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는 결국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고 바꾸 었다 .
그리고 바꾼 사실을 신하 중 똑똑한 한상질 이라는 사람을 명나라에 보내어 알리었다 .동시에 군제를 정비하고 갑주와 공주등에 성을 쌓도록 했다 .
이성계는 수시로 정도전 하륜 조준등을 불러 행정 제도도 바꾸도록 했다
이렇게 내부 정비에 신경 쓰면서 한편 이성계는 계룡산 신도안에 세우는 새도읍의 진행을 독려 했다
그러던중 조정에서는 신하들 간에 개성에서 충청도 계룡산으로 천도 하는데 대한 반발 의견이 나왔다 하륜이 계룡산은 강이 없어 물자 운반이 어려우니 도읍지 로서는 부적합 하다는 것이었다
"전하,지금 짓고 있는 계룡산 궁궐은 남쪽에 너무 치우쳐 있고 산은 서북방에서 뻗어 왔는데 물은 동남방으로 흘러 가니 이는 곧 수파장생쇠패립지 (水破長生衰敗立地)형이니 새 수도로서는 부적합합니다 . 더구나 계룡산은 내륙에 있어 바다가 멀고 북쪽의 여진과 서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들을 막아내는데는 도읍지로 불가합니다 . 통촉하시옵소서"
하륜의 말에 정도전은 생각이 달랐다
"전하 ,도참설에 의하면 계룡산은 풍수지리상 최고의 명당이라 하옵니다 .기왕에 시작한것을 걷우워서는 않됩니다 "
하고 반대 의견을 제시 했다
이성계는 계룡산 신도안의 공사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계룡산이 풍수 지리 상에만 좋다고 나와 있지 실제 수도로서 적합한가 의구심을 갖지 않을수 없었다 .
그것은 한 나라의 수도가 훨씬 남쪽에 내려 간다는것이 문제 였다 .조선은 명실 공히 옛 고구려 땅 까지 앞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나라였다
삼국시대를 더듬어 봐도 신라가 고구려 고토를 상실한것도 경주라는 치우친 수도 때문이었다. 계룡산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수도라면 바다를 끼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성계는 지금의 개성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개성은 예성강이라는 큰강을 갖고 있다. 강을 따라 바다까지는 지척지간이다 . 그리고 조선 반도의 중심지가 아닌가?
이성계는 아까 하륜의 말이 마음에 걸리었다
이성계는 다시 하륜을 불렀다
"공의 말을 듣고 보니 계룡산은 도읍으로는 좀 곤란 한것 같소 . 공이 생각 하는 도읍지는 어디라고 생각하오?
왕의 질문에 하륜은 서슴치않고 대답했다
"개성보다는 나으면 나았지 뒤 떨어지지 않은 한양이 최적지라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한양은 풍수지리나 도참설에 맞지 않는점이 있지 않소?"
"전하, 어찌 한 나라의 수도를 풍수지리설이나 도참설에 의지하여 수도를 정하려 하시 나이까?
한양은 지형조건이 개성과 흡사 합니다 .수도로서 적합하다는 말씀이옵니다 . 옛날부터 도읍지로서 제일 적합한 곳은 군사적으로 방어하기 좋고 강이나 바다로 물자를 수송하기 좋아야 하며 조선 전체가 사방으로 서울과 거리가 균등하여야 하며 한양으로 통하는 교통과 명나라나 왜국과도 교통이 편리하여야 합니다.
한양은 조선의 중심지로 육상교통이 편리하고 바다와 한강은 물자운반에 편리하며, 북악산 ,인왕산,목멱산,낙산,의 내사산(內四山)과 북한산, 덕양산, 관악산, 용마산,의 외사산(外四山)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내 명당천인 개천(청계천)은 한양의 젖줄이옵고 과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외명당천인 한강은 천혜으이 요새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고구려 장수왕도 남쪽에 있는 서울이라 하여 남평양이라 불렀고 신라 진흥왕때도 한주라하여 중요시 했으며 고려 숙종때는 남쪽에 있는서울이라 하여 남경이라고 부르기도 했나이다 우왕도 한때는 한양으로 천도 하기 위하여 건물도 지었으나 최영의 반대로 중단 된적도 있나이다.
전하께옵서는 그동안 저 남쪽에 치우쳐 있는 계룡산만을 생각 하시는것 같아서 그 동안 말을 삼가고 있었사오나 기왕에 나온 김에 말씀 올리면 한양도 풍수 지리설이나 도참설에서 계룡산에 못지 않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
맨 마지막 말에 이성계의 귀가 번쩍 띄었다.
"그럼 풍수 도참설에 한양도 좋다는 말이오?"
