅크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어느 길모퉁이에서 나는 케나이를 발견했다.
케나이는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더니 좋아라고 달려왔다.
나는 케나이를 데리고 다시 에드의 견사 쪽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던 도중이었다.
길옆의 한 통나무 집 마당에 매어놓은 두 마리의
마라뮤트 개가 케나이를 보고 미친듯이 짖어댔다.
케나이는 이들이 걸어오는 싸움에 좀이 쑤시는 듯 했지만
나의 눈치를 보며 짐짓 모르는 채 걷기만 계속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두 마리의 개들을 묶은 줄이 몸부림 바람에 끊어져 나갔다.
자유가 된 두 마라뮤트는 마당을 가로질러서 얕은 나무 담을
뛰어 넘어 쏜살같이 케나이에게 달려 나왔다.
내가 요란한 소리에 뒤를 돌아 볼 때는 두 개가 날으듯이 케나이를 덮친 뒤였다.
나는 급한 김에 싸움을 말릴 몽둥이를 찾으면서도 이들 개들 싸움을 곁눈으로 지켜봤다.
케나이는 상대의 다리를 공격하는 절묘한 야수의 기술을 알고 있었다.
케나이는 일단 머리를 땅에 낮추고 머리를 옆으로 돌려서 공격하는
개들에게 은근히 자기의 목 측면을 내보여 주었다.
그 목 부분은 이리와 같이 긴 털이 빽빽하게 밀생해서
어지간한 개 이빨 따위는 통과하기조차 힘든 곳이었다.
그 것을 모르는 마라뮤트는 케나이가 내준 목의 급소를 왕창 물었다.
동시에 틈을 보고 있던 케나이는 마라뮤트의 앞 다리를 힘껏 물었다.
뼈가 으스러지자 케나이를 물었던 개는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고 뒤로 나가 떨어졌다.
기회를 만든 케나이는 야수의 공격을 가했다.
그대로 치고 나가 마라뮤트의 배를 무지막지한 힘으로 물어뜯었다.
그리고 배가 찢어지자 창자를 꺼내서 땅에 팽개쳤다.
끔찍한 광경을 본 동료 개는 갑자기 다른 동네에 볼일이 있다는 듯이
현장을 떠나서 슬금슬금 도망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도전자를 확실하게 끝장 낸 케나이는 이 의리 없는 도망자를 추격했다.
그 개는 불과 200미터도 가지 않아 케나이에게 붙잡혀
동료와 같이 배를 찢기고 일생을 마감해야 했다.
두 개가 비록 155파운드의 케나이 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100파운드가 넘는 거구 마라뮤트들이었다.
 
계속되는 싸움질에 나를 항상 속 썩히던 케나이는 도저히
이해 못 할 엉뚱한 짓을 해서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케나이가 두 살 때인 겨울, 나는 썰매를 몰고 힐리 읍내로 장을 보러갔다.
동네에 울프 독 썰매가 들어서자 개들은 꼬리를 물고 도망을 쳤다.
케나이는 도망치는 개들을 보고 침을 삼키며 몸을 풀 기회를 찾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나의 썰매가 베이커씨 집 앞을 지나갈 때였다.
베이커 부인이 우연히 집에서 기르는 작은 보스톤 테리어 한 마리를 거리로 내보냈다.
이 어린 개는 겁 모르고 나의 울프 독 썰매 쪽으로 춤을 추듯이 달려 나왔다.
더해서 앙증맞게 짖기 시작했다.
“왕 왕 왕!”
그 때 썰매의 선두는 케나이와 그의 엄마 퀴니가 서서 달리고 있었다.
나는 겁이 덜컥 났다.
나는 얼른 개들을 정지 시켰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그 테리어는 케나이에게 달려들어 나의 지시로
급히 땅에 엎드린 케나이의 발을 물어버렸다.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이 무시무시한 녀석에게 도전했으니 결과는 뻔했다.
산산조각이 날 테리어의 참혹한 모습을 보기가 끔찍했다.
