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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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15
여자의 일생.(촌노)
올해가 소 해라문서?
그것도 하얀 소라나! 흰 소가 있기는 한감? 한번두 못봤으닝께.
내가 소 띠인깨 우리 나이로 아흔 일곱이여. 우리 마을에서 내가 젤루 나이가 많어.
얼마 전에 대전 사는 백시살 먹은 언니두 죽구 저 아래 구십 다섯 된 노인네가  요양원인가 병원인가 에서 죽고 인제 나만 남었어.
인자 내 차랜디 내가 애들 헌티 그렸지.
'내가 죽게 생겼거든 콧줄 같은 거 끼지말고 산소긴가 뭔가도 입에다 씨우지 말라' 고.
이 나이에 죽어가는 목숨에 뭐더러 그런 헛짓을 허는지 모르것어.
테래비에서 백세시대라고 노래 부르더만 내가 백살꺼정 사네 그려.

내가 일제시대(1910~1945 일제강점기)
에 태어났는디 그 땐 정말 찢어지게 가난혔지. 못먹어서 똥이 안나오고 피가 나오는디 요새처럼 휴지가 있남. 지프레기 비벼서 밑씻개로 씨었으닝게. 그려서 또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혔나 봐.
일본 순사 놈들이 놋 숟가락(놋그릇)몽댕이 하나 안 냉기고 싹 쓸어 갔을 때 였응게.
지금은 우리 마을에도 저수지가 있지만 그 때만 혀도 하늘만 쳐다보고 살 던 때라 숭년(흉년)이 자주 들어서 먹고 살기도 힘들었고 일본 놈들이 지지배(처녀 애)들을 잡아간다 (1941년 조선 총독부 지원하에 조선 여성 2000~ 3000명 동원한 사실이 확인됨)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도 혀서 열여덜에 시집을 왔지.
가난허기도 혔지만 지지배는 시집 보내면 그만인디 공부 갈쳐 뭐하냐고 핵교도 안 보냈어.
근디 내가 글자를 읽을 줄 알간. 그것도 모르고 메누리가 편지를 보내면 냄편이
읽고 어디다 치워버리는 데 암말도 못혔지.
메누리가 언젠가 내 생일 마다 미역국 끓여 드시라고 용돈과 함께 편지를 보냈는디 답장 한번도 없었다고 서운해 하길래
'내가 글을 알가디?' 했구먼.

9남매 중에 막내인 내가 해방되기 전해에열여덜에  혼인식도 없이  시집이라고 왔는디 시엄니가 시레기국을 끓여 주드만. 친정에서 먹구 살기 힘들어서 부잣집이라고 시집을 왔는디 갓 시집 온 새댁 헌티 시레기 국이라니. 눈물이 핑 돌고 부자면 뭐하나 싶데 그려.

근디 봉께 3살 짜리, 6살 짜리 머심애가 둘이나 있네. 참 기두 안차드만.
애들 에미라는 여편네가 여섯살 짜리는 두고 3살 짜리 애를 들쳐 업고 나갔다가 보름만에도 오고 한달만에도 들어오고 하는디 정신이 온전치 못헌가 어쩐가 그래서 그렸는지 몰러도  식구들이 아무 말도 안하데. 심지어 냄편까지도...그렇게 앙칼지고 매서운 시어미도, 시아버님 조차도 입 다물고 함구하데.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내게 말을 안혀.
어디 물어 볼 수나 있남?
난 물어볼 데도 읍구 그냥 눈치만 봤지.
친정 엄니는 그때 벌써  알었었던게벼. 신랑이 장가 가서 여편네가 시퍼렇게 살아있고 머심애두 둘이나 있다는 걸. 그걸 알고 나니 친정 엄니가 을매나 야속하던지...지금꺼정도 맴이 안풀려. 그려도 워칙혀. 시집 왔는디.
이를 앙다물고 다짐혔지. 죽어도 이집에서 나가나 보라고.
실은 지금 처음 실토하지만 신랑은 맘에 들었지. 허우대 좋지, 인물 잘 생겼지,
배우기도 혔지.

