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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법감시委, '양형거래 수단'도 '법관기피 사유'도 될 수 없다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0.03.04


 
[기고]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 겸 바른사회시민회의 대표
양형거래 의심하다 돌연 '기피신청' 한 특검, 한계 자인한 셈
회복적 사법, 응보적 사법보다 바람직... 재론 여지 없어
준법감시위 실효성 검증 후 양형 반영... '양형 거래' 예단 안 돼
삼바 및 삼성 합병 의혹... 파기심 심리 범위 밖, 증거 기각 당연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 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사진=이기륭 기자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 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업무상횡령죄 등 파기환송심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는 2019년 12월 열린 3차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위법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 제8장’에 따른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조언했다. 삼성그룹은 지난 1월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켰고 2월 5일 첫 회의를 했다. 1월 17일 열린 이재용 부회장 파기심 4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는 실질적이고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했다. 

 

◆‘재판거래’에 이은 '양형 거래'라는 프레임

 

준법감시위 설치에 대해 일부 범여권 국회의원 및 시민·노동단체는 사법부의 ‘재판거래’에 이은 ‘양형거래’라며 재판부를 비난했다. 쟁점은 크게 2가지다.

첫째는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 제8장은 ‘사람’에 대한 양형기준이 아니라 ‘기업’(organization)에 대한 양형기준이므로 이것을 ‘사람’인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제8장은 ‘범행 당시’ 준법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을 경우 ‘기업의 과실 점수(culpability score)를 깎아준다’는 것이기 때문에 사후(死後) 약방문처럼 만든다 한들 효력을 발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준법감시위 설치가 양형거래를 위한 것이라면 그 자체가 엄청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재판거래’에 이은 ‘양형거래’라는 주장은 그 자체가 충격적이다. 한국이 ‘재판거래’가 이뤄지는 나라인가. ‘재판거래’ 논쟁을 복기해 보자.

문재인 정권은 2018년 양승태 전(前)대법원장을 ‘재판거래’ 죄목으로 사법처리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일본기업을 대상으로 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심 선고를 지연시켰고, 그 대가로 외교부가 해외 파견 법관 수를 늘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원고 승소로 확정되면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반발할 것”이라는 의견을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말한 것을, ‘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몰고 갔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최종 판결을 지연시킨 것은 ‘재판거래’가 아니라, 양국 간의 현안을 외교적으로 풀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것이었다. 대법원장 사법처리로 결국은 ‘지소미아 파기’까지 가게 된 것이다. 상론할 겨를은 없으나 ‘재판거래’, ‘양형거래’ 등의 극단적 어휘 선택이 사법부의 신뢰를 침식시킨다.

 

◆‘미국의 양형기준’을 한국에 참고하라는 조언

 

주권국가는 모두 나름의 양형기준을 갖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양형기준을 원문 그대로 한국에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법 정신’은 참조할 수 있다.

미국은 법인 등 조직에 적용할 형사판결 지침을 구비하고 있는 바, ‘미국판결위원회’가 제정한 ‘미국연방 양형 가이드라인’(The Federal Sentencing Guidelines) 제8장이 양형기준으로 기능하고 있다.

제8장은 법인 등 조직이 범죄행위를 예방, 탐지 및 보고할 수 있도록 처벌, 억제, 인센티브 부과 등을 규정하고 있다. 법인 등 조직이 ‘효과적인 법규준수 및 윤리 프로그램’ 요건을 충족한 경우 '과실점수'를 깎아 주고 있다. ‘사후적으로’ 효과적인 법규준수 및 윤리 프로그램을 법원에 제출할 경우 집행유예(Probation)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따라서 시민노동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삼성의 준법감시위 설치 및 운용을 ‘사후약방문’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미 연방법원 양형기준 제8장에서 말하는 ‘조직’은 ‘조직과 그 대리인’을 포함한다.

조직은 대리인(자연인)을 통해서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연방 형법은 대리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조직이 대리 책임’(vicariously liable)을 지도록 하고 있다. 미국 연방법상 대리인과 조직은 ‘공동 피고인’이 된다.

