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 위에서

by 우면산 posted Jan 01, 197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외줄 위에서 / 복효근


    허공이다
    밤에서 밤으로 이어진 외줄 위에 내가 있다
    두 겹 세 겹 탈바가지를 둘러쓰고
    새처럼 두 팔을 벌려보지만
    함부로 비상을 꿈꾸지 않는다
    이 외줄 위에선
    비상은 추락과 다르지 않다
    휘청이며 짚어가는 세상
    늘 균형이 문제였다
    사랑하기보다 돌아서기가 더 어려웠다
    돌아선다는 것,
    내가 네게서, 내가 내게서 돌아설 때
    아니다, 돌아선 다음이 더 어려웠다
    돌아선 다음은 뒤돌아보지 말기 그리움이 늘 나를 실족케 했거늘
    그렇다고 너무 멀리 보아서도 안 되리라
    줄 밖은 허공이니 의지할 것도 줄밖엔 없다
    외줄 위에선 희망도 때론 독이 된다
    오늘도 나는
    아슬한 대목마다 노랫가락을 뽑으며
    부채를 펼쳐들지만 그것은 위장을 위한 소품이다
    추락할 듯한 몸짓도 보이기에는 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외길에서는
    무엇보다 해찰이 가장 무서워서
    나는 나의 객관 혹은 관객이어야 한다


    음악 : Una furtiva lagrima-Giovanni Marr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