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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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1951년 사이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고 한다.

그때 내 나이 9살로 한창 자라고 모든 것이 새롭고 배울 때지만

학교는 전쟁이라 다닐 수 없고 집에서 작은고모님이 글 읽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 당시 나 자신이 신통하게 여긴 것은 아라비아 숫자 특히 한자로 99까지 쓰고 百을 쓴 다음 얼마든지

계속해서 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참 신기하고 배움이 주는 즐거움을 느꼈다.

 

10월 중순경에 신문팔이 노릇 하느라 성북동 골목을 뛰어다녔고 친구들과 성북천에서 썰매를 신나게

타고나면 추위는 느끼지 못하고 얼굴에서 무럭무럭 김이 오르기도 했다.

 

밤이면 추위는 그야말로 맹위를 떨쳐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유단뽀(일본말. 타원형 양철로 된 것)의 더운물을

이리저리 이불 안을  굴리다 보면 낯에 논 것이 피곤한지 어느새 잠이 든다.

 

밤에 잠을 깨는 것은 포성도 있을 때가 있었지만, 어머님이 떠놓은 양재기의 자릿기가 얼은 다음

더 이상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듯 짝짝 소리 내며 갈라지는 소리 때문이었다.

 

1950년 12월 말인지 1951년 1월 초인지 우리를 유난히 챙겨주고 보살펴주던 파출소소장이 전선이 이상하다며

남쪽으로 피난 가기를 종용한다.

납북되신 남편이 찾아 올 곳은 이곳이고 병환 드신 시어머니, 3 살된 어린애까지 있으니 갈 수 없다니

"사모님 죄송합니다. 못 모시고 가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무사하실 겁니다. 편안하세요"하며 돌아서든

인자하신 파출소장이 지금도 고맙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때가 바로 1.4 후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당시 상황으로 1월7, 8일?) 국군, 미군이 서울을 떠나고 다시 인민군이 들어 왔지만

사상이 없는 나이 어린 우린 그런가 보다 하고 여느 때처럼 삼선교와 성북동 첫 번째 다리 중간지점 어름이 넓게

언 곳에서 십 여명이 썰매 치기를 하고 있었다.

 

한 녀석이 위를 가르치며 "야~ 양키 봐라. 잡혀간다."

내가 보기에도 스물 살 안팎의 양키가 뒤로 손이 묶여 앞에서 걷고 뒤로 인민군 3명이 따콩총을 들고 걸어간다.

따콩총은 어린 우리에겐 신비스런 총이었다.

총을 쏠 땐 "땃" 소리가 나고 총알이 목표에 도달한 순간엔 "콩"소리가 나기에 따콩총이라 했다.

어쩌다 따콩총을 들고 있는 인민군을 보면 따콩소리를  듣고 싶어 우린 한번 쏴보라고 조르기도 했다.

 

썰매를 타던 우리 모두 행동을 멈추고 끌려가는 미군을 쳐다보았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은 하하 웃으며 "양키~양키"하며 조롱조로 웃으며 손가락질도 한다.

미군과 같은 또래의 인민군은 우리에게 웃음을 보낸다.

 

난 맹세하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저 불쌍한 기분이 들었다.

미군이 우릴 쳐다본다. 아니 나만 쳐다본다. 그렇게 느꼈다.

폭파인 개천 아래 자신도 미국에서 어린 시절 이렇게 보낼을 철없은 아이들을 처다본다. 실제 거리는 7-8 메타 정도.

그런데 그와 나의 거리는 2-3 메타 정도를 가깝게 느껴지고 그의 파란 눈동자의 눈빛은 나를 본다.

 

무슨 말을 나에게 하는것 같다. 그의 그 때 심정이 눈빛에 담겨 있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무엇을 나에게 말을 할려고 했을까?  내 비롯 당시 9 살이지만 인간으로서 그 무엇을 느꼈다.

썰매에 앉아 얼어붙었다.

아이들은 하하 웃으며 좋아라한다. 양키~ 양키~하는 소리도 여전히 들린다.

 

그들은 성북동 위쪽으로 사라졌다.

다시 우리들은 썰매을 이리저리 치고 다니며 놀고 있었다.

 

땃소리가 숲 속에서 나더니 콩하고 메아리가 들린다.

아~~  파란 눈빛이 떠오른다. 나에게 무슨 말을 할려든 그 눈빛

 

얼마 후 인민군 3명이 걸어 내려온다. 파란 눈을 가진 젊은 미군 없이...

