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블로그

2004.12.06 00:00

14회 박연우님이~

조회 수 446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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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5일 박코프가 문학 계간지 "날개문학" 겨울호에 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추억"으로 신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멋진 친구를 축하해 주세요.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만큼이나 살아가는 당대에 생활 그 자체가

거의 송두리채 변화를 맞은 세대도 매우 드물 듯 하다.





우리가 태어났던 1940년대는 제쳐 두더라도 기억의 편린이나마 남아 있는

50년대 무렵의 생활과 현재의 생활에서 사라져 버리거나 바뀐 것을 스쳐가는 생각대로 적어 본다.





의식주 중에서도 먹는 것이 으뜸이라고 하는 데

그래도 먹거리 중에서는 새로이 생겨 난 것이 많이 늘었을 뿐 사라진 것은 찾아 보기가 힘들다.





그만큼 옛 것에 더하여 먹거리는 다양해 졌다는 말인데, 궂이 사라진 것을 들자면


피란시절 시골에서 학교 다니던 길에 "먹는 흙"이라는 쫀득거리는 맛의 빨간 진흙을


도로 절개면에서 찾아 꼬마들의 그 쇠꼬챙이 같은 손으로 후벼 파 먹던 기억이 남아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악재 고개 어디 쯤인가 길 옆 낭떠러지에 허름한 토굴이 하나 있었고


그토굴 문짝에 서투른 글씨로 "산골 판매"란 간판이 붙어 있었는데


그 먹는 흙이란 것이 지금은 약으로라도 먹지 않는 산골이었을 것으로 어림한다.





먹거리야 사라진 것이 드물다 하더라도


음식을 조리하는 부엌 살림살이는 완전히 판이 바뀌어 버렸으니


현대 주거 생활에서 부엌은 식당 겸 주방이라는 유식한 호칭을 얻었으며


그시절 부엌의 터줏대감이었던 부뚜막은 그 단어 자체가 사전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낱말이 되어 버렸다.





"부뚜막의 소금도 입에 넣어야 짜다."는 속담은


"싱크대 위의 라면 스프도 털어 넣어야 맛을 안다."로 바뀔 판이다.





부뚜막이 없어 졌으니 아궁이도 없어 졌고


아궁이 앞에서 청솔 가지를 꺾어 넣으며 매운 연기에 눈물 콧물 짜면서


며느리 동서 간에 주고 받던 정담은 테레비젼 시대극에서나 보암즉 하다.







시커먼 무쇠 가마 솥,풍로,풍로에 숯 불 피울 때 바람 불어 넣는 풍구,놋 주발,


부엌 한 귀퉁이에 자리 잡았던 커다란 물 항아리, 그 항아리에 으례 떠 있던 깨진 바가지,


함석으로 만든 양동이...





요즘은 냉장고가 바로 저장고 구실을 하지만


뒤꼍에 자리잡은 장독대는 우리고유의 먹거리를 갈무리 하는 장소였다.





간장,된장,고추장 항아리는 중간 크기,동치미 항아리가 가장 컸고


김장 김치는 그늘 진 땅에 묻었으며 여름 철 겉저리는 작은 항아리.





겨울 아침에 눈을 뜨면 밤 사이 내린 하얀 눈이 장독대 항아리 뚜껑마다


소복이 쌓인 광경은 바라보기에 참 좋았었다.





그런 겨울 날 밤,따뜻한 아랫 목에서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이런 옛날 이야기를 해 주셨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옹기 장수가 하나 살았는데 옹기를 팔러 다니던 어느 날,



간장 종지를 하나 팔고 그 값으로 달걀 한 알을 받았더란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지게를 받쳐 놓고 다리 쉬임을 하면서 달걀을 까 먹을까 하다가


슬그머니 공상에 빠져 들었단다.





이 달걀을 이웃 집 암탉에게 맡겨 병아리를 깨우고 그 병아리를 키워서 또 병아리를 까고...


그래서 닭이 스므 마리 쯤 되면 그걸 팔아서 돼지를 산다.



그 돼지가 새기를 쳐서 늘어나면 암소를 한마리 사야지.



암소가 송아지를 치고 숫자가 늘면 그걸 팔아 논을 몇 마지기 사고...



그리하여 마침내 부자가 되면...





지금 사는 마누라는 늙어 빠진 게 바가지만 긁어 대니 예쁜 첩을 하나 얻으리라.



아니 하나만으로는 성에 차지 안으니 두엇쯤 얻어 볼까나?



그러면 시앗들끼리 서로 시새움 하면서 싸움 질을 할 것인 즉 그때 나는 한껏 목청을 돋우어


이렇게 호통을 칠 것이다.





'에잇,요뇬들 가장 앞에서 무슨 싸움질이냐!어서 그만 두지 못 할까!'



하면서 요렇게 작대기를 휘두를 테다. 하면서 지게 받침을 확 뽑는 순간,



지게가 엎어 지면서 그의 전 재산인 옹기들이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나 버렸지"





지금 들으면 매우 불건전한 동화로 들리겠지만 그것도 들어서 삭이기 나름이다.



우리 형제들은 허황된 생각을 버리고 착실하게 살아라 하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먹는 얘기는 이쯤 해두고 입는 옷가지들을 살펴본다.





나의 상식 수준으로는 무명과 광목의 차이를 뚜렷이 구분하지 못 하겠는데 우리 자랄 때 옷감은


거의 모두가 이것들로 구성되지 않았었나 한다.





