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 위기 후 ‘뉴노멀’이라는 신조어로 널리 알려진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하버드대 기금 운용 최고경영자와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의 회장을 지낸 시장 감각이 뛰어난 경제학자다. 그는 지난 6개월간의 글로벌 주가 폭등 원인을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불거진 미국 연준(Fed)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무한 리필과 개인 투자자들의 역대급 위험 추구 현상에서 찾는다. 개인 투자 급증은 초저금리 체제의 고착화, 인터넷 플랫폼 확대에 따른 투자 정보의 비대칭성 축소, 코로나 여파로 재택근무와 비대면 활동이 늘어난 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전광우의 세계 경제 읽기 / 한국 증시 개인거래비중과 신용공여잔고 추이
전광우의 세계 경제 읽기 / 한국 증시 개인거래비중과 신용공여잔고 추이

개인 투자자 비율 증가는 글로벌 현상이지만 한국이 유독 심하다. 3년 전 가상 화폐 광풍의 ‘데자뷔’다. 코스피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한 지난주 국내 주식 총 거래 금액의 개인 비율이 80%를 넘어서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30% 수준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대체로 신흥 시장의 개인 투자 비율이 크고 주가 변동성이 높다고 볼 때 개인 투자 급증은 금융 선진화에 역행하고 개인의 본업 집중도를 떨어트려 경제·사회적 비용도 키운다. 국내 신규 주식거래 계좌 절반이 ‘빚투’와 연관된 2030 세대라는 통계는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세상에 공짜 점심 없다”

 

세상에 공짜 점심 없다는 말은 현대 경제학의 거장 밀턴 프리드먼의 1975년 저서에서 기회비용의 원리를 설명하며 사용한 것이 첫 공식 기록으로 남아 있다. 주식시장 활황은 순기능이 물론 많다.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 효과’로 소비가 촉진될 수 있고 기업 신규 자금 조달에도 유리하다. 문제는 단기적 과열은 거품 붕괴의 파열 위험을 키운다는 사실이다.

안정적인 주식시장 발전은 건전한 투자 문화, 탄탄한 기업 실적, 견실한 경제 환경과 효율적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전광우의 세계 경제 읽기 / 주요국 GDP 대비 총부채 비율
전광우의 세계 경제 읽기 / 주요국 GDP 대비 총부채 비율

세계경제 전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3분기 성장이 플러스로 반전되어도 최근 유럽·인도 등지의 코로나 재확산으로 더블딥(W형 이중 침체)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포스트(post) 코로나’보다 ‘더불어(with) 코로나’ 시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정도로 코로나 파장 장기화는 굳어져 가고 있다. 미국의 8월 실업률이 8.4%로 4월의 14.7% 대비 크게 개선되었으나 1조달러 규모의 추가 재정 프로그램 추진은 난항 중이다.

2분기에 유일하게 역성장을 피한 중국의 회복세도 소비 위축과 고용시장 악화로 둔화 조짐을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주 미국 연준은 2023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한다는 이례적인 장기 계획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반면 중국 인민은행은 인플레 요인 등으로 금리 인하와 유동성 확대에 소극적이며 미 연준과 통화정책의 디커플링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중국의 상대적 고금리로 위안화 강세 기조가 확산, 원화까지 강세로 돌아서면서 원·달러 환율이 1160원대로 떨어져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경제 회복의 걸림돌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 확대로 불어난 국가 부채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글로벌 GDP 대비 국가부채(정부·기업·가계 부채 합계) 비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한국은 336.4%로 34개 조사 대상국 중 7위, 역대 처음으로 세계 평균치를 넘어섰다. 중국 경제 최대 아킬레스건인 국가부채는 지방정부의 중복 사업과 과잉 투자에 기인한다는 문제는 남의 얘기만이 아니다.

 

미·중 갈등 격화로 대외 정치·경제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미국은 어제(20일)부터 중국 ‘틱톡’과 ‘위챗’ 사용을 국가안보와 데이터 안전을 이유로 금지했다.

전초전이었던 무역 전쟁은 화웨이 제재 등 기술 전쟁으로 번지고 홍콩 사태에 이어 남중국해와 대만에서의 무력 충돌 가능성까지 G2 갈등은 확산 일로다. 6주 앞으로 다가온 미(美) 대선 혼전 양상과 대외 환경 악화로 한국 경제·안보의 자생력 강화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백지 수표 경제’는 취약하고 불확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이 소개한 ‘백지수표 경제(Blank-check economy)’가 눈길을 끈다. 대규모 재정·통화·금융 확장이 떠받치는 현 경제 상황의 취약성과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세계경제와 국제 질서 변화 와중에 유동성 확대의 경기 회복 촉진 순기능은 살리되 돈 풀기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현 정부의 백지수표가 공수표나 부도수표가 안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외교·안보에서부터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미·중 갈등이 글로벌 이념 전쟁으로 치닫는 지금 한눈팔다가는 한 방에 간다.

세계 정세 변화를 정확히 읽고 대응해야 할 시점에 현 정권에는 ‘로컬 정치 공학’만 있고 ‘글로벌 국가 전략’은 없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둘째, 국민 신뢰가 전제되지 않은 정부 정책의 과속을 피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경제의 자율 기능이 완전하진 못해도 ‘보이는 주먹’이라는 전체주의적 국가 통제가 대안이 될 수 없다.

경제 패러다임 변화기의 혁신 리더십은 정부가 아니라 역동적 민간 기업에서 나온다.

 

셋째, 코로나 장기화로 경제 파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파이 ‘키우기’보다 ‘쪼개기’에 열 올리는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진보 성향의 노벨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도 ‘기본소득’ 도입에는 신중한 접근이 바람직하고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장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충고한다.

넷째, 디지털 경제의 미래 경쟁력 구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세계 반도체 판도 변화 등 글로벌 산업 지형 격변과 4차 산업혁명기에 우리 기업들이 제대로 뛸 수 있도록 경영 환경 개선은 필수다. ‘공정경제 3법’에 공정으로 포장된 과도한 기업 규제는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