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시저..

by panicys posted Jan 01,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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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의 영웅이었던 카이사르 (시저 BC 100 ~ BC 44) 의 일생을 소개한다.

    30세가 될때까지 백수생활을 했던 카이사르는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엄청난 바람둥이었지만 자식하나 만들지
    않았던 천재 ?, 남의 빚을 지고도 유유자적하게 되는대로 살았던 그 였다.
    자신의 시대를 기다리는 동한 정적의 화살을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설도
    있다. 어쨋든~

    그리스와 터어키 지방을 점령하고 통상을 방해하던 그 지역의 해적을
    소탕하였던 나이 든 영웅 폼페이우스와, 거부였던 크라수스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1차 삼두정치) 로마의 정치를 맡겨 놓고, 카이사르는 갈리아
    (지금의 프랑스)를 시작으로 세계정복에 나선다.

    갈리아를 평정하고 지금의 영국남부지방 스페인 등등을 지배하게 된다.
    위 지도에서 분홍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카이사르가 정복한 지역으로 로마
    최대전성기의 대부분의 영토가 이때 만들어 졌다.

    그러나 한 천재가 나타나 두각을 보이게 되면 반드시 질시와 반발이
    반드시 있게 마련..






    삼두의 1인인 노인 폼페이우스를 중심으로 한 일파들이 카이사르를 제거
    하기로 하고 별 시덥지 않은 이유를 들어 카이사르를 소환하게 된다.

    이를 모를리 없는 카이사르는 군대를 거느린채 루비콘 강을 건너고 로마로
    진격하게 된다. 이유를 불문하고 누구든 루비콘 강 남쪽으로 군대를 넘게
    하면 반란죄로 사형에 처해지게 되어 있었다. 유명한 말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한편 삼두의 다른 1인인 거부 크라수스는 터어키 원정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좀 마른 큰키에 대머리였던 카이사르. 참모들과 전선 시찰중..



당황한 폼페이우스 일패들은 그들의 지역이었던 그리스에서 한판 붙기로
하고 바다를 건넜고 카이사르는 그 뒤를 쫓게 되었다. 아무리 병사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하여도 카이사르의 천재성을 이길수 없었던지 그리스
땅 파르팔로스에서 카이사르는 승리하였고 폼페이우스는 그의편이라고
믿었던 이집트로 배를 타고 바다건너 도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운은 승리자의 것, 이집트 앞바다에서 마중나온 이집트 왕자의
배로 바꿔탄 폼페이우스는 그 자리에서 살해 당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카이사르는 아무리 적이었지만 로마시민을 죽였다는
이유로 이집트왕자를 추궁하게 되고 이때 권력 변방에 있었던 왕자의
누나인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게 된다.




카이사르 흉상과 클레오파트라.. 그 당시 미인의 기준이 달랐었나 부다.



    카펫에 자신을 둘둘말아 숨기고 왕궁에 잠입한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
    에게 접근하여 유혹하게 되었고 왕자 일파들은 제거되어 여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평생 전쟁으로 지샜던 카이사르는 두달간 나일강 상류를 따라 오르내리며
    화려한 휴식을 취한다. 이때 카이사르의 유일한 혈육인 아들이 만들어져
    그 후 태어나게 된다.

    카이사르는 53세 우리들 나이였고 클레오파트라는 꽃다운 나이인 21세였다.
    카이사르는 한 여자와 결혼생활을 유지해왔으나 왠일인지 애가 없었다.

    로마로 돌아와 전권을 잡은 카이사르는 카이사르의 독주에 불만을 품은
    브루투스를 비롯한 일파들에게 공개된 회랑에서 살해된다.
    유명한 말 '브루투스 너 마져도'.

    그러나 민심은 카이사르에게 있었고 자연히 카이사르의 심복이었던
    안토니우스가 추대되어 전권을 잡게 된다. 이때 클레오파트라는 아들과
    함께 로마에서 살고 있었다.




카이사르 포럼은 로마 제국의 최초의 포럼 건물로 카이사르가 기원전
48년 폼페이우스와의 전투에 출정하기에 앞서 뒤에 있는 비너스
제네트릭스 신전에 향배한 것을 기념으로 지어졌다.



    곧이어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발표되었다.

    모든 재산과 권력은 자신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에게 준다는 내용
    이었다. 안토니우스는 물론,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얻은 유일한 아들에
    대한 내용은 뜻밖에도 전혀 없었다. 이렇게 되어 겨우 18세 였던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의 인기를 등에 업고 정치에 등장하게 되었다.

    사람의 능력은 태어나는 것, 그리고 사람의 인생은 거의 정해져 있기
    마련.. 카이사르는 남의 아들을 양아들로 삼고 18세 소년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자신의 평생 심복과 유일한 아들을 제쳐 놓고 ~
    카이사르는 옥타비아누스의 천재성을 이미 알아본 것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위 표에서 보듯이..

    옥타비아누스는 이집트로 피신한 안토니우스를 죽이고, 후에 아우구스투스
    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불리우는 로마의 현명한 황제가 된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역사적이기 보다는 한 개인의 인생에 맞추어 다시
    쓰게 되었다. 우린 이미 어느덧 인생을 뒤돌아 볼 나이이고 남의 인생에
    관심을 가질 나이인가 보다.





    in the Winter - Janis 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