미국 양형기준은 조직에 대해 양형기준을 정한 것이기 때문에 대리인(개인)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은, 위 8장의 ‘조직’ 개념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조직에 대한 감형요소로 “자체 조사보고, 수사 등 협력 또는 책임 수용 자세(self-reporting, cooperation, or acceptance of responsibility)”를 들고 있다.

한국으로 말하면 ‘피해자와 합의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취했느냐 여부를 따지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가 실질적이고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는 정준영 부장의 발언은 미국 양형기준에 부합한다.

처벌보다 범법자를 사회의 구성원으로 복귀하도록 하는데 중점을 둔 ‘회복적 사법(司法)’(restorative justice)이 응보적 또는 징벌적 형사사법 보다 바람직하다는 것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피해의 회복, 당사자의 능동적·자발적 참여, 공동체의 역할 등이 결합될 때 회복적 사법이 가능하다.

우리 형법 제51조가 정한 양형 조건 가운데 ‘범행 후 정황’이라는 것이 있다. 피고인이 범행을 반성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등의 행위는 형의 ‘감경사유’가 된다. 

‘준법감시위원회’가 재발 방지를 위한 합리적이고 실효적인 기구로 기능한다면, 준법감시위의 설치 및 운용은 ‘감경사유’가 될 수 있다.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이 검증돼야 한다’며 ‘검증팀을 꾸리라’고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요구인 것이다.

 

삼성이 준법감시위윈회를 실질적·실효적으로 운영한다면 이를 ‘회복적 사법’의 일환으로 간주하겠다는 법원의 판단은 매우 전향적이라 할 수 있다. 준법감시위원회 설치 및 운영을 ‘양형거래’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기각된 항소심

 

2월 24일 이재용 부회장 파기심 공소유지를 맡은 박영수 특검은 이 사건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에 대한 기피신청을 냈다.

재판장의 재판 진행이 “양형 사유 중 특검이 제시한 가중요소(加重要素)는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경감요소(減輕要素)에 해당되지도 않는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 설치·운영 및 실효성 여부에 대해서만 양형심리를 진행함으로써” 집행유예를 선고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특검은 자신들이 낸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검찰 수사 자료,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 합병비율 부당 산정 의혹 관련 자료의 증거 신청을 재판부가 기각한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재판장이 ‘피고인 이재용=강요죄의 피해자’로 인식하는 프레임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용 부회장 ‘뇌물의 적극성’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파기 환송심 재판부가 상고심 취지에 반해 위법한 재판진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뇌물 공여사건에서 1심과 항소심 그리고 대법원(파기환송심)의 판결내용을 들여다보자. 1심에서 인정한 뇌물은 ”마필 구입비 34억,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 동계스포츠 후원금 16억“으로 모두 86억원이다.

항소심은 용역대금 36억원만 뇌물로 인정했다. 마필을 실제 사용한 것은 정유라가 맞지만 마필 소유권은 명의자인 삼성 측에 있었다는 것이다.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된 동계영재스포츠센터 후원금 16억원도 항소심은 뇌물에서 제외했다. 제3자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부정한 청탁’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특검 공소사실과 다르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하는 개별 현안의 존재를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법리상 승계 현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부정한 청탁’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범죄구성요건으로 하는 제3자 뇌물죄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수동적으로 뇌물을 건넸으며, 그에 따른 특혜나 이익을 얻은 것이 없다’고 판단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바뀐다. 대법원 전원힙의체 인정 뇌물액은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원, 정유라에게 제공한 34억원 상당의 마필,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 등 총 86억원이다. 대법원이 영재센터에 넘어간 16억원을 승계작업 지원 등을 대가로 한 ‘부정청탁’으로 인정하면서 뇌물죄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 '수동적 뇌물'이 아닌 부정한 청탁에 따른 '적극적 뇌물'이 된 것이다.   

