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호는 그의 자화상을 많이 그리기로 로 유명하다
고호라는 화가는 처음부터 자화상을 그렸던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델을 서주지 않자 스스로의 모습이라도 그려야 겠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초상화 크기만한 거울을 사가지고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자화상을 서른점 이상을 그렸는데 그는 왜 그토록 자기 자화상에 집착했을까?
고호는 1890 년 서른 일곱 나이에 자기 가슴에 권총을 쏘아 자살한 화가이다
왜그랬을까?
서재를 정리 하다가 중학교때 미술 책이 발견 되었기에 한번 펴본 곳이 하필이면 고호의 초상화였다 .
초상화는 런던 미술관 소장의 고호가 귀를 자른 자화상이었다.
그 그림은 꼭 우리나라 6.25 직후 전란으로 찌들렸던 거리의 어느 군고구마장수의 초상화 같기도 하고 어느 누구를 원망하는 모습같기도 하다.그의 그림중 내가본 초상화의 이상한것은 바른쪽 귀를 반창고로 막고 있는 자화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고호가 왜 귀를 자르고 그 자화상을 그리었을까?
전해오는 말로는 고호가 아를르라는 곳에서 유명한 동료 화가 고갱과 같이 생활 할때 고갱이 장난삼아 고호가 그린 자화상을 보고 그가 그린 자화상이 자기를 닮지 않았다고 비꼬은데서 격분하여 자기귀를 자르고 그리었다고 전해온다.
과연 그랬을까?
그랬다면 고호는 고갱이 미웠을것이고 사뭇 증오의 감정으로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므로 자화상 따위로 증오를 달랠리는 없을것 같은데 그런 일화가 전해 오는 것을 보면 사뭇 의문 투성이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고호는 일정 기간 동안에 몇년에 걸쳐 하루도 빠지지않고 편지를 쓴 화가로 알려저 있다.내용은 자기 생애에 끊임 없는 좌절과 실패, 실망이 자기의 굳건했던 의지가 끊임없이 흔들린다고 술회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30 여개의 자화상은 모두가 각각 자화상이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한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언제나 심각하고 억제 할수 없는 시선으로 노려 보는듯하는 모습"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그 그림속에서 고호는 자기도 모르게 절망과 도전이 뒤섞인 모습을 즐겨 그린 화가라 할수 있다
남아있는 편지가 700 여통이나 되는데 그내용이 절망과 도전이라는 의식이 섞인 자화상 같은 글이었다니 그는 좌절에 대한 증오로 가득찬 인물이 아니었을까?
귀를 자른 고호의 자화상...
전해 오는 말로는 고갱의 놀림에 격분 귀를 자르고 차별화된 자화상을 그렸다는 자화상 ...
과연 그는 평범한 우리네 생활속에 얻는 분노 같이 고갱을 증오하여 자기의 귀를 자르고 그 오기로 자화상을 그렸을까?
고갱의 비평과 고호의 증오 ...많은 호사가들은 그럴듯하게 일화를 만들어 냈지만 고호의 초상화를 보면서 과연 그럴까?하고 되물어 보기도 한다 .
그 일화에 따른 후일의 호사가들의 말의 진위 여부는 고호만이 알것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 시골뚜기 소년이 화가를 지망했던 소년이있었다.
그 소년 화가 지망생은 아름다운 비엔나 시내를 돌아 다니며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스케취하기에 열중하였다 .저녁이면 시내를 가로 지르는 다뉴브강가에 나가 어머니가 쥐어준 얼마 않되는 돈으로 연명하며 장래 유명한 화가가 될것을 꿈꾸는 소년이 있었으니 그 소년이야 말로 나중에 정치가로 변신하여 그 유명한 희대의 독재자가 된 아돌프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어린시절 화가가 꿈이었다
어느날 그가 스케취 대상으로 삼은것이 독일의 그 유명한 와이마르 헌법을 만든 독일 국회였다
당시 독일 국회는 어느 나라나 마찬 가지지만 정책을 가지고 갑론 을박하여 몹시 시끄러웠다 .원래 민주주의 헌법하의 국회는 시끄럽게 되어 있다
요사이 시각으로 보면 이러한 국회의 행태가 당연한것으로 받아 들여 지지만 당시 독일은 과도기에 있어 이러한 국회의원들간의 정책 싸움(?)은 소년화가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화가 지망생 히틀러는 국회 건물을 그리면서 독일 국회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시작 했고 국회 방청도 했다..
그는 후에 자기 저서에서 국회 의원들간의 싸움을 증오하는 말을 썼다
국회에 대한 증오심이 발동 된것이다.요사이와 같이 민주주의 정치란 토론과 타협이라는 시각과는 거리가 먼 싸움의 장소로만 잘못 보고 있었던 것이다.나중에 그가 정권을 잡은 후에 국회 방화 사건이라든가 국회 해산같은 행동을 한것은 이때의 증오심에서 발단 된것이라 보아도 무리는 아닐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미술학교에 들어가려던 그의 꿈을좌절 시키는 사건이 벌어지었다
입학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았었으나 "미술에 대한 재능 부족 입학 불허"라는 딱지를 붙여 낙방시키고 만 것이었다
미술학교 불합격 통보로 실의의 빠진 소년 히틀러는 그후에도 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그 이듬해도 시험을 치루려 하였으나 이번에는 응시 자격조차주지도 않았다
결국은 화가의 꿈을 접어버리었고 부랑자로 전락 싸구려 하숙집과 여이숙으로 전전하며 품팔이 노동자로 전락하고 만다, 때묻은 옷차림과 어려운 빈민들과 같이살면서 결국 인생에 대한 좌절과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된다 .이것이 그에게 세상을 비판하고 그의 마음에 증오의 씨앗을 뿌리게 된원인인이 된것이다.
