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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이라는 말이있다.이 말은 어느 쪽으로든지 치우침이 없이 곧고 올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
우리 민족 같이 사상과 행동이 사리에 어긋 나지 않고 알 맞은 건실한 중용사상(中庸思想)을 사랑 해온 민족은 없었다 .
그런데 현대사에 들어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무슨 일이든지 모든 사물을 중용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극단적 사고방식이 당연 한것 처럼 생각하고 있고 또 그런 사람들을 영웅시 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이 보인다 .
한 동안 동남아에 나가면 한국 관광 손님들이 식당에라도 앉으면 시킨 음식을 빨리 안가져 온다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한국 손님 만 오면 "빨리 빨리"하면서 종업원들이 먼저 설치어 다른 한국 말은 몰라도 빨리 빨리라는 말은 모르는 종업원이 없었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유독 한국 손님들이 화제 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
앞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원래 지역사회 자체가 매사에 중용사상에 어긋나면 어디서든지 발을 못 붙이는 사회였다.
그런데 어느 사이 엔가 자기의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좀 다르다고 중용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사회로 변질 되어 가고있다 .
정의롭지 못한자들이 마치 정의로운것 처럼 위장하여 극단주의적으로 나와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한다 .
극단주의로 치닷는자들을 남자인 경우에는 스스로 자화 자찬하며 자신을 링컨에 비유 하고 조선시대 태종을 거론하는 가하면 여자인 경우에는 쟌다르크 에다 미화 하고 있다 .
여기서 극단론자들이 자기들을 링컨이나 태종 같은 사람들과 비유하는것은 정말로 그들에 대한 모욕이다 .
거개는 스스로를 말도 안되는 링컨 같은 사람이라고 자화 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위 신문 기자들이 라는 사람들 특정 극단주의자들을 X 쟌다르크니 하면서 한껏 치켜 세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일은 링컨이나 , 태종이나 , 쟌다르크가 과연 극단론자들 처럼 극단주의 성격을 갖고 있었느냐 하는것이다 .
대답은 간단 명료하다 .
그들은 모두가 중용지덕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최근 까지도 우리사회에서는 사상과 행동을 치우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수니 수구니 꼴통이니 하면서 그런 사람을 오히려 비하 하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고 있었다 .
반면 에 단적으로 생각하는사람들은 큰 영웅이라도 발견 이라도 한것 처럼 말하는 것을 보아 왔다
왜 그 지경이 되었을까?
유럽의 라틴 민족 처럼 정열이 지나치어서 지나치게 격렬한 사상이 도입 되어서 그런것일가?
그렇지는 않은것 같다 .
정열 때문이 아니라 부정적인 사고 방식이 온 사회가 물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
언제인가 우리의 자난 날은 모두가 봉건주의요, 사색 당파주의요 . 친일파들만의 세월이기 때문에 거들떠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그러나 곰곰히 생각 해보자 .
먼 유럽은 제껴두고 가까운 중국 대륙에서 있었던 역사를 더듬어 보자 . 기원전 300 년경 우리나라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찬란한 역사를 유지하고 있었을때 중국대륙은 어찌 되었었나를 예를 들어 살펴 보자 .
당시 중국 대륙 내에서는 진(晉)나라가 망하자 북 아시아의 선비,흉노족이 중국 대륙을 휩쓸며 온 중국 대륙이 몸살을 앓고있었다 .
이때가 기원전 300 년부터 400 년까지 꼭 1 세기 동안 망하고 흥한 나라가 어찌도 많은지 이루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혼란 스러웠다 .
한(漢), 전조(前趙) ,후조(後趙), 전연(前燕), 대(代), 유연(柔然),전량(前凉), 전진(前秦), 위(魏), 서진(西秦), 후량(後凉), 후연(後燕), 북위(北魏), 서연(西燕), 남연(南燕),북 연(北燕)..........부지 기수다
흥망을 거듭하던 이런 나라들은 거의 1백년 동안을 중국 대륙에서 극단주의의 극치를 이룬 나라들이었다 .불지르고, 죽이고, 약탈하고 ,.....
