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트렌드 ESG경영

'ESG 전도사'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전광우 이사장은 실무와 정책을 두루 겸비한 국내 최고의 금융 전문가다.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자산 800조원 세계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제1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 같은 경력에 앞서 전 이사장은 1980년대 초 미국 미시간 주립대 경영학 교수에 이어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수석이코노미스트로 국제 금융무대에서 15년 동안 활동한 국제통이기도 하다. 지난해 1월 1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으로 취임,

국제 금융통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위기를 넘어'(Beyond the Crisis, 2010) 등 다수의 국·영문 저서 및 논문이 있다. '아시아지역 올해의 CEO상',

청조근정훈장, '인디애나대학을 빛낸 국제동문상'(2013)도 받았다.

대담=박선호 편집국장


그동안 자본주의에는 수많은 가식이 있었다. "손해 보고 팝니다" "손해 보고 팝니다"는 장사꾼 말이 거짓이듯 "회사는 공익을 위합니다"는

말은 가식이었다. 적지 않은 기업이 사회봉사에 나서고 거액의 기부금을 내지만 속셈은 언제나 '이익추구'였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글로벌 산업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와 경영이 급부상하고 있다. '기로 선 자본주의'(2000년 앤서니 기든스)가

이제야 답을 찾았다는 평까지 나온다. ESG는 기업이 환경, 사회분야에서 기여는 물론 지배구조의 투명성까지 확보하려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하나가 거대 담론이다. 하나도 지키기 힘든 것을 셋이나 한다고 한다. 그런 ESG는 가식이 아닐까? 이전과는 정말 다를까?

"분명한 것은 이번 ESG가 대세라는 점입니다. ESG는 이번에 정말 다릅니다."

지난 2일 서울 영동대로 무역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의 첫 마디는 단호했다. ESG에 대한 고견을 듣고자 한다고

화두를 꺼내자마자 전 이사장은 "이번엔 왜 다르냐? 이것부터 이야기 하자"고 했다."포용적 자본주의나 따뜻한 자본주의는 언제나 되풀이 되는

화두였습니다. 기업, 정부 차원에서 패션처럼 유행했다 사라지곤 했습니다. 예컨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의

리폼이 화두가 됐습니다. 리먼 사태이후 IB들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당시 여러 금융사들의 생존이

의문시되기 했죠. 하지만 몇 년 걸리지 않아서 JP모건 등 주요 IB들이 이전보다 더 강력한 모습이 돼 돌아왔습니다.

포용적이고 따뜻한 자본주의 논의는 그렇게 지속적이지 못했고 쉽게 동력을 상실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지적하고 싶은 게

이번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전 이사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전 이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금융전문가다. 우리금융지주 부회장으로

현장 실무 경험은 물론 지난 2008년~2009년간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국내 금융정책의 청사진을 직접 진두지휘해 만들었다.

전 이사장의 세계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웨스턴 조선호텔에서 '2020 ESG 글로벌 서밋: 복원력 강한 경제와 지속 가능한 금융의 길'

글로벌 컨퍼런스를 열었다. ESG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누구도 'ESG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쉽게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열린 포럼이었다.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국내 인사들은 물론 스티브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 필립 힐데브랜드 블랙록 부회장,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 그리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마이클 스팬스 뉴욕대 석좌 교수 등이 참석해 ESG 투자와 경영의 향방에 대해 논의했다.

국내 ESG 관련 첫 국제 규모의 컨퍼런스였다.

"다르죠. 분명히 다릅니다. ESG에 대한 열기가 이미 각국 자금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제 ESG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기업의 생존,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필수요인이 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될 것인가? 전 'BBC'가 그 원인이라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전 이사장은 "'BBC'라고 영국의 방송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농을 했다. 잠시 웃음이 이어진 뒤 전 이사장과의 인터뷰가 지속됐다

. "첫 번째 'B'는 블랙록의 B입니다. 근 9조 달러, 대략 1경 원이 넘는 자금을 세계 각국, 주요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자산운용사입니다.

그 자산운용사가 ESG 투자방침을 확고히 했습니다."

블랙록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다. 국내 삼성전자, 신한금융 등의 주요 기업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사실 전 이사장의 이 같은 지적은

확실히 기존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CSR이 경영적 측면에서 기업의 이미지 제고, 브랜드 가치제고의

효과를 보는 수준으로 대 소비자 조치에 불과했다면 ESG의 블랙록의 입장은 대주주의 입장, 주주 이익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분명히 과거 매번 착한 자본주의 논쟁에서 대립 입장을 보였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와 '주주 자본주의'의 두 입장이 자연스럽게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실제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올 초 투자자들과 기업 CEO(최고경영자)에게 보내는 연례서한에서 거의 모든 투자에 ESG 평가를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 이사장은 이에 "분명히 지금까지 그 어떤 것보다 ESG에 대한 임팩트를 달리하도록 하는 조치"라고 평했다.