그리하여 히틀러는 주위에 궁핍한 하층민들과 어울리면서 극단적 독일 민족주의와 반 유태인 의식을 품게 된다
그는 그후 군대에 입대 정훈병 근무하다가 독일 근로자당이라는 정치 집단을 조사하라는 명을 받고 조사 하다가 오히려 겨우16 명밖에 않되는 근로자당의 당원이 되어버린다
화가소년 지망생이 정치가로 변신한것이다
히틀러는 결국 나치스당을 창건하였고 인류를 파멸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독재자 히틀러로 변신하게 될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는 그의 독특한 웅변술로 1 차대전후에 독일에 패망에 따른 경제 위기와 사회불안을 교묘히 이용 민심을 선동 하기 시작했다
그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부인하고 제3 제국이라고 부르면서
기존 정치체제를 부정 했으며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평화를 지향하고 독일을 새로운 나라로 개혁 할것이라고 주장하다가 결국은 그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색이 들어나 벨사이유 조약을 파기하는 동시에 독일 재무장을 선언하고 전쟁준비로 모든 체제를 전환했다
그후 그는 인류 역사상 큰 비극을 가져올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의 말로는 동쪽에서 밀려오는 쏘련군과 서쪽에서 진격해오는 미군과 남서쪽을 진격해오는 영불군에게 밀려 1945년 5월 베르린 지하 벙커에서 자살로 끝났지만 그의 화가로의 꿈이 좌절 이후에 이루진 사회에 대한 증오는 인류에게 씻지 못할 악행으로 이어진것이었다
성경에도 보면 창세기에 문명이라는것은 그 자체가 타인에 대한 증오에서 인류의 역사가 시작한것으로 사건이 그려저 있다. .성경에는 카인과 아벨이라는 형제가 있었는데 어느날 카인의 증오로 아벨을 죽인다. 성경은 카인이라는 인간과 아벨 이라는 인간이 증오와 함께 인류의 문명이 시작한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지금은 많이 좋아 지었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한때는 어디를 가거나 안면이 없던 사람은 평소에 잘 알지 못하고 지냈었다는 때문에 이유없이 서로가 거부감과 적대감 까지 갖고 심지어는 증오심까지 발동하여 사회가 혼란스럽게 살아 온것은 속일수 없는 사실이었던 시절이있었다.
가까운 예로 얼마전 까지만 해도 관청에가서 무슨 일을 하려면 "잘 아는 직원"을 찾아야 빨리 서류가 돼 나왔고 병원에가도 "잘 아는 사람"이 있어야 남보다 먼저 진료를 받던 시절이있었다
지금이야 번호표가있으니 순서를 기다리면 되지만....
얘기가 다른곳으로 흘렀지만 비평 애기로 다시 돌아가자
비평이란 보통 인간의 행위나 또는 작품의 가치를 판정하는 일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를 받아 들이는 사람들의 태도가 문제가 아닐수 없다
비평을 받아 들이는자가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 사랑으로 열매를 맺는가 ?, 아니면 부정적으로 받아 들여 증오로서 파탄 지경으로 이르게 하는가는 받아 들이는자의 태도에 달려 있지 않을까?
앞에서 예를 든 고호나 아돌프 히틀러의 걸어온 생애를 살펴보면 좌절과 증오로 점철 되어 있는 사람들일수록 어떤이는 예술작품으로 어떤이는 정치분야로 분출되어 자신들이나 다른 모든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음을 간과 할수 없다
사회가 건전하게 육성 되려면 이러한 불행한 좌절과 증오가 없어지어야 할것은 자명한일이다 우리나라 대부분 사람들도 그동안 겪은 수많은 환란을 겪어 오는동안 수많은 좌절과 증오를 겪어왔다 .
과거는 과거로 돌려야 한다
우리의 잠재 의식에서 긍정적인 사랑으로 가득찬 의식만을 찾아내어 증오의의식을 바꾸어야한다
우리의 불행한 과거 때문에 증오로 가득한 투쟁의 역사를 앞으로도 계속 반복 한다면 사회는 점점 더 어두워질것이다 .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 들일것은 받아 들이고 사과 할것은 사과하고 또 용서할것은 용서해야한다
증오도 마찬가지다, 증오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는 정반대의 태도를 갖는것이 증오다 ,사랑은 화합을 시키지만 증오는 갈라 놓고 대립하고 나아가서는 공격적으로 만든다.
사랑은 상대를 높여 주지만 증오는 상대방을 가볍게 보고 비하시킨다 증오하는 사람의 생각은 악의(惡意) 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생각은 선의(善意) 이다.증오를 갖고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불만을 항상 남에게서 발견 하려 하고, 남을 비평하고 비난만 한다 .남들을 자기 마음에 맞게 변화 시키려고만 한다.그래도 말 안들으면 상대를 응징하여 자기와 똑같이 되게 만들려한다 이 두가지를 놓고 증오의 사람이 되어서는 않된다고 설명하면 모두들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우긴다 .자신을 모르고 있는것이다.
자신이 그런 사람 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면 자신이 비난 하던 사람을 자신과 닮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비교 해보면 잘 나타난다. 고호의 자화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