대법원 파기환송심에서 항소심보다 50억원 늘어난 86억여원을 이 부회장의 뇌물 액수로 인정했기 때문에 징역형의 집행유예 상태인 현재 형량이 어떻게 바뀔지 법조계와 재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관적 의심', 기피 사유 안 돼

 

판례를 볼 때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이 인용된 비율이 극히 낮음(0.1% 이하)에도 불구하고 형사소송법이 법관에 대한 기피 제도를 명문화한 이유는 ‘재판의 공정성 및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형사소송법이 정한 법관 기피 사유는 대부분 당연칙이다. 구체적으로 i) 법관 자신이 사건 피해자인 때, ii) 법관이 사건 피고인 또는 피해자와 이해관계 내지 친족 관계가 있는 때, iii) 법관이 이 사건 수사, 조사 등에 참여한 때, iv)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등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이다.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는 신청자의 주관적 인식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렇게 판단할 만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이유’를 적시해야 한다.

정준영 부장판사가 과거나 현재 이 부회장 혹은 삼성과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될 만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없다면 이를 달리 증명할만한 객관적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그렇게 진행되면 불리할 것 같아서” 식의 주관적 추측은 기피 사유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특검이 기각될 것을 예측하면서 기피신청을 했다면, 여기엔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검에 우호적인 여론 조성’이 그 목적일 수 있다.

 

◆삼바, 삼성 합병 의혹... 양형 가중요소 될 수 없어

 

특검이 재판부에 증거 채택을 요구한 자료는 삼바 분식회계 의혹, 삼성 합병비율 부당 산정 의혹과 관계된 것이다. 이 부회장 죄질의 불량함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이들 자료의 증거 채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특검 측 주장이다. 양형 판단에 있어 ‘죄질 불량’은 가중요소이므로, 이들 자료가 증거로 채택된다면 파기 전 보다 더 높은 선고형도 가능할 수 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및 합병비율 부당 산정 의혹과 관련해 특검의 공소사실을 인용한 재판부는 없다. 이 부회장 사건을 심리한 파기 전 항소심 재판부는 물론이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이들 사안에 대해서는 특검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특검이 제출한 자료는 ‘파기환송심의 심리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양형 판단을 위한 심리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여전히 ‘심리 범위 밖’의 사안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뇌물의 적극성’을 이미 인정했다는 특검 주장은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승계작업’의 존재와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지만, ‘뇌물의 성격’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승계작업은 모든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문제이다. 묵시적 청탁과 ‘적극적 뇌물’의 조합은 모순이다. 상식적으로 묵시적 청탁을 위한 ‘적극적 뇌물 공여’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 묵시적 청탁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가 없었다는 뜻이다.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뇌물을 공여한 셈이 된다. 이 경우 뇌물의 대가(代價)성은 성립할 수 없다. 

 

◆에필로그

 

정준영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독립적인 준법감시기구 설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 8장을 참조할 것’을 조언했다. 여기에 ‘재판거래에 이은 양형거래’라는 프레임을 씌우려 한 것 자체가 특검의 오버라고 할 수 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재발방지를 위한 장치이며, ‘회복적 사법(司法)’(restorative justice)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따져보고 양형에 고려하겠다는 재판부 입장은 전향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검의 정준영 판사 기피신청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했던 항소심을 뒤집고, 이 사건 1심의 그것과 매우 가까운 판결을 내려 파기환송했기 때문이다. 박영수 특검으로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파기환송심 재판부와 법리 다툼을 벌일 수도 있으련만, 특검은 파기환송심 판사에 기피신청을 함으로써 한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이재용 뇌물공여 사건은 법리적으로, 상식적으로 특검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 돈 한 푼 받은 사실이 없다는 점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공여로 삼성 측이 딱히 경제적 이익을 얻은 것도 없다.

‘묵시적 청탁에 따른 적극적 뇌물 공여’나 ‘대가 없는 뇌물공여’ 모두 선문선답(禪問禪答) 성격이 짙다. 

한국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1항은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은 ‘증거재판주의’를 견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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