그러나 나의 귀를 때린 것은 케나이의 비명이었다.
아주 구슬픈 듯이 깨갱대는 것이었다.
아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케나이 뒤에서 따라가던 울프 독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뒤돌아보았다.
뒤를 따르던 울프 독들은 케나이의 무작스러운 이빨 맛을 한번 씩
다 본 놈들이었기 때문에 케나이의 엄살에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나도 어이가 없었지만 얼른 테리어 개를 집어들어
놀라 달려나온 베이커 부인에게 건너 주고 그 곳을 떠났다.
다음부터 나의 울프 독 썰매가 그 집 앞을 지날 때나 근처 호텔에 정지해있으면
그 작은 테리아가 꼭 나타나서 케나이에게 짖으며 덤벼들고
케나이는 죽는 듯이 비명을 지르는 장난 비슷한 일이 자주 있었다.
케나이 역시 근처에 이르면 두리번거리며 이 작은 철부지를 찾았다.
케나이는 세상 물정 모르는 것이 덤비는 것을 장난으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케나이는 천하장사였다.
봄에서 가을까지 썰매대신 사냥물들을 실어 나르는 짐 개로 사용할 때,
다른 개들이 무거워봤자 대개 30파운드 정도의 무게만 등에 지는데
케나이는 무려 50파운드의 짐을 지고도 거뜬히 운반했다.
그러나 케나이는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켰다.
걸핏하면 동료들을 공격해서 썰매개의 진행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약과였다.
겨울철 썰매에 중요한 물건을 싣고 가다가
시내 건너에 순록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썰매를 끌고 물 속으로 돌입해서 물건을 다 망치고
동료 개들을 거의 익사시키는 사고를 다반사로 저질렀다
나는 겨울이 지나면 케나이를 처분하려고 그를 데리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가
차마 감행하지 못하고 돌아오기를 서너 번이나 했다.
결국 케나이가 다섯 살이 지났을 때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케나이를 멕켄지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주고 말았다.
그 곳에서 울프 독을 만들 씨받이로 케나이를 쓰겠다는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나이는 그 곳에서 자신에게 멋모르고 몽둥이질을 하던
직원을 공격했다가 비명에 가고 말았다.
그렇게 말썽을 부렸지만 나에게 한 번도 당하지 않던
몽둥이질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케나이는 이해심이 없었던 인간의 밑에서는 참고 살 수가 없는
야성을 도저히 버리지 못해서 비운의 최후를 맞았던 것이다.


나는 여름에 앞 시내에서 여러 종류의 민물생선을 잡아서
겨울철 개들 식량용으로 말렸다.
그러나 생선 건조대에 곰이 자주 와서 다 털어먹는 것을 여러 번 되풀이하였다.
나는 참다못해 이 곰을 잡기로 했다.
잠복 며칠만인 아침에 나타난 곰을 사격했지만 빗맞았다.
곰은 깊은 덤불로 도주하고 말았다.
나는 오두막으로 돌아와서 퀴니를 풀어서 곰을 쏜  현장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퀴니를 부상당한 곰이 들어간 덤불 속으로 투입했다.
곰 발자국 냄새를 쫓아 용감하게 덤불 속으로 들어간 퀴니는 곧 곰을 발견하고 짖어댔다.
곰도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상당한 곰이 퀴니에게서 이탈하려고 덤불 속에서 원을 그리는 것이 느껴졌다.
곰은 귀찮게 쫓는 퀴니에게 위협적인 노성을 자주 질러댔지만 퀴니는 집요하였다.
곰이 만만치 않자 퀴니는 개처럼 짖던 소리를 이리처럼 길게 우는 소리로 바꾸었다.
삼십분 정도 쫓기던 곰은 퀴니가 계속 이리처럼 울며 위협하는 소리에 질려서
드디어 덤불 밖으로 몸을 들어냈다.
나는 한 발에 급소를 명중시켜 곰을 절명시켰다.
퀴니는 뒤쫓아 나와 곰의 뒷발을 물고 흔들었다.
