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이 마침내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 심야 차량시위를 벌였다. 자영업자들이 전국 규모의 시위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마다 차량에 ‘길바닥에 나앉느니 죽는 게 더 낫다’ 등이 적힌 현수막을 붙이고 거리두기와 영업시간 제한조치에 항의했다.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를 비롯해 대권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시위 현장에 함께 하면서 이들을 응원했다.
 
한국은 한때 코로나19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국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K-방역 성공의 원동력은 자영업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양보와 희생이었다. 국민들은 개인의 사생활 정보가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출입 명부 작성과 QR카드 체크에 성실히 응했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매출에 차질이 생기는 데도 영업금지나 제한조치에 순응했다. 정부가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영업금지.제한이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결정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국무조정실에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 시간대별 데이터’를 요구했다. 하지만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정부가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등 규제에 나설 경우, 추후 정교한 대책 마련을 위해 시간대별로 감염이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정보를 수집해 통계를 축적할 것으로 국민들은 기대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창권하기 시작한 지 1년 반애 지나도록 아무런 통계자료도 없이 그때 그때 주먹구구식으로 방역 지침을 정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 “짧고 굵게 방역을 마치겠다”면서 지난 7월 12일부터 사실상 통금 수준의 4단계(수도권) 거리두기를 시행했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확진자가 네 자릿수에서 전혀 줄어들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가 주최한 '지속 가능한 K-방역 2.0 준비를 위한 간담회'에서도 더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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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집이나 포차 등을 영위하는 자영업자들은 영업시간이 1시간만 단축돼도 직격탄을 맞는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가 지난달 말 수도권 등 거리두기 4단계 적용 대상 지역 자영업자 4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평균 매출액이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53%로 반토막이 났다. 또한 중소기업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현 방역체제하에선 휴·폐업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응답이 63%나 됐고 이미 45만3000개 매장이 폐업했다. 올해 7월 기준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도 집계를 시작한 이후 3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자영업 붕괴가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해 임금 노동자 외(外) 가구(자영업자)의 월평균 사업소득은 고작 214만원에 불과했다. 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 프랜차이즈 가맹비 등 투자금의 기회비용을 감안할 경우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실에 따르면 1인 자영업자 가운데 투잡에 나선 사람이 지난 7월 현재 15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03년 이후 매년 7월 기준 최고치로 1년 만에 17.4%나 증가했다. 금융권 연체도 심각하다. 4차 대유행 이전인 지난 6월 말 기준 소상공인 정책자금 연체금액은 2204억원이나 된다. 역대 최다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한정된 연체금액인데도 이렇다.

이처럼 생사기로에 서다보니 지금까지 정부의 방역수칙을 잘 따랐던 자영업자들의 태도가 이젠 분노로 변했다. 특히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아무런 피해도 당하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재난지원금을 뿌리면서 막상 자영업자에게 주는 정부 지원금 규모는 임대료도 되지 않는 ‘새발의 피’ 수준이고 그나마 지급 절차가 무척 까다롭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정부가 자영업자들에게 왜 이렇게 가혹한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이젠 자영업 문제를 슬기롭게 풀지 않고서는 방역은 물론이고 소득 불균형과 사회양극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본다. 또한 현행 K-방역 정책으로는 더 이상 사회적 동의를 얻기도 어렵게 됐다. 무작정 다수에게 돈만 뿌리면 표심을 얻을 수 있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정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하겠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