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던 둘째가 소프트 렌즈로 바꾸고 6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 렌즈가 찢어져 더 이상 쓸 수가 없다고 하여 아이를 데리고 안경점에 들렀다.
그 곳에서 안경사는 흔히 소프트렌즈의 수명이 6개월에서 1년 정도라 하며 통상 6개월쯤에 1번씩 바꿔주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안경사는 소프트렌즈와 하드렌즈의 차이점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특히 자라는 아이들의 눈에는 하드렌즈가 합당하다며 그것을 권하는 것이었다.
나는 안경사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아이는 하드렌즈가 눈에 맞지 않아 중도에 다시 소프트렌즈로 바꾼 친구들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굳이 소프트렌즈를 주장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걱정이 되었다. 아이의 눈이 하드렌즈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눈에 맞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안경사는 그럴 때에는 소프트렌즈로 바꾸어 드릴 테니 염려 놓으라 말했다.
어미는 소프트렌즈 가격의 3배가 넘는 하드렌즈를 맞추어 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맞춰준 하드렌즈가 아이의 눈에 맞지 않았다. 늘 눈이 충혈이 되었다. 아이는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보인다고 했다. 안경사에게 문의하니 렌즈를 청결히 못해서 그렇다고 했다. 다시 적응을 시키려 청결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어느 날 책상 서랍에 들어 있는 렌즈를 발견했다. 조금 참으면 눈에 좋다는데 그걸 못 견디느냐고 엄마에게 꾸중을 듣는 것이 두려워 아예 렌즈를 착용하지 않는 아이를 보고 함께 안경점에 들렀다.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소프트렌즈로 교환하고 싶다고 말하자 같은 가격의 소프트 렌즈로 주문제작을 해 주겠다고 말한다.
나는 갑자기 가격이 같아진 소프트 렌즈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말을 풀어 나가는 안경사에 불신감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소프트 렌즈의 가격이 하드와 달랐던 것을 환기시켰다.
안경사는 하드렌즈 자체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교환이 안 된다고 했다. 안경사의 태도는 처음과 많이 달랐다. 렌즈에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님은 그도 알고 나도 아는 일이다. 처음에 맺은 약속과 다른 말은 그렇다 치고 표정까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 민망했다.
나는 렌즈에 문제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며 안경사를 전적으로 신뢰했었다.
그러나 아이가 렌즈를 소화하지 못하니 처음의 약속을 믿고 말했던 것이다. 아이의 눈에 맞지 않아 사용을 할 수가 없어 그 부분을 호소하는데 아이의 불편에 대해 들으려는 마음은 없고 렌즈 자체에 문제가 없으니 안과에 가서 확인하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나는 금액에 상당하는 안경으로 교환하거나 소프트 렌즈를 구입한 뒤 차액 부분을 환불받으리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풀어 나간 것이다. 그러나 안경사의 어이없는 말에 아예 전액 환불을 요구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런 자세로 나오는 안경사의 렌즈를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안경사는 점입가경으로 이번에는 법으로 하란다.
나는 황당했다. 무슨 법?
내가 법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의 상식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법은 그가 빌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와 나는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그토록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던 사람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변화한 그가 놀라웠다.
흡사 커다란 철벽을 마주한 듯 가슴이 꽉 막혀 오는 것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안경점을 찾았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이켜 다시 시작했다.
일단 대표를 찾았더니 자기가 사장이란다. 세 명이 공동 투자를 했으며 자기도 그 중의 한사람이라고 묻지 않은 말까지 한다. 처음부터 나와 우리 아이를 면담했던 사람이다. 상담과정에서부터 결정을 하고 교환을 위해 이곳에 올 때까지도 우리가 상대를 신뢰했던 마음을 말하니 어느 정도 마음을 열어온다.
렌즈의 차액에 대해 비록 말이나 글로 확인한 적은 없지만 누구나 그렇게 아는 상황이 있지 않겠는가를 말했다. 암묵적인 동의로 우리 서로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알맞은 가격의 소프트 렌즈를 구입하고 나머지는 환불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를 보았다.
하드보다는 소프트의 승리라고나 할까?
그러나 어미는 아이에게 어른들의 감추어졌던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안경사든 어미든 아이의 시력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 사안일진대 안경사는 처음과 다른 말을 하였고 어미는 금액에 민감하게 접근하였다. 아이가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하지 않았다 해서 그것을 보지 못했을 것인가.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