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하나.

by cima posted Jan 01,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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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을 살해한 여인의 재판

    불이 났을 때 이미 죽은 사람의 입에는 검은 재가 고이지 않지만,
    살아 있던 사람의 경우에는 입에 재가 고인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재판을 끌고 간 김삿갓의 지혜..


    회양 고을에 들른 김삿갓이 사또의 청에 의해 그곳에서 머물고 있는데
    어떤 사내가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내의 부인은 갑자기 집에 불이 나서 자기 남편이 분사(焚死)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댁 사람들의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
    못된 마누라가 남편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러
    마치 불에 타죽은 것처럼 위장했다고 주장했다.

    사또는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그래서 김삿갓에게 자문을 구했다.
    “ 선생,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김삿갓은 골똘히 생각하다가 사또에게 물었다.
    “지금 시체를 땅에 묻은 상태입니까?”
    “사내의 본가 사람들이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기 전에는
    매장 할 수 없다고 해서 아직 묻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의외로 간단히 이 사건을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것도 간단히 풀 수 있다고요?”
    “돼지 두 마리를 준비한 다음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그런 다음 김삿갓은 사또에게 방법을 일러주었다.
    “오, 그런 기막힌 방법이 있었군요.”
    사또는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이윽고 돼지 두 마리가 등장한 가운데 여인과 수많은 구경꾼들이 관가 마당에 모였다.
    사또가 동헌 마루에 앉아 여인을 향해 문초를 시작했다.
    “너는 남편을 죽인 다음 불에 태워 살인을 위장한 것이 분명한데
    아직도 실토를 하지 않으니 독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여인은 펄쩍 뛰며 반박했다.
    “사또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는데 살인죄로 몰아가시니
    억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사또는 그 말을 듣고 포졸들에게 명했다.
    “그렇다면 내가 증거를 댈 터이니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거라.
    여봐라, 아까 준비시킨 것을 그대로 행하라.”
    사또가 미리 준비시킨 것이란 돼지를 쇠철장에 넣은 다음
    불을 질러 태워 죽이는 일이었다.
    그런데 돼지 중에 한 마리는 숨을 끊어 죽인 다음에 태워 죽이고,
    다른 하나는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것이었다.
    두 마리 돼지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사또가 여인과 구경꾼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게 되면 입 안에 재가 가득 남게 된다.
    죽어가면서 숨을 거칠게 쉬면서 발악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불에 타도 입안이 깨끗하다.
    죽은 자는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저 돼지의 입을 벌려 이 사실을 증명해 보일 테니 잘 보거라.”

    마침내 두 마리 돼지가 모두 불에 타 죽게 되었다.
    사또의 명에 따라 돼지 입을 열어보니
    과연 살아 있었던 돼지의 입 안에는 시커먼 재가 가득했다.
    물론 이미 죽었던 돼지의 입 안은 깨끗했다.
    “잘 보았느냐? 이래도 네가 발칙하게 변명을 늘어놓을 테냐?”
    사또의 호령에 여인은 그제야 한마디 대꾸도 못한 채
    무너지듯 땅에 엎어져 울음을 터뜨렸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김삿갓 덕분에 해결한 이 사건을 통해
    사또는 명재판관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김삿갓의 지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