그리고 잡아 다니고 털을 물어 뜯어내고 꼬리를 흔들어대며
마치 자기가 곰을 잡은 것같이 과시했다.
퀴니에게 썰매개의 역할만 기대했던 나는
퀴니가 조상인 이리의 피를 받아서 사냥의 기술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그 뒤에 가끔 곰 같은 맹수를 사냥할 때
울프 독들을 사냥개로 동원했었고 그들은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퀴니의 사냥본능은 다른 개나 울프 독들과도 출중하게 다른 것이었다.
퀴니는 특히 눈 토끼를 사냥하기를 좋아했다.
다른 울프 독들은 그저 죽어라고 빠른 눈 토끼를 쫓다가
지치면 포기하곤 했지만 퀴니는 토끼의 달리는 방향을 눈여겨보다가
미리 숲을 가로질러가 목을 지켰다가 잡는 신기한 기술을 발휘했었다.


퀴니가 리더로서 썰매를 끌 때면
나는 어떤 눈보라나 야간의 극한 상황에서도 길을 잃을 염려를 하지 않았었다.
[썰매 여행자들이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는 조난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퀴니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고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위치 감각이 뛰어났다.
나의 새비지 강 오두막에서 가장 가까운 힐리 읍까지는 18마일이나 되었다.
내가 나에게 배달된 편지도 받고 필요한 물건도 쇼핑해 올 때면
힐리로 가는 1,200미터가 넘는 산맥의 고개를 넘어야 했다.
숲은 단지 600미터 선에서 끝나기 때문에 이 넒은 고개는 사방이 허허 벌판이었다
나의 울프 독들은 이 고개를 넘는 힐리에의 여행을
단 서너 시간만에 해치우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였다.
때로 나의 썰매가 이 고개를 넘을 때는 기상이 갑자기 나빠져서
80-100 킬로의 속도로 눈 폭풍이 몰아칠 때가 있었다.
눈보라가 시야를 가려 썰매 개들의 선두에 선 퀴니의 모습조차
보이지가 않을 정도 있었다.
사방은 사납게 몰아치는 굉음뿐이었다.
바람에 썰매가 심하게 흔들렸고 때로는 바람에 썰매가 뒤집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과 시계 제로의 상황에서도 퀴니는 절대로 길을 잃는 법이 없었다.
이럴 때 개들이 갑자기 설 때도 있었다.
이것은 심한 눈 폭풍에 울프 독들 눈썹에 달라붙은 눈이 얼어붙어서
눈을 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개들은 눈보라 속에서 정지하고 엎드려서
앞발로 눈을 문질러 얼어붙은 얼음을 떼어내려고 하였다.
나는 장갑을 벗고 선두자리의 퀴니부터 다가가
눈썹에서 얼어붙은 얼음을 떼어내고 나머지 뒤의 개들도
얼음을 제거해주고 눈을 뜨게 만들어 주곤 했다.
그리고 또 계속 달렸다.
그리고 한치의 틀림없는 제 길을 달려서 목적지로 우리를 이끌었다.
이 고개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눈 폭풍에 자주 혼났기 때문에
나는 어느 가을철에 수 십 개의 막대기를 준비하여 그곳에 가서
일정한 간격으로 그 막대기들을 박아놓았다.
시계 제로의 상황에서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이다.
지형이 아주 안 좋은 악조건에서도 퀴니는
달리는 최선의 루트를 찾아내는 절묘한 재주가 있었다.
풀이나 덤불들이 눈앞을 가리면 상체를 들고 뒷발로만
몇 걸음 걸으면서 전방을 관찰했다.
퀴니는 방향을 잡을 때까지 몇 번이고 이런 뒷발서기로 전방을 살폈다.
퀴니는 썰매 개를 리드할 때 이리와 같이 한 지점과 다른 지점을
잇는 것은 직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구부러진 강 위 얼음 위를 달릴 때 다른 썰매 개들은 말로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그대로 강 위를 따라만 달려서 먼길을 우회해서 가곤 했다.
