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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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8 09:33

전복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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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죽

죽은 옛날 가난한 집에서 밥해 먹기엔 벅차서 쌀을 물에 불려서 양을 많게 하여
허기를 채우는 밥을 대신한 주식이었다.
비롯 자기네 식구들 먹기에도 부족하지만 끼니때 놀러 오는 손님이 있으면 물을
조금 더 넣어 양을 불러 함께 먹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우리들의 조상이었다.


다른 면에서의 죽은 아픈 사람 즉 소화하기 힘든 사람, 영양을 보충하기 위하여
잣, 전복, 콩나물 등을 넣어 끓인 죽을 먹이곤 했다.


15년 전쯤 집사람이 몸살이 나서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무얼 먹이고 싶지만, 도무지 입맛이 없고 먹을 수가 없단다.
보기에 딱하지만 어찌할 수가 없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만 억지로 먹고...


삼일째 되던 날인가? 허기를 느낀다면 죽을 쑤어 달란다.
옳거니 이제 살아나는구나 하며 쌀을 씻어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인다.
너무 불이 셌는지 막 넘친다. 그리곤 죽이 아니고 밥처럼 되는 것 같아 다시 물을 더 넣었다.
또 물이 넘치고 밥처럼 되게 되어간다. 쌀은 아직 딱딱하고, 다시 물을 넣는다.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을 때 쓰는 말, 그야말로 죽을 쑤었다.
더는 물을 넣을 공간도 없이 냄비에 꽉 찼다.


작은 공기에 죽인지 밥인지를 가지고 침대로 가서 "여보 일어나 이것 먹고 기운차려~"
내가 죽을 쑤었기에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권해본다.
힘들게 일어나 색깔은 같지만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그래도 남편이
난생 처음 만든 죽이라서 그런지 한 숟갈 입에 넣고는 못 먹겠다며 밀어 놓고는 눈물을 흘린다.
아마 자기 어머니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람은 아프고 힘들 때 자기를 보살펴 주시던 어머니가 떠 오른다.
슬쩍 나와 뒷마당에서 정원 일을 하며 마음을 추스른다.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들어와 보니 죽도 아닌 것이 1/3 정도 없어졌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인지 죽 쑨 남편의 마음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다.


서울 갔을 때 내아내를 동생 처럼 아껴주는 이희숙, 홍경자동문에게 죽 쑨 얘기를 하니
어떻게 죽을 맛있게 쑤는가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집사람이 아플 때 가르쳐 준 대로 하니 정말 맛있는 죽이 아픈 사람에게 원기를 불어넣어 준다.
배아 쌀은 먼저 볶고 잣을 넣어 잣죽도 만들고 전복(작은 칠레 자연산)죽도 만드는데 이젠 요령이 생겨
참기름, 깨소금도 넣어 맛도 그럴듯하게 된다.


2주 전엔 작은 며늘아기가 몸살 기운으로 결근을 했다기에 전복죽을 쑤어서 가져다주었다.
옛날 어떤 시아버지는 며늘아기 설거지를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항상 물을 말아 드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내외도 되도록이면 두 며늘아기 마음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내 아들을 사랑해주고 귀여운 손주를 낳아 준 며늘아기라 우리는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또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도 예뻐서 늘 고맙고 귀엽기만 하다.


집사람은 "당신 참 좋은 시아버지이십니다. 죽 쑤어 주는 시아버지가 어디에 있을까?"
어제 기계체조 연습도 못 간 손녀가 오늘은 약간 열이 있다며 학교도 못가고
우리 집으로 아침부터 왔다. 복통이 와서 잘 먹지를 못한다.
오른 손 가운데 셋째손가락를 따 주었더니 신기하게 복통도 멈추고 배가 고프다기에
전복죽을 만드니 오늘은 "당신 참 좋은 할아버지예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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