"그러 하옵니다"
"설명좀 해보오"
"전하, 풍수로 보면 한양의 조산(祖山)은 북한산입니다 북한산은 국망봉, 인수봉 ,으로 이어저 북악을 이루고 동쪽의 낙산은 좌청룡이 되어 동쪽을 막아주며 , 서쪽의 인왕산은 우백호로 서쪽을 막아 주게 되고 남쪽에 있는 목멱산(지금의 남산)은 안산(案山)이됩니다 여기에 개천(청계천)은 내수구로서 조선의 모든강이 서쪽으로 흐르나 이 개천 (청계천)만은 역수(逆水)로서 새나라를 세우는데 있어서 중요한 뜻도 있나이다
이제 고려는 망하고 조선이 개국 한다는 의미 에서라도 반드시 한양을 수도로 삼아야 하나이다"
"풍수지리설로 보아도 한양은 계룡산 보다 나으면 나았지 뒤 떠러지지 않는구먼 ...."
이성계는 하륜의 설명에 감복했다
"그러면 궁궐은 어디에다 짓는게 좋겠소?"
"신의 생각으로는 삼봉과 무학 대사와 같이 합석 한자리에서 결정하는것이 옳다고 생각 되옵니다"
이성계는 하륜을 보내 놓고 계룡산으로의 천도가 얼마나 무모한짓인가를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성계는 얼마전 신도안을 돌아보았을때는 가을철이라 단풍이 우거지어 주변 자연 환경에는 매우 만족했었다.따라서 그는 신도안 궁궐터로서는 그런 명당자리는 없다고 생각했었다,무학대사 말대로 주봉인 계룡산과 주위의 야산이 글자그대로 궁궐 터를 감싸 안은 듯한 남향의 아늑한 터가 마음에 들었었다 .
그리고 내지(內地)에 그만큼 넓은 들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왕이되기 전 고려 전국을 누비며 북쪽의 여진과 서남쪽에 출몰하는 왜구들을 치기위하여 동분 서주 하던 장수였다
그는 태평시대의 안가(安家)가 들어설지역으로는 신도안이 좋을 성 싶었지만 유사시에는 적들이 쉽게 공격해 포위 당할 우려를 생각 하지않을수 없었다
<높은산과 넓은강은 외적들을 막아내는데는 백만 대군보다 나을수도 있는데도 신도안은 큰강이 없다 , 그리고 유사시 바다를 이용한 군수물자 조달과 병력 이동이 쉽지 않다.
더구나 조선을 부국강병의 국가로 만들려면 인근 명나라와 활발한 교역으로 나라를 부흥시켜야 한다 . 그런데 내륙 깊숙히 있어서 어쩌자는것인가?>
이성계는 깊은 고민에 빠젔다
밤잠을 설친 이성계는 이튿날 무학 대사와 정도전과 하륜을 불러 놓고 그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신도안 궁궐 공사를 중단 시키었다
이유는 계룡산은 강이 없고 바다가 멀어 물자운반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너무 남쪽에 치우처 장차 북쪽으로 진출하려면 계룡산이 부적합 하다는 이유에서 였다
무학대사와 정도전은 임금의 돌연한 중지에 처음에는 몹시 당황 하였으나 임금의 확고한 신념에 눌려 왕의 다음 지시가 무엇 인지에 더 관심이 집중 되었다
사실은 정도전이나 무학도 계룡산을 수도로 정해 놓고 공사는 하고 있었으나 정도전도 신도안이 수도로서의 기능이 부족할것 이라는것을 내심 우려는 하고 있었고 무학 대사도 마음속 한구석에는 지리적으로 부족한점 이 많다는것을 느끼고는 있었으나 한번 저질러 놓은 중
대한 사업의 번복이 차마 입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임금 입에서 취소 명령이 떨어 젔으니 때는 이때다 생각하고
"그러면 전하는 어디를 수도로 정하시려 하옵니까?"
"한양이오 , 한양이 개경과 아주 흡사한 조건을 갖고 있소 "
"...."
정도전과 무학대사도 제 2의 후보지로 한양을 꼽고는 있었던 것이다
"하오면 풍수지리는 살펴 보시었나이까?"
무학 대사가 물었다
임금은 짐짓 모르는척 하며
"대사께서 한양의 풍수 지리설 강론 좀 해보시오"
하자 무학대사가 한양에대한 강론을 했는데 하륜과 비슷한 설명을 하였다 . 하륜과 다른점은 관악산이 불 기운이 있으니 궁궐 문에 해태라는 동물을 세워 불로 인한 화를 면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태조는 이렇게 무학 대사및 정도전 . 하륜과 의론 하여 계룡산 수도 이전 계획을 전격적으로 취소 하고 한양부(漢陽府), 즉 남경 에 새 도읍지를 세우기로 결정 되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