얼마를 그 꼴을 보니 부아가 치밀기도
허고 오기도 생기데.
'내가 이 집서 밀려나나 봐라.'
그 오기 하나로 앙칼진 시어머니 시집살이도 견디고 허리 펼날 없는 밭일도 해 가며
참고 살었지. 징글징글 혔어.
그런데 참 기두 안막혀서 ...
내가 아들을 싯이나 낳도록 호적을 안 만들어주네 그려.
맨날 싸웠지. 애들 아부지하고
'호적 왜 안맨들어 주냐'고. '멀쩡한 처녀
속여서 장가 갔으면 호적엔 느줘야 하지 안느냐'고 막 대들었지. 내가 대들 때 마다 흠흠 대며 암말도 못허데.
대소사 일 많고 열번도 넘는 제사에 식구들 뒷바라지에 밭농삿 일 까지 힘에 부치니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지.
그래두 시아버진 인정이 있어서 그때마다
의원 데려오구 한약 지어 오구. 그려서 살아났어.
인정많은 시아버지는 지나가는 거렁뱅이 도 그냥 안보내셨지. 꼭 채반에 밥을 차려서 멕여 보냈어. 그땐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든 때라 그랬는지 거렁뱅이가 왜 그리
많았는지. 하루에도 서너번은 오내 그려.액면글면 하는 메누리가 안돼 보였는지  인정 많은 시아버지가  집앞에 있는 밭 천 오백평을 큰애와 내 이름으로 등기를 내 주데. 그게 아마 육이오 사변이 끝나고 큰애가 아홉살인가 됐을 때 였지.
그 후로 남편이 면장 나가서 떨어지는 바람에 허리 졸라매고 모은 재산 다 날리고 빚까지  졌지. 수채구녕에 쌀이 한톨이라도 보이면 앙칼진 시엄니가 을매나 닥달을 하던지 소름이 다 끼쳤지. 일꾼들 밥사발에 밥이 수북하면 여지없이 혼났으니까.
일꾼들은 밥 심으로 일을 하는디...

아마 그 때 호적 정리가 됐던가?
큰 여편네가 정신이 오락가락 하니 아마 그집 오래비하고 남편하고 의논해서 땅떼기 좀 띠어 주고 정리헌 거 같어. 그려서 위의 두 애들은 지 애비에게 섭섭하다 그러지.
내가 아들 넷에 딸 둘을 낳으니 내가 난 자식꺼정 여덜을 대학공부 다 시켰지. 서울대학도 둘씩이나 보냈어. 농사 질 놈 하나 안냉기고 몽땅 공부 시켜 사람 새끼 말새끼 만든다고 애들 아범이 시아버님 헌티 바지랑대로 수도 없이 맞었지.
일도 넌덜머리 나게 혔지. 논 일이야 일꾼과 냄편이 혔지만 밭일은 전수 내일 아닌감? 마늘 농사로 애들 대학 보냈응께. 허구헌날 풀 뽑구 심고 캐고 매달고 장에 이고 가 팔고.
내 허리가 고생을  많이 혀서  지금 이렇게 꼬부라져 펴지지도 않지만 그려도 애들 공부 시킨 건 잘혔다고 생각혀.
이 동네서 자식 여덟을 다 대학 갈친 집은
우리집 밖에 읍슨게.
내가 난 자식 아니래두 난 내자식 허구
똑같이 혔어. 하나두 칭하(차별) 안혔어.
근디 지어미 죽었을 때 안디려다 봤다고
앙심을 먹데. 큰애가.
내가 왜 디려다 봐? 내 가슴에 맺힌 게
얼만디. 애들도 헌티도  내가 가지말라고 말렸지.
그려서 애들도 안갔어. 지 에미 생각허믄 지들도 갈 수가 읍지.
그려서 큰애가 시째(큰아들) 헌티도 앙심을 먹은 것 같어.
남편이 공부도 못허는 큰애를 장손이라고 을매나 공을 들였다구.
중핵교 떨어져 보결인가 뭔가 돈 쳐들여서 보내고 고등핵교 떨어져 또 돈쳐들여...군대 안가게 하느라 돈 쳐들여...돈 덩어리여. 그 애만 자식인가 원 ! 그럼 뭐혀. 
지 아부지 아플 때 는 콧배기도 안봬데.
십년이 다 되도록 전화 한통 없었구먼.
다른 애들은 다 지가 알아서 대학가구
취직허구 그랬는디....
인자 말하는 것도 힘에 부치네.
물 한 모금 먹구 좀 쉬다가 헐까?

