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미국 장기금리 움직임이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장기금리가 오름세를 보이면 전 세계 주식시장이 약세를 면치 못하다가 잠시 주춤하면 다시 강세로 돌아서는 등 극심한 혼조세가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장기국채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해 8월 초 0.52%까지 떨어졌다. 그러던 것이 이를 저점으로 오르기 시작, 최근에는 1.5%대까지 상승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적어도 2023년까지는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대규모 채권매입도 지속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도 불과 7개월 사이에 장기 실세금리가 1%포인트나 급등했다.
 
단기 채권금리는 중앙은행이 책정하는 기준금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만 장기 채권금리는 통상 경제성장이나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더 큰 변수로 작용한다. 따라서 코로나19 백신 보급과 세계 각국의 대규모 재정살포로 인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 질 수 있다는 것이 시장의 대세인 것으로 보여 진다.

한국에서도 은행 대출 금리가 크게 올랐다. 기준금리는 연 0.5%에 불과하지만 4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금리는 무려 2.54~4.05%나 된다. 반년 만에 0.6% 포인트나 뛴 것이다. 집값과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자 금융당국이 지난해 10월부터 '신용대출 조이기'에 나섰고 은행들이 우대금리 폭 축소로 화답했기 때문이다.
 
시장금리는 앞으로 더 오를 전망이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향후 막대한 돈이 시중에 풀릴 예정인데다 금융위원회가 3월 중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농산물 수급 악화에 따른 애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거의 모든 물가 지표가 뜀박질을 하고 있는 것도 실세금리 상승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저금리 시대가 끝났다”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금리가 오르면 추가로 빚을 내기가 어렵고 이자 부담이 커진다. 아직은 절대적인 금리 수준이 낮아 금리 상승이 소비자에게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가 부담해야 할 이자만 6조 원정도 늘어난다고 한다. 특히 비중이 커진 변동금리 대출이 변수다. 금리연동 대출 비중(신규 취급액 기준)은 지난해 1월 49.8%에서 올해 1월 70.2%로 높아졌다. 신용대출과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은 사전에 약정한 기간(3~6개월)이 지나면 금리가 자동적으로 재조정된다. 고정금리보다 변동금리 비중이 높고 만기 일시상환이 많은 지금과 같은 대출구조에서는 금리 상승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물론 금리 상승이 반드시 악재인 것은 아니다. 급하게 상승할 때는 일시적 발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경제회복의 신호로서 경기 선반영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물경기가 아직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는데, 금리만 빠르게 오르는 데 있다. 미국은 아직도 경제 회복을 위해 유동성을 대거 공급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저금리 기조를 상당기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돼 실세금리가 오르면 연준의 통화정책도 방향을 틀 수 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이런 방향 전환이 당초 예상보다 일찍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달 23~24일 이틀 연속으로 의회에 출석해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는 발언을 쏟아냈지만 그 약효가 하루 이상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 통화당국은 저금리를 계속 유지시킬 방법이 있다고 호언,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금리 상승은 한국경제에 엄청난 위험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가계부채가 과다하게 늘어난 데다 한계기업도 많이 증가했고 ‘영끌’ ‘빚투’까지 가세하면서 부동산과 증시는 물론 경제 전반이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엄청난 쇼크를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정부부채와 가계대출 잔액은 각각 123조원, 125조원이나 늘어났다. 대기업을 뺀 기업대출도 147조원 이상 증가했다. 거의 폭증 수준이다. 예상되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통화당국이 국내외 금리와 물가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선제 대응하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을 것 같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