가장 밑에 입는 사리마다(나는 이것의 마땅한 한글 이름을 모른다.)에서부터


외출복 교복을 겸하는 검정 옷,집에서 놀며 딩굴며 막 입는옷,


심지어 이불 홑청에 이르기 까지 메리야스를 제외하면


그 두께와 모양만 틀리고 껴입는 가짓수가 적고 많을 뿐 감은 무명,광목이었다.





하기는 메리야스도 무명(면화)에서 뽑아 낸 것이니


목화가 없었다면 어떻게 우리 몸을 온전히 보온하며 살 수 있었을까?





조금 지난 후에는 나이롱이란 천이 나와서 대단한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말이다.





나에게는 한가지 예외적인 추억이 있다.





피란 시절 한때 어린애들 옷으로 까만 반바지 옆구리에 흰 줄 두개를 덧 댄


운동복이 유행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구해 입히지 못 하셨던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셨다.





그당시 기름에 절인 군용 마대 자루(토치카 구축용)가 아주 흔하게 굴러 다녔었는데


아무리 물자가 귀했던 시절이라고 해도 그 독한 냄새와 만지기만 하면 들어 붙는 기름끼 때문에


살림에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두 분은 이것을 양잿물(그나마 흔하기나 했나?)에 삶고 빨기를 여러차례,


마침내 범벅이 된 기름끼를 모두 우려내고 그 천으로 나의 운동복을 만들어 입히셨던 것이다.





그당시 그렇게 질긴 천으로 옷을 해 입은 아이는 나 하나 밖에 없었고


꽤나 으스댔던 기억도 있으니 지금 생각하면 두 분 여인네의 눈물 겹도록 진한 사랑이 없었다면


누릴 수 없었던 크나 큰 호사였던 것이다.





무명 옷은 빨고 말리고 풀 먹여서 다림질 하고 잘 개어서 마무리 하는 과정이


옷에 따라 다르고 천의 두께나 옷의 부위에 따라 여러가지여서


그것을 다루는 도구도 무척 다양하다.





빨래 할 때 빨래 방망이,빨래 터에는 으례 넓적한 빨래 돌이 물가에 자리 잡고 있었고,



다듬이 돌과 다듬이 방망이,홍두께,윗 손잡이 달린 다리미,


넓은 천을 다리는 쟁반 처럼 생긴 숯 불 다리미,


저고리 동정 다리는 인두,또 그 숯 불을 피우고 인두를 달구기 위한 풍로 화로...





겨울 철에 햇볕 잘 드는 마루에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마주 앉아서 박자를 맞추어 가며


다듬이 방망이를 두드리던 모습이나 한 여름에 고부간에 이불 홑청을 맞 잡아 당기면서


입에 머금은 물을 뿜어 대고 다리미 질을 할 때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은


아직 내 기억에 정겨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미련한 장사 꾼이 있었는데 바로 다듬이 돌 장사다.





다듬이 돌 서너개를 지게에 지고 "다듬이 돌 사려!"를 외치고 온 동네를 다녔으니


무겁기는 얼마나 무거웠겠으며 다듬이 돌이 쉽게 깨지거나 닳아 없어 질 물건이 아니니


며칠에 한개나 팔았을꼬?





맷 돌까지 함께 지고 다녔는지는 기억에 아리송하다.





그에 비하면





"냄비 구멍 때우쇼!양동이 땜 때우쇼!"를 외치고 다니던 땜질 장수 아저씨의


사업성이 훨씬 좋았겠으나 그의 말년이 납 중독으로 고생이나 안 했는지 사뭇 걱정스럽다.





먹는 것 입는 것 얘기를 했으니 사는 집 얘기를 해야겠지만 하도 바뀐 것이 많아


얘기 꺼내기가 무서워서 그만 두겠다.





다만 한가지, 주거 생활에 있어서 아주 없어진 것 중 구들장이 있는 데



요즘 젊은 애들 그 낱 말 뜻이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혹시 구들장이라 하면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 구워 먹는 후라이 판 쯤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지.





언젠가 마당에 웃자란 나무를 쳐내려고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 녀석에게


도끼를 가져 오라고 일렀더니 이녀석 되 묻기를





"아빠, 도끼가 어떻게 생겼는 데?" 하는 것이 아닌가?





하기는 이녀석 태어날 당시가 구공탄 시절이었고 기름 보일러 시대를 지나


지금은 가스나 전기 보일러로 발전 하였으니 장작 패는 걸 볼 수가 없었고


그러니 도끼 구경을 한 적이 있을리 없다.





그러나 모두 다 부질 없는 얘기일 뿐이다.





뇌리에 남아 있는 추억이 아무리 정다운 것이라 해도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고


새로운 문물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발달해 가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마다할 힘도 없으려니와 그럴 상황도 아니다.





길러 주신 어머니 할머니의 사랑은 가슴에 사무치지만



지금 이시대에 그 분네들처럼 우리 손자에게 기름 먹인 마대 자루를 빨아 옷을 해 입힐


며느리나 딸도 없을 뿐더러 그런 옷을 입고 있을 손자는 상상하기 싫다.




  • 윤준근 2004.12.06 00:00
    축하 드립니다.
    우리들에게 힘을 주십니다.
    언제라도 늦지 않는다는것을 보여주셔서 감사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우리 세대가 겪지못한 추억담과 글솜씨에 새삼 감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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