내가 고생은 많이 혔지만 남편 가고 혼자 남으니 늦복이 터진 것 같어.
긴 세월 살아 오면서 어찌 우여곡절이 없었것나. 막내 아들이 교통사고로 먼저
갔을 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지만
삼십년 가까이 되도 아직까지 여기가 아리네.
결혼혀서 집에 들어와 부모 모시고 산다고 헐 때 부터 탐탁지 않았거든.
지들끼리 나가 살면 홀가분하고 좋잖혀.
굳이 들어와 산다면서 일만 벌려 내 신역만 고달프게 혔잖여.
사슴 피가 좋다고 송아지 만한 엘크며 꽃사슴을 커다랗게 우리를 지어 놓고 잔뜩 사다놓데. 근디 누가 사슴피를 그렇게 먹는다고. 사슴 뿔은 짤러 놓면 누가 사가기나 허남. 그것도 한때 유행여. 엘크를 한마리에 천만원이 넘게 사다가 반값도 못받고 팔더니 얼마 못가 농사짓는 기계 장사를 한다나. 구두쇠 영감탱이가 그애 한티는 아까워 안태. 낭중엔 며늘애까지 데리고 나가 다니더만. 가게 인수헌다구 돈도 숼찬이 들어갔지. 그러니 나는 살림하랴, 손주 키우랴, 사슴 밥 주랴, 농사지랴, 을메나 힘들었것어. 그렇게 나만 힘들게 하더니 차 사고로 덜컥 가버렸잖여?
새벽에 홍성서 차가 논두렁에 뒤집어 졌다는디 사람은 10미터 밖에 떨어졌더래. 차도 폐차 시켰다고 그러데. 장인이 형산디 졸음운전 같다고, 안전 벨트를 안매서 사고가 컷다고. 사고 수습을 마무리 혔지.
집에 들어와 산지 딱 십년만이구먼.
서울애가 '저유 십년만 살구 나갈규.'
하는 말을 들었다면서 이렇게 살다 이렇게 나갈려구 그 말을 했냐구 울먹이드만.
그러니 서른 갓넘은 혼자된  며느린 어쩌겄어. 큰 딸이 그 애들 사주를 봤는데 썩 좋단말을 안하데. 근디 며늘애가 나이를 속였잖여. 궁합이 안맞는 다는 소릴 저도 들었겄지. 나이 속이고 시집온 메누리가
밉기도 혔지.
그러려고 그랬는지 죽기전에 대천 삘딩이랑 농기계 가게  명의를 며늘애 이름으로 바꿨더먼.
며느린 막내가 하던 거 지가 한다고 아침에 눈 뜨고 나가면 밤 열두시 한이라 뭐라구 할 수도 없고 맘만 조리지. 여자가 허구헌날 밤 열두시 까지 뭐한데? 밤 열두시까지 일하는 직장이 있데? 맨날 적자라나 뭐라나 하면서 트렉터 팔러 사방팔방 쏘다니니. 여자가 헐 짓은 아니지.
그러니 내 집에서 혼자된 며느리 눈치 보느라 맘 편혔것냐구.