전 이사장은 이어 또 다른 'B'는 미국의 신임 대통령 조 바이든의 'B'라고 밝혔다. "취임과 동시에 '파리기후협정' 복귀를 선언한 것, (ESG의 관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그널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같은 환경이슈는 물론 사회적 부의 불평등, 인권 문제에서도 과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향후 ESG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 이사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국제사회 다자협력에 대한 강조 역시 ESG 정착에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했다. 마지막 'C'에 대해 전 이사장은

코로나의 C라고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사태는 국제사회 ESG 중요성을 깨우는 '웨이크업 콜'이 됐습니다. 국제사회의 ESG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졌습니다 . 전염병의 확산은 기후변화의 영향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 뿐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국제 규모의 대재앙에

대한 국제 공동의 대응과 각국 정부의 대응 능력의 차이를 모두가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한 것입니다."

인터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ESG의 각 요소, 환경과 사회 그리고 지배구조 등에 대한 언급으로 넘어갔다. 앞서 언급했듯 ESG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문제는 그 하나하나가 거대한 담론의 주제다. 사회 이슈만 해도 어린이 노동착취 문제에서 최근의 미얀마 군 쿠데타 등까지 그 스펙트럼이 광대하다.

실제 과거 유럽의 한 회사가 미얀마 군부를 지원했다 세계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을 당해야 했다. 지배구조 문제만 해도 최근 들어 기업 내부

경영의 투명성을 넘어서 기업이 속한 국가의 정책적인 문제까지 그 관심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관련해 전 이사장은 "환경파괴 등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해야하는 문제들이 늘어나면서 ESG는 과거와 다른 차원, 더 큰 틀에서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며 "과거 10, 20년 전과 비교해 ESG가 언급되는 커버리지와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ESG는 관심이 높아질수록 모호해진다. 그런 ESG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이렇게 광범위한

ESG를 기업은 과연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인가?', '어느 선까지의 ESG 추구가 주주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자본주의 근본속성과 타협되는 것인가?'

등의 문제가 그 것이다.

전 이사장은 이에 "ESG를 실제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특성, 산업별 특징 등이 적절히 감안된 일종의 페이스(속도) 조정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르웨이의 사례가 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친환경 에너지산업으로 전환하겠다면서 '클린 도시 구축'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이

들었고 그 자금은 북해의 오일을 팔아서 충당해야 했습니다. 자신들은 '클린' 해졌는지 모르지만 더 많이 팔린 북해 오일은 전 지구적으로 더 많은 탄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국가마다 다른 부존자원의 차이 등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딜레마 속에서 ESG는 좌초하고 말 것입니다. 설사 ESG가 자리

잡는다고 해도 현실 속에 ESG규제를 따르지 못하는 기업들의 탈락하는 현상이 속출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철강기업, 전 세계 석탄과 오일회사

입장에서 보면 하루아침 변화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속도조절의 사례로 전 이사장은 '탄소제로'를 꼽았다. "태양광 발전을 위해서 산을 깎아 산림을 훼손해야 한다면 그것이 ESG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기 힘들죠. 원전에 대한 생각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각 나라의 부존자원을 감안한 에너지 경영이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전 이사장은 이 같은 속도조절을 '디테일이 악마'라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전 이사장은 ESG가 완전히 정착하는 조건으로 공정한 평가도 꼽았다.

투자측이 ESG 경영에 대한 평가를 반영하겠다고 하는 데, 그 평가가 투자를 받는 기업 입장에서도 납득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ESG 평가를 신용평가사들도 하고, MSCI도 하고 지배구조를 평가한다는 곳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재무적 신용평가와 달리 정성평가가 많다보니

기준도 다양합니다. 이런 점들이 차츰 개선돼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권위를 갖고 평가해 투자자나 기업 모두가

수긍하는 평가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같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전 이사장은 ESG 자본주의 안착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무엇보다 그 움직임을 주도하는 곳이

바로 주주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반대편에서 소비자가 싸워서 얻어내는 방향 전환이 아니라 주주, 그것도 대주주들이 직접 판단해 이끌어내는

기업의 방향 전환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ESG가 모든 기업 국가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핵심 기준 원칙이 되는 그런 개념으로 자리를 잡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기존의 단기적인 시각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경영전략을 효율성보다 복원력에 중점을 두고 보자는 주주들의 입장이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투자 패러다임 역시 그 같은 방향의 변화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투자패턴의 변화가 투자를 장기적이고

복원력이 강한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 이사장은 국내의 경우 국민연금의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이후 ESG에 대한 관심 고조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이미 오래전에 ESG팀을 본부 안에 만들었죠. 그동안 수년에 걸쳐 핵심적인 투자평가 기준은 아니었지만 점진적으로 ESG 평가 기준을

높여 왔습니다. 이제 모든 투자의 절반이상을 ESG 평가를 감안한 투자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업으로서는 ESG가 피부에 와 닿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대기업, 특히 대표적으로 SK그룹이 사내 ESG위원회 TF를 만드는 등의 조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올 주총을 앞두고 ESG는 더 큰 화두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전 이사장은 다시 한 번 ESG에 대한 정리를 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ESG는 간단히 포괄적 리스크 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스크 관리는 비용을 수반하게 되죠. 공짜로 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리스크 관리는 꼭 해야 하는 데 바로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 같은

 

리스크는 단기적인 성과를 비용으로 지불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박선호기자 shpark@dt.co.kr정리=강민성기자 kms@dt.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