한 인간이 태어나서 후하게 100 년을 최고 수명으로 본다고 가정하고 이 엄청난 과격주의자들이 이끌어간 국가들이 흥망 성쇠를 거듭하는 그기간동안 그곳에서 살아 갔던 당시 중국 민초들의 생활은 과연 어땠을까?
권력에 눈이 어두워 백성들은 아랑곳 하지 않은 것은 좋다 치고도 그 들이 벌린그들의 권력 투쟁을 뒷 받침 해야하는 민초들의 고통은 눈에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정권을 유지 하려면 막대한 경비를 걷우려 하는 것은 필수 사항이고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들의 도구로 뽑혀 다니던 군사들의 고충은 이루 글로 표현할수 없을것이다.
그에 비하면 당시 우리나라는 삼국이 비교적 안정된 국가로 있었으니 보통 다행스러운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우리나라 삼국이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삼국의 사상과 행동이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삼국이 공존하는 한민족의 중용지덕(中庸之德) 정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때 일본의 식민사관이 조선 중종시대 당파가 마치 분열의 극치 처럼 떠들어 대는 사람이 있었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조광조 같은 극단주의적 사고에대한 중용의과정에서 생긴 의견 대립 정도로 보면 적당치 않았을까를 생각 해 본다 .일본 사학가들은 조선시대의 당파 논쟁을 두고 분열의극치 처럼 떠들어 조선인들은 구제불능인 민족 처럼 호도 한적도 있지만 알고보면 그렇지 만도 않다 .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가와 권력이있는 곳에는 치열한 논쟁이있기 마련이다 .그당시 사회가 어느한쪽이 극단으로 나가는 것에대한 서로간의 견제 가 없었더라면 그 극단주의가 사회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앞에서 중국대륙의 예를 들었지만 우리라고 예외는 아닐것이다
따라서 프랑스 루이14세가 자기가 나라라고 하며 극단주의로 흐르다가 프랑스라는 나라가 붕괴된 일이있지만 우리의 당파를 그렇게 나쁘게만 볼것도 아니다 .중용으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논쟁 이었음을 감안 한다면 그리 나쁘게 볼것 만도 아니다
요사이 한국인중 왜정시대 일본으로 부터 자기만 일본 총독부로부터 벼슬을 받아 온갖 영화를 누리면서 한국인을 탄압 하기 위한 밀정 행위를 하며 애국자를 죽이는 행위를 했던 일부 사람들이 도마 위에 올라 있지만 이런 사람들도 결국 극단적 사고만을 하여 나라를 팔아 재미를 본자들이니 당연히 처벌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민지 일제 압제 밑에 숨조차 마음 대로 크게 쉬지 못하고 살던 시절의 민초들의 삶은 일본 식민지 시대를 직접 살아 보 지않고는 친일파라고 극단적 판단을 할수 없는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정(中正)의 혜안으로보는 눈이필요하다 .
모든 사물을 극단적으로 해석 하여 말하는 이 와는 중정의 혜안을 바랄수 없다 .지나간 과거에 억매어 앞을 정확히 내다 보지 못 하는것 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기 때문이다 .
과거의 역사는 우리의 거울이다 .
거울을 옳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 해야지 성급히 판단해서는 안된다 .
중정의 생각을 해보자 .
깊이 생각도 하기 전에 보수니 혁신이니 하면서 가볍게 편가르는 극단주의를 버리자
극단주의는 필요 없는 소모전일 뿐이다 ,
보수가 나쁜 것도 아니고 혁신도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급격한 무신경의 극단적 행동은 국가를 망치게 된다는것을 명심 해야한다 .
기원전 300 년대 중국 대륙은 온통 극단주의자(?)의 물결 속에 들 끓고 있을때 우리나라는 비교적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용주위적 통치를 한 까닭에 얼마나 당시 찬란한 우리나라 역사의 삼국시대의 황금의 꽃을 피웠었나를 다시 한번 생각 해보자 .
그 시대의 중국 대륙의 극단적 흥망성쇠 속의 국가들의 민초들의 삶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 비교적 안정 되었던 우리나라 삼국의 민초들의 삶을 곰곰히 비교 생각해 보면서 .............
반추해 보는 지혜를 갖자 .
요사이 민주주의 사상이 중용주의사상과 무엇이 다른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