남편이 저세상 간지도 벌써 십년이 넘어가네.  웬수니 악수니 하고 살았어도 막상 죽으니 눈이 침침하고 안보이데. 애들은 내가 충격 받아서 그렇다나?
돈 한푼 쓸줄 모르고 땅만 사더니. 죽구나니 땅 한평 못가지구 가는 걸. 애들이 관 위에 십만원 올려놓고 흙을 덥었다네.
난 뵈기 싫어서 산에두 안갔어.
애들은 죄다 객지에 살고 혼자된 메누리와
핵교 댕기는 손주 둘하고 있는디 메누리가 아침이면 일어나 눈 내리깔고 쳐다도 안보고 차 몰고 나가면 밤 열두시 꺼정
안 들어와. 땅 상속문제로 틀어져서 그러는가 혔지.
벌써 저는 전 재산의 반을 가져갔으니 달라고 안혀도 되잖여?  그놈의 재산이 뭔지 .
싯째가 공평하게 나눈다고 혔는디.
싯째는 옛날에 할아버지가 주신 땅이면
된다고 빠지고 막내도 전체의 반을 가졌으니 뺄려 했나본데 울고불고 난리가 났잖여. 형 둘은 십년이 넘도록 전화 한 통 안해도 형 대접해야 한다고 젤 좋은 곳으로 공시지가라나 뭐라나로 해서 나누어 주니
아무 털없이 상속이 끝났는디.
서울 며늘애가 '어머니, 막내 눈치 보지 말고 서울 오세요. 서울에 아들 딸이 수두룩한데 뭐가 걱정이세요?' 해서 겸사겸사 서울 온 새에 메누리가 짐 싸갖고 나가버렸네?. 내 참 기가 막혀서. 아니 시에미가 서울와 집에 아무도 없는디 지 살림들고 빈집 냉겨 놓고 나가버려? 하룻밤을 자두 만리장성을 쌓는다구 시아버지가 죽은 해에 야밤도주 허듯이 나가 버리는게 사람여?
사람이면 가면 간다 오면 온다 혀야 되는거 아녀? 내 선입견이겠지만 예전부터 그쪽 사람들 별루라고 생각혔어.
전엔 같이 사는 메누리가 있다고 애들이 집안 일에 눈치들을 봤는데... 그애가 나가버렸응게 셋째가 계획을 세우드만. 주말마다 당번을 정해 내려오게 하고 제사 당번 정하고 살림책임 정하고 내 병원 책임 정하고 그러니 내가 그렇게 편해보긴 구십 평생 첨이여.
노인정에 가면 넘 얘기 좋아 하는 사람들 말이 많지.
집 나간 메누리가 시에미 험담하고 다니는거. 집에서 빤히 보이는 코 앞에 대동농기계 써비스 공장지어 놓고  트렉터 콤바인 잔뜩 늘어 놨는디 집은 한번도 안 디리다 봐. 그게 사람인감.
그래도 그애 집 나간 덕분에 주말마다 아들 메누리, 딸 사위, 손주들 까지 바글바글 을메너 좋아. 맨날 잔칫집 같어.
저는 집 나가면서 늙은 노인네 혼자 있는 적막강산 될 줄 알았는지 모르것지만.
그리고 상속을 받더니 큰애도 전화하고
둘째는 제사 지내러도 오데. 재산이 좋기는 헌개벼.
지가 상속 안받고 형제들 공평하게 나누어 줘서 그런지 싯째가 말 한 마디만 하면
다들 잘 들어.
그려서 나도 애들 내려오면 오만원씩 주지. 차 끌고오면 십만원 주고. 주는 나 기쁘고 받는 애들 좋아하고.
하긴 지들 오남매가  이십여년 가까이 매달 십시 일반으로 모아서 주는 돈이지만.
나도 논 도지 받은 거 합치고.
위 둘 빼고 막내 빼면  다섯이잖여.

집 나간지 오년 지났는디 나갔던 애가
손주를 시켜 들어오겠다는 말을 전하데.
참, 얄굿데. 지 맘대로 나가고 지 맘대로
들어온다니.
그래도 어쩌것어. 메누리도 자식이라 들어온다는디. 대학 간 두 손주랑 들어오대
들어오게 내버려 뒀지. 들어 오더니 죄송하다고 하더먼. 서울 애들에게도 사과하라고 혔는디 혔나 모르겄어. 집에 들어 오더니 눈 내려 깔 때와 다르게 엄니, 엄니 허면서 살뜰하게 잘 허대. 근디 솔찍이 믿진 않어.
자꾸 그짓말 같어. 워칙허면 사람이 그렇게 백 팔십도 변한데?
근디 서울 애들이 무던하고 착혀. 일언반구 말을 안혀. 다른집 같으면 몇번은 집이 뒤집어 졌을텐디.
서울 애들이 내려오면 작는 메누리 헌티 자꾸 이쁘다 이쁘다 허랴. 근디 그게 그렇게 되남.
그 애가 들어왔어도 서울 애들은 하던 대로 헌다고 그러네.
싯째가 일 처리를 잘혀. 보령선 머리 좋다고 소문나서 대전중학 보냈는디 서울 대학을 못보냈어.
싯째헌티 항상 미안허지
상속도 포기허구...
장가갈 때 쌀 한 가마도 못줬는디. 
장가갈 때 처갓집에서 반대해서 메누리 미운 맘에 그랬나 몰러. 아들 고생허는 건 생각도 안혔지. 지금은 알뜰허게 살림혀서 손주들 아파트꺼정 해 줬다니 대견허구 참 미안허지.

내가 지금 죽으면 호상이라구 그럴껴.
싯째가 지금 산소 정리도 허구 있응게
내 들어갈 자리 마련 안혔을라구.
사람마다 살아온 세월을 소설로 쓰면 열권은 된다고들 허대.
난 그렇진 못혀두 이만허믄 열심히 잘
살았다고 생각혀.
모두 지가 산 세월은 지가 안고 가는거 아닌감.
소띠 해에 태나서 소처럼 묵묵히 일하고 살다가 소띠 해 그것도 하얀 소띠 해에 죽으면  그도 괜찮지 않나 싶다우.   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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