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교'란 신흥 종교를 들어보셨는지.
요즘 한참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라면교’가 장안에 화제라고 한다. 다음은 ‘라면교’에 관한 관계자와 일문일답이다.
Q. 라면교의 주된 교리는 무엇인가요?
A. 많은 것이 있으나 크게 세 가지를 지키고 믿으면 라면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부활의 신앙입니다.
끓는 물에 돌아가신 후 3분 만에 부활하신 기적을 믿는 것입니다.
둘째로 삼위일체입니다.
면발과 국물과 김치의 조화됨과 하나됨 입니다.
셋째로 사랑과 긍휼입니다.
주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자세입니다.
Q. 짜파게티님도 구주이십니까?
A. 많은 종교신학자들이 여전히 여기에 대하여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과 사랑의 측면에서는 부합하나, 짜파게티경 5장에 보면
면이 끓으면 국물을 큰술 3술만 남기고 따라버리'라는 글이 나옵니다.
이것은 일부 근본주의 신학자들로 하여금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는 증거로 쓰여지기도 하지만,
조심스러운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큰술 3술'에 남아있는 깊은 뜻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짜파게티님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Q. 그렇다면 이단은 어떤 종파가 있습니까?
A. 우선 부활신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교파들이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라면교의 초기에 있었던 '하이면'과 그 뒤를 잇고 있는
'생생짬뽕' '생생우동'등의 '튀기지 않은 면발'을 강조하는 부류입니다.
끓는 물의 고난을 부정하고 '생면'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교파입니다.
또한, 삼위일체의 부정이 있습니다.
'비빔면' '모밀국수'가 대표적인 세력입니다.
이들은 국물을 다 따라버리는 것도 부족하여 '냉수에 헹구'는
극악한 사탄의 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부활신앙에 반하는 자들과 더불어 '액상스프'라는
사도의 양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때의 깔끔한 맛에 유혹되어 영원한 지옥불이 기다리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컵라면님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A. 컵라면님은 배고프고 주린 자가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노숙하는 자나 길잃은 자를 위하여 냄비에서 스스로 나오신 성자이십니다.
이분께서는 비록 냄비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셨지만,
부활과 삼위일체와 사랑을 실천하시는 큰 성인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주이신 라면님과 착각하는 우를 범하여서는 안되겠습니다.
특히나 일부 1000원이 넘어가는 컵라면들은 주의를 가지고
살펴보아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 안목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Q.시중에서 라면님의 형상을 모방한, 교회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같은 존재가 있는데 이것의 실체를 규명해 주십시오.
A. 그것은
'뿌셔뿌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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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피부를 에이는 겨울밤 거리. 따뜻한 라면 국물만큼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것이 또 있을까. 나는 일을 마치고 귀가를 서두르는 어느 늦은 밤,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라면 가게를 하나 발견한다. 때마침 그 가게는 오늘의 영업을 마감하기 전이었다. 나는 출출하던 찰나에 잘됐다싶어서 가게에 들어가, 라면 한 그릇을 주문한다. 천원 짜리 두 장이라는 부담없는 가격. 게다가 어떤 추위도 잠시 동안 잊게 만드는 강력한 각성의 힘이 바로 라면에 있다. 계란과 파는 기호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누락되서는 안되는 것은 얼큰한 국물. 모든 면요리에 성패는 바로 이 국물에 달려있다는 것은 예민한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혹자는 취향과 성별과 계급을 넘어 호소력을 갖는 라면의 보편성에 인류애적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라면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라면이 전래된 경위도 곤고하기만 했던 서민들의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의 일환으로서가 아니었던가. 물론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라면이 가난함과 맺는 상징적 관계는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던 일부 사람들에게 라면이 떠올리기 싫은 어린시절을 환기시키는 매개가 되기도 하였다. 여름에 수해를 겪은 사람들에게 혹은 추운 겨울 결손가정에 구호품으로 전달되는 라면박스가 익숙한 사람들 앞에 라면에 대한 이런 낭만을 품는 것은 섯부른 행색이다.
하지만, 어쨌든 라면에 대해 달라붙는 이런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잠시 잊어버리고 라면이 주는 따스함을 한 번 음미해보자. 나는 막 내 앞에 놓여진 라면 한 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김이 피어오르고 따뜻한 기운이 내 얼굴을 감싸고 있음을 느낀다. 내게 있었던 그 찰나의 외로움도 잠시나마 사그라든다. 라면을 세상에 처음 내놓은 일본인 발명가는 사람들의 행복에 뭔가 보탬이 되고 싶었다는 것이 라면개발의 동기가 되었다. 소박하지만 참 아름답기 그지없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 라면 앞에서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릇을 들어 국물을 천천히 들이마신다. 당신도 느껴질 것이다. 그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가슴 한 가운데로 전달되는 그 온기를.
이민 생활에서
고상하고 위엄(?)있는 직업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
그저 돈이 있으면
어디가든 살수 있기에
구멍가게 하나
여러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도매다 소매다
이름붙여 장사하는
우리 민족들
4계절의 구분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추운 날씨는 존재(?)하기에
허기진 배를 따끈한 무엇으로
때울 수 밖에 없는 신세들이라
가장 간편한 라면으로 때우는데
우리 보다 더 불쌍한 이들이 있었으니
노숙자, 한인들 가게 근처에서 일하는
일일 노무자들이라
이 사람들도 춥고 배고프기는 마찬가지
그런데 한인들을 따뜻한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로 여겨
얼마나 부럽고 질투(?)가 나는지...
여기에 착안하여
노숙자들에게 농심 사발면을 대접하기를
2003년 1월부터였는데
이제는 이들이 라면에 길이 들여져
다운타운 근처 리쿼스토아에서 파는
사발면을 사들고 다니면 먹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다운타운 근처 구멍가게에는
필수 품목으로 라면이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지요.
그보다 아프카니스탄 피랍자들이
크게 소리지른 첫번째가
바로 라면을 공급하게 되었다는 소식 아닙니까?
정말 라면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