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식을 사러 동네 마트에 가는 길이었다.
앞에서 오던 여학생들이 나를 보자, 반가이 소리를 지른다.
"선생님! 어디서 근무하세요? 너무 뵙고 싶었어요."
낯선 여학생들이 큰소리로 말을 하는데, 나는 도대체 이 학생들이
누군지 감감하다.
주위는 제법 어둑어둑해 오고 있었다. 어슴프레한 주위 탓인지 도
통 누군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학생들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선생님. 미연이예요."
"미연이?"
그 여학생들이 나를 알아보는 눈치였기에, 차마 모른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냥
아, 미연이?
했지만 누군지 영 모르겠다.
그때 미연이라는 학생이 말을 잇는다.
선생님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면서 가끔 성경 이야기를
들려 주셨노라고 한다.
그때서야, 나에게 떠오르는 확실한 이미지.
몇년전에 M초등에 있을 때 유독 성격이 명랑하고 활발하여 나의 귀
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 아이가 떠오른다.
그 아이는 이어서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자기만을 유독 귀여워하
셨노라고 한다.
아, 이제서야 떠오른다.
그 아이였다.
참 활발하고 귀여운 아이였지.
왜 나는 얌전한 아이보다는 활발하고 명랑한 아이를 좋아하
는 것일까?
암튼 그때 그 아이와 나는 심적으로 상통하는 무엇이 있었기에
그 아이만 보면 공연히 기분이 좋아지곤 하던 생각이 이제서야 자세히
떠오른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일까?
미연이는 내가 자기를 알아보는 기색이 엿보이자 얼른 나를
끌어안고 볼을 비벼댄다.
"선생님. 얼마나 뵙고 싶었는지 몰라요. 정말이예요. 전에 다
니던 학교에까지 찾아갔지만, 선생님은 안계셨어요."
나보다 머리하나는 족히 커보이는 그 여자애가 나를 또 끌어
안고는,
"선생님. 이렇게 만나뵈니 너무나 좋아요. 아이, 좋아라."
명랑한 커단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활기차고 씩씩한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짐을 느낀
다.
그런데, 미연이는 나를 못잊어 하면서 너무나 뵙고 싶었다며 나를
꼬옥 끌어 안고 볼를 비벼대고 있으니.
이 하늘을 나는 듯한 즐거운 마음을 더이상 말해 무엇하랴.
그 순간에 내가 교사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하였다. 어깨를
펴고 마음을 활짝 열어 본다.
온 세상이 교사인 나를 칭찬하면서 승리의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 듯
하였다.
나는 그 아이들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마트에 들어가자 나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고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화이트데이 초코렛을 집어 들며 사주겠다고 하였다.
아, 겸손한 나의 제자들은 그렇게 비싼것은 사주지 않으셔도 된다며
사양을 한다.
그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나는 너무 감동
을 받아 가슴이 울렁거린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사주더라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텐데 말이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히 담아 온몸으로 보여오는 그 아이들에게
무엇이 아깝겠는가 말이다.
나는 강요하듯이 나의 제자들에게 초코렛과 아이스크림을 집어 주고
나왔다.
하나님께서 왜 또 나에게 이런 귀한 사랑의 선물을 베풀고 계시는지
심오한 뜻을 헤아리기 어려우나
초여름을 넘어가는 이 계절을 바라보는 나의 심안에
아직은 우리 나라의 교육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떠올려 본다.
얘들아. 사랑한다. 이건 진심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