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정부, 가계, 기업 등 경제 3대 주체의 빚이 5000조원에 육박했다. 가계부채가 1726조원, 국가채무가 847조원, 기업부채가 2112조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2.5배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국민 1인당 1억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공공기관 부채 및 잠재부채인 연금충당 부채를 합하면 실제로는 5000조 원이 넘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부채의 증가속도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작년 6월말까지 근 12년간 145%나 증가, 세계 평균 증가속도 31%에 비해 무려 5배나 빠르다. 최근 들어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금리가 점진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자칫하면 국가신용등급 하락과 기업과 가계의 연쇄 파산으로 이어지지 않을 까 우려된다.
 
국가부채는 2018년에만 해도 680조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매년 100조원 이상 급증하면서 올해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은 역대 정권마다 건전재정을 국가 운용의 주요 목표로 삼아 재정상태가 무척 양호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2012년 일본보다 국가신용등급이 높아진 것도 재정건전성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19 사태로 59년만에 처음으로 지난해에 4차례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정부 씀씀이가 커지면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3.9%로 높아졌다. 나랏빚은 올해도 폭증, 국가채무 비율이 48% 안팎으로 껑충 뛸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2025년엔 64.96%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은 국가채무 급증은 세금 아끼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사고방식으로 치부되면서 재정 건전성이 국정 후순위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와 기업부채 역시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작년 현재 가계신용 잔액은 1726조 원으로 1년 사이에 125조8000억 원(7.9%) 늘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증가폭이 38개국 중 베트남 태국에 이어 세 번째로 가팔랐다고 밝혔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2.8%로 역대 처음으로 나라 전체 경제규모를 넘어서 주요국 중 가장 높다. 부채 위험이 높다는 나라들도 우리보다 한참 낮다. 무제한 양적완화를 시행한 미국도 78.8%이고 국가부채가 무척 높은 일본도 70%가 채 되지 않는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가계부채 증가율이 명목소득 증가율보다 높아 채무 상환능력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계가 빚에 짓눌려 있으면 민간소비 회복이 힘들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국제결제은행(BIS)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민간 부채의 다른 축인 기업부채도 비상이 걸린 상태다. 코로나19로 정부의 정책 자금이 대거 풀리면서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이 양산됐다. 한은에 따르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은 3475개(2019년 기준)로 전체 기업의 14.8%를 차지, 2010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2020년엔 한계기업이 전체의 21.4%인 5033개로 크게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단의 대책을 서두르지 않을 경우 위기 도래는 시간문제라 하겠다. 전문가들은 불요불급한 정부지출을 억제하는 한편 증세 등 근본적인 재정확충 방안을 마련하고 기업과 가계의 부채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야만 재정 파탄 및 기업과 가계의 연쇄 도산 등 파국을 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직은 코로나 사태가 해결되지 않아 민생과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대규모 재정지출이 불가피한 상태다. 하지만 돈 풀기의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안전망이 선진국 수준으로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데다 저출산·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체질 개선과 기업 경쟁력 강화 없이 경제운용을 단기 처방으로 일관할 경우 코로나 사태 수습 이후 부채의 역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현대사가 경험한 모든 금융위기의 주범은 부채다. 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빚이 빚을 부르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부채가 늘어나 투자자들이 국채를 외면하면 이자가 급등하고 화폐 가치가 급락한다. 이는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금융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온 금융위기 패턴이다. <투데이코리아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