그러나 퀴니는 강 위를 달리다가 강이 돌아가거나
앞에 얼어붙은 작은 폭포가 있는 것을 보면 명령을 내리기 전에
강 밖으로 나가서 달려 거리를 단축했다.
 
힐리 동네를 벗어나서 몇 마일 가면 호수가 있다.
건너는데  4-5백 미터가 되는 긴 호수였다.
어느 이른 봄날 나는 긴 호수를 따라서 호안에서 수 백 피트 떨어진 지점을 달리다가
나의 썰매가 지나가는 족족 얼음에 금이 가는 위험한 지역을 만났다.
그 곳은 썰매로 달리기에 얼음이 너무 얇은 곳이었다.
나는 몸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썰매 위에 급히 몸을 엎드렸다.
정말 위기의 순간이었다.
퀴니에게 방향전환을 해서 땅으로 가라고 지시를 할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지 않았던 돌발동작을 본 퀴니가 위기는 먼저 알아 차렸다.
그는 나의 지시가 있기도 전에 방향을 구십 도로 틀고 전속력으로
호숫가 땅으로 돌진해서 큰 위험에서 동료 울프독과 나를 구해냈다.


 


보통의 썰매 개들처럼 울프 독들은 귀와 꼬리,
그리고 몸의 바디 랭귀이지로 서로 감정 소통을 한다.
나는 그들의 바디 랭귀지만으로
어떤 녀석의 기분이 안 좋은지를  발견해 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몸에 매어진 하네스가 잘못 되었다던가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것 등이다.
역시 개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음성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나는 그들이 짖는 소리로 어떤 짐승이[그것이 순록인지 곰인지를]
나의 오두막 주변에 나타났는지를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그들이 감지하는 동물마다 독특한 바디 랭귀지나 짖는 표현이 따로 있었다.
드물지만 특히 인간들이 나의 집을 찾아 올 때
울프 독의 짖는 소리는 두드러지게 달랐다.
한 때 두 명의 덫 사냥꾼이 내 오두막에서 약 3마일 떨어진
멕킨리 자연공원지역에 임시 사냥막을 짓고 산 일이 있었다.
울프 독들은 그 먼 거리에서 바람에 실려 오는 인간들의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짖어댔다.
그리고 낯선 인간들이 나의 오두막에 찾아 올 때 꼭 같은 메로디[?]로 짖어 대서
손님이 온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순록이 집 근처를 지나가면 울프 독들은 평소 순록을 봤을 때의 음조로 짖어댔다.
고기가 필요할 때면 나는 순록을 보기도 전에 울프 독들의 짖는 소리만 듣고
총을 들고 달려가서 순록을 찾아서 잡아왔다
이리가 접근하면 이들의 짖는 소리는 다른 동물과 판이하게 다른 패턴을 보였다.
이리의 접근을 감지하면 울프 독들은 나를 돌아보면서 꼬리를 흔들면서 짖었다.
그리고 개가 짖는 소리가 아니라 이리의 짧은 울음을 울었다.
핏줄이 당기는 제스츄어였다.
언제인가는 울프 독들이 자기들 개집 위에 올라가서
잔뜩 긴장한 자세로 오두막 옆을 흐르는 새비지 강의 상류를 보며
코를 들고 바람에 실려 오는 냄새를 탐색하고 있었다.
모두 불안한 자세며 표정이었다.
뭔가 맹수가 나타났다고 추측을 한
나는 집 뒤 200미터 뒤에 있는 언덕에 올라가 보고서야
먼 5 킬로 밖에서 회색곰이 있는 것을 보았다.
울프 독들은 그 먼 거리에서도 위협의 냄새를 맡을 만큼 후각이 뛰어났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개들의 표정과 짖는 소리로 무슨 동물이
오두막 근처로 오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이리 소리를 정확히 낼 줄 알던 이들 울프 독들은 이리들과 화답할 줄도 알았다.
이 것은 짝을 찾는 교미 철에 자주 있었다.