 

며칠 후 나이 든 친구가 말해준다.

삼선교에서 혜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오른쪽에 새로 지운 조선집에 미군들이 자고 갔는데

너무 피곤하여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미군 한 명이 잡힌것이라고...

 

난 그 후 파란 눈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잊고 싶은 그 눈빛이 참전 용사 뭐 이런 말만 들으며 떠오른다.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눈빛이다.

그 눈빛은 한국을 지키고 발전케한 원동력이다.

 

2013년 San Francisco 시내 안에 있는 Presidio  국립공원 안에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세우기 위한 기금모금에

참여하고자 준비위원회 부회장인 John Stevens 예비역 해병 중령 사무실을 찾았다.

 

John Stevens.jpg

 

 

 

 

 

John Stevens은 장진호 전투 때 동상으로 왼쪽 발가락이 몇 개를 잃으신  분이시고 자기 연금을 몇 년간

참전비 건립에 기부한 금액이 $86,000 이상이고 94세인데도 모든 준비, 실행을 직접 하신 분이다.

 

이 분이 "왜 기부금을 내는 특별한 동기가 있는가?"하고 묻는다.

"한국인이며 무슨 동기가 있겠는가? 당연히 참가해야죠"하니 웃는다.

 

하지만 나에겐 잊지 못할 눈빛이 있다며 위 얘기를 했다.

말하는 동안 양키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때 옆에 있던 비서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본다.

"지금 너 누구 앞에서 양키라고 하느냐? 그 말이 얼마나 미국사람들에게 치욕적인데"하는 눈빛이다.

Mr.Stevens는 .웃으며 계속하라는 표정을 짓는다.

"우리 어린아이들은 당시 어른들이 부르는 말 그대로 양키라 했지요." 사실 당시 미군을 가르키는 고유명사였다.

 

숲 속에서 따콩 소리가 났다는 말을 할 때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65년이 흐른 그 시각에 겁에 질린 그 얼굴과 눈빛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Mr. Stevens도 알지도 못한 아니 알고 있었던 병사인지도 모른 부하의 최후를 듣는 순간 눈물과 아픔을

참고 있음이 역력했다.

 

잠시 침묵이 흘렸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책을 집어서 내게 준다.

"내가 얼마 전에 받아 아끼는 책인데 선물로 주고 싶다. 난 다시 신청하면 된다"

6.25동란 60주년을 맞아 한국국가보훈처에서 발행한 "KOREA REBORN A GRATEFUL NATION"이다.

동란의 참상 고생하는 미군의 모습, 전후 발전한 현재의 한국의 모습을 담아 한국전 참전 용사에게

무료로 배분한 책이다.

 

korean war memorial.jpg

 

 

 

 

2016년 8월1일 참전비 개막식에 참석하여 Mr. John Stevens의 파란 눈빛을 보며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했다.

 

                                                           2016년 8월 19일          -홍 경 삼-

2466944357A03ED90A.jpg

 

   *Mr. Stevens은 2019년 100세를 일주일 앞 두고 영민하셨다.

    국립공원이 된 San Francisco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Presidio 한국전 참전 기념비 장소에는

    우리내외 이름이 벽돌에 새겨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고 사대부고 후배 20회 姜信學(Steve Kahng)은

    $100,000이란 거금을 쾌척했다.

 

************************************************************************

 

이 글을 읽어 본 대학친구 김승웅이 다음과 같은 짤막한 글을 보내왔다.

 

* 경삼아, 캄캄한 이 꼭두 새벽,

                       너 날 이리 울려도 되는 건가!  

 

                       네 글 속의 양키 눈빛을 떠올리며  세 번 운다.

 

                       울고나니 양키의 그것보다 더 어필해 오는 게 있다.

 

                       북구(北歐)의 어느 왕자 닮았던 네 눈빛 말이다.

 

                       오십 수년전 입학 첫날, 동숭동 빨강 벽돌 강의실 옆에서 널 처음 봤을 때

 

                       내게 큼지막하게 다가서던, 너의 착하디착해 슬프기까지 하던 눈매 말이다.

 

 

                       맞다, 맞고말고! 그런 눈매 지녔던 네게서 이처럼 아름답고, 

 

                아름답다 못해 슬프기 그지없는 이야기가  아니 나올 수 없지!                        

 

                       승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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