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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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 唱 婦 隨

--2021년 2월 19일 여행을 떠나며

                                                                                                               18회 용 선 식

 

손녀 유치원 봄방학 기간에 콧바람 좀 쏘이고 오마고 가족들한테 미리 공언하고 차표와 숙소를 예약했다.

남은 일은 대니와 툭탁거리지 않고 즐겁게 잘 다녀오는 일이다.

속초행 버스에 몸을 싣고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들을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다가 생각에 잠긴다.

어느 날 포로가 된 아서 왕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줄 테니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오라며 이웃나라 왕은 말했다.

"여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녀에게서 정답을 알아낸 아서 왕은 답을 말하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것은 곧,"자신의 삶을 자신이 주도하는 것, 곧 자신의 일에 대한 결정을 남의 간섭 없이 자신이 내리는 것

(what women really want is to be in charge of her own life)”

 

그러나 어디 여자들만 그런가?

사물을 인지하기 시작한 두세 살짜리 어린 아이들도

“시여” “안 머거”부터 쓰지 않는가.

하물며 평생을 같이 사는 부부는 어떻겠는가.

각자 소신껏  자기주장을 펴다 보면 '생각 쌍둥이'가 아니고서는 충돌이 없을 수 없다.

주도적인 남편 옆에서 아내는 툴툴거리기가 일쑤다.

운전대를 잡으면 추월하기, 끼어들기, 앞차에 코 박고 가기 등을 묘기 대행진하듯 하는 모양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참, 운전매너가 꽝이군! '하며 콧방귀를 뀐다.

아내는 쓰지도 않는 물건을 어디에 잘 모셔놓고는,

“그거 어디다 치웠어?”한다. 찾는 데 젬병인 남편인 줄 뻔히 아는지라 잠시 뒤적거려 코앞에 디민다.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면 가문에 먹칠이라도 하는 양 생각되는지 절대로 사과하는 법 없이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다툼을 유발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이야기하자면  책 한 권도 모자라지.

 

그런데 어느 날, 팔십이 눈앞에 다가온 영감을 바라보다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Amour)'가 떠올랐다.

80대 노부부가 아침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다가 그 일이 벌어진다.

남편 조르주가 말을 걸어도 최면술에라도 걸린 양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아내 안느-- 노부부의 평온한 일상이 깨지는 순간이다.

음대교수까지 지낸 우아하고 품위 있던 아내는 온 데 간 데 없고 마비 증세와 치매에 언어장애까지 온 노파는 부부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만다.

영화를 본 지 10년 가까이 됐건만 그때 충격이 컸던지 아직도 잔상이 보인다.

내게도 70후반에 치매가 와서 사람을 몰라보게 된 시아버지가 계셨으니--

이렇게 하고한 날 티격태격하고 살다가, 어느 날 영감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댁은 뉘시우?" 하며 묻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신이 버쩍 났다.

그러니 이번 여행 중에는 마음을 다져먹고 마찰 없이 잘 지내보리라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려면 '내 주장(고집)'을 내려놓고

"You are the boss!"라고 말해야 한다.

'맘 먹으면' 글쎄, 그리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서울을 떠난 지 세 시간 가까이 됐을 때 버스는 미시령을 넘었다.

한화콘도 앞에서 우리를 내려놓고 차는 다시 떠났다.

예상치 못했던 세찬 바람이 마중을 나왔다. 갑자기 등 뒤에서 누가 미는 것같이 발이 저절로 앞으로 내디뎌지며 몸이 균형을 잃는다.

학사평 벌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어느 순간 모자가 훌러덩 벗겨지더니 저 혼자 풀떡풀떡 춤을 추며 길 위를 굴러간다.

그러더니 이번엔 대니의 마스크가 훅 벗겨져 휘리릭 저만치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두 노인네는 허겁지겁 마스크를 향해 뛰어간다.

정지된 차 안에서 이 모양을 황당하게 바라보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니 절로 웃음이 났다.

아무래도 바람의 환영인사가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럼에도 그 바람에 상큼한 봄 향기가 실린 듯해서 숙소까지 걸어가자고 했다.

늘어선 벚나무 가로수 단단한 나무둥치에 파란 새잎들이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인적 없는 외곽도로를 마냥 걸었다. 부부란 옆에 있어도 있는 둥 없는 둥 굳이 말을 걸 필요가 없어 좋다.

아내의 걸음걸이가 기우뚱해지는 걸 보더니 그만 택시를 타자고 한다.

"그럴까?"

저만치  빨간불을 켜고 다가오는 택시를 잡았다.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게 좋겠다며 대니는 숙소 부근에서 차를 세운다.

"저 식당 어때?"

"네~ 좋으실 대로~"순순히 따라 들어간다.

메뉴판을 훑다가,

"전복해물탕에 모둠 생선구이로 할까?" 묻길래

"괜찮네"하고 대답한다.

 

내가 예스맨이 되기로 작심을 하니까 대니는 더 정중하게 이것저것 일단 물어 본다.

아니, 이런 간단한 산수를 아직 모르고 그렇게 오랜 세월 아웅다웅하며 살았단 말인가?

숙소에 짐을 풀고 앉아 따끈한 차를 마시며 문득 스치는 생각,

'이거 철들자 노망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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