1930년대 초반 내가 살던 새비지 강과 토부락 강의 유역에
이리들이 우글우글하게 이상증식을 했었다.
알래스카 새비지강 이리들은 순록과 뿔 사슴들을 무더기로 작살을 내서
지역 짐승들은 물론이고 사냥을 해서 먹고사는 주민들의 생계까지도 위협했다.
정부는 이리 마리 당 15불씩의 현상금을 걸고 사냥을 장려했다.
또 잡은 이리가죽은 한 장당  18불에 팔 수 있었다.
하루 일당이 10불 때의 이야기니 이리를 잡으면 벌이가 나쁘지 않았다.
어느 3월 - 이 때는 이리들의 교미 철이 시작되는 때이다.
멀리서 이리들이 짝을 찾는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는 퀴니가 신분상 집개지만 부계, 즉 이리의 본능은 다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나는 먼 여기저기서 짝을 찾아 지르는 이리소리를 듣다가 퀴니에게 지시했다.
"저 놈들 좀 불러봐라!"
퀴니는 나의 말과 제스츄어로 지시하는 내 뜻을 알아차렸다.
퀴니는 완벽한 이리 울음으로 이리들을 초빙했다.
퀴니가 몇 번 길게 울자 멀리서 이리들의 응답이 있었다.
그날 오후 멀리서 우는 이리들과 퀴니의 대화가 여러 번 교환되어 가면서
이리떼의 울음은 점점 나의 오두막에 가까워왔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이리들의 울음소리가 정말 가까이서 들렸다.
퀴니는 자기의 유인작전이 먹혀 들어가자 굉장히 흥분한 듯했다.
꼬리를 흔들며 나를 계속 쳐다보면서 이리 쪽을 보며
‘우-! ’하는 이리 소리를 되풀이하였다.
나는 망원경과 라이플을 들고 실탄을 한 주먹 마련 한 뒤
개집 근처에 엎드려 쏴 자세로 잠복했다.
드디어 300미터 떨어진 곳에 첨병 이리가 나타났다.
나는 나의 망원조준경을 통해서 그 이리를 지켜보았다.
조금 뒤 그 뒤를 따라서 다른 이리가 따라 나타났다.
이리들이 시야에 나타나자 퀴니 동료인 여덟 마리의
울프 독들도 흥분하여 각기 자기 개집으로 올라가서
다가오는 이리떼를 향하여 합창으로 울어댔다.
울프 독의 울음소리만 들으면 마치 나의 오두막이 이리 떼에 포위 된 것 같았다.
드디어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앞의 강을 따라서 길디긴 이리떼의 일열종대가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리들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정지하여 이쪽을 응시하다가
울프 독의 울음을 들으면 다시 달리고 하며 점점 다가왔다.
나는 그 많은 수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다수였다.
나는 그 긴 일열종대에서 총 27마리의 이리들을 헤아릴 수가 있었다.
드디어 선두 이리가 50미터까지 다가와서 일단정지하고 울프 독들을 살폈다.
나는 일열종대의 마지막 끝 검은 이리를 조준경에 얹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을 맞은 이리는 얼음 위에 나가떨어졌다.
동시에 그 후미 두 번 째의 이리를 사격해서 처치했다.
한 줄로 달려오던 이리들은 총소리에 놀라 일대공황을 일으켰다.
방향 전환하는 놈, 계속 오는 놈 등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서
서로 부딪히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그 이리떼의 덩어리에 속사를 해서 두 마리를 더 죽였다.
그제야 이리들은 회오리바람에 가랑잎 흩어지듯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 중 일부가 놀랍게도 울프 독들 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리들이 꼬리를 수평으로 들고 귀를 착 붙인 채 정신없이
울프 독들 쪽으로 달려오자 퀴니를 비롯한 울프 독들은 어서 오라는 듯이
더욱 더 길게 울어 그들을 유인했다.
이리들은 여전히 울프 독들이 자기들 동족이고
이들이 있는 곳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울프 독들은 총소리에 면역이 되어 놀라지를 않지만
이리들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할 정도의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가장 가까이 들어오는 놈을 몇 미터 앞에서 쏘아서 죽였다.
그러자 나머지들은 또 사방으로 흩어져서 근처 덤불로 뛰어들었다.
나는 급히 연사했지만 전부 불 명중으로 끝났다.
나는 시야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이리가 아직도 150미터 밖에
있는 것을 보고 사격을 해서 이것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이리는 일어나 숲 속으로 도주했다.
나는 이 이리를 숲 속 6미터 안에서 발견했다.
그날 나는 퀴니와 다른 울프 독의 도움으로 이리를 일곱 마리나 잡았다.
나는 이리의 교미철이 되면 퀴니를 이용해서 이리들을 유인하여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나는 이리 피를 받았으면서 자기 사촌들을 교묘히
내 앞으로 유인해 내는 퀴니를 보고 가끔 “요 유다 같은 놈아!” 하고 놀렸지만
집개인 퀴니에게 물론 그런 의식 따위는 있을 리가 없다.


1937년 나는 야생동물들을 조사하는 미국정부의 한 연구단체에서
일자리를 구해서 새비지 강가의 오두막을 떠나서
페어뱅크스 시내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야생에서 살기에 다소 체력이 부치는 마흔 여덟 살의
늦은 나이에 얻은 안정된 직장에 전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새비지 강가의 오두막살이를 청산하고 페어뱅크스로 이사하기로 했다.
도시로 가는 한 데리고 있던 울프독도 더 이상 필요도 없을뿐더러
유지하기도 힘에 부쳤다.
그래서 울프 독들도 남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퀴니와 남매 버스터만은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냥 페어뱅크스로 데려가서 그냥 데리고 있기로 하였다.
두 남매 울프 독들은 항상 붙어 다녀서 갈라놓을 수가 없었다.
겨울에 썰매를 타고 원야를 다닐 험한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두 녀석을 데리고 야생의 자연으로 출장을 다닐 일은 자주 있었다.
그때 이미 열 살이 넘어 연로해진 두 울프 독은 인간으로 따지면
인간의 60세를 넘는 늙은 나이였다.
그러나 첫해인 1937년 나를 따라 원야로 나갔던 퀴니는
덫 사냥꾼이 놓은 독약미끼를 잘못 먹고 중태에 빠졌다.
나는 그 자리에 야영자리를 준비하고 며칠간 퀴니가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강인한 퀴니는 죽지 않고 이 중독을 이겨냈다.
중독의 후유증은 퀴니가 앞다리를 제대로 쓸 수가 없게 만들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더해서 다른 근육체계를 마비시켜
혹한에 몸을 둥글게 말고 꼬리로 얼굴을 가리도 자는 방한 자세를
만들 수가 없게 만들었다.
춥디추운 알래스카의 혹한은 방한의 자세로 잘 수 없는 퀴니의 삶의 마감을 재촉했다.
퀴니는 시름시름하다가 1939년 1월, 내가 야외로 출장을 나간 사이 저 세상으로 갔다.
평생 붙어 다니던 누이를 잃은 버스터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얼마 뒤 퀴니의 뒤를 따랐다. 
내가 다시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알래스카 최고의 울프 독은
10년 넘는 봉사를 하고 내 곁을 떠났다.
나는 그 후 울프 독을 가져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힐리역의 수하물담당 그린씨의 부인이 나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그녀는 내가 울프 독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힐리에 오는 것을 자주 보았었고
인근에 자자했던 내 울프 독의 명성을 잘 알았었다.
“아저씨, 나는 내 쥔 양반에게 아저씨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오.
덫사냥 길에 다리나 어디가 다쳐도 그저 썰매에 앉아 있기만 해도
울프 독들이 안전하게 아저씨를 데리고 돌아올테니까요.“
그 말대로 울프독과 같이 기르고 일하고 10여 년의 기간
나는 이리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았으며 명성도 얻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지금도 울프 독들의 정든 체취와
그들의 강인하고 멋있었던 활약과 사랑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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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Rancho San Antonio Open Sp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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