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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임.jpg

 

을지로 시대의 모교 서울사대부고

(제18회 김경임)

 

을지로의 서울사대부고, 언뜻 기억에 떠오르기만 해도 그 순간 가슴이 짠하다. 돌아오지 않는 우리의 순진무구했던 앳됨과 젊음이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내가 입학했던 1963년의 을지로 서울사대부고의 주변은 이렇다. 학교 옆 동북쪽, 지금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의 자리에는 한국 체육계의 명소 서울 운동장(속칭 동대문 운동장)이 자리 잡고 있어 예나 지금이나 인파로 바글거렸다. 모교 바로 뒤에는 그때 막 복개된 청계천 양옆으로 옛날 배오개 시장의 맥을 잇는 동대문시장과 광장시장, 방산시장, 평화시장이 맹렬히 활기를 띄면서 곧 닥칠 경제개발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학교 주변은 이른바 서울 중심부 신흥 상권의 요지였다. 눈치 없이 번잡한 상권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던 모교는 조만간 이전이 예상되던 때였고 우리들은 소위 사대부고 을지로 시대(1954-67년)의 거의 마지막 세대였다.

 

을지로 5가와 6가 사이에 위치했던 모교 사대부고는 원래 일제 강점기에 개교했던 경성사범대학의 옛교사를 물려받았다. 대로변의 정문과 운동장을 향해 남면한 고색창연한 2층의 벽돌건물은 중앙에 담쟁이에 덮인 고풍의 아치형 현관이 돌출해 있는 근대 건축물이다. 중앙의 현관을 기준으로 왼쪽(서쪽)은 남학생 교실, 오른쪽은 여학생 교실이었는데, 중앙의 현관 근처에는 선생님들의 공간인 교무실과 서무실이 동서를 철저히 가로막고 있었다. 남녀유별의 관습이 여전히 뿌리 깊었던 그 시대, 우리나라 최초라는 선구적이고 진취적인 남녀공학의 시범을 통하여 학생들은 일찍부터 상대성 원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을 것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실제로는 남녀학생이 멀리 떨어진 교실에서 각자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평소 상대성의 얼굴을 가까이서 구경하기도 어려운 폐쇄적이고 오히려 남녀유별이 엄격했던 분위기였다.

 

기억을 더듬는다면, 벽돌건물의 동쪽 입구에 잇대어 제법 큰 강당이 있었다. 더운 여름날에는 열어놓은 강당문을 통해 전국 고교 최고라는 레슬링, 유도반이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진짜같은 시범경기를 공짜로 관람할 수 있었다. 강당 뒤에는 독립건물로서 2층 건물의 도서관이 있었고 도서관 입구에는 1-2백년은 족히 될 만한 우람한 은행나무가 공부 잘하는 사대부고를 상징하고 있었다. 교사 뒷마당 왼편 끝에는 작은 별채의 음악실이 있어서 피아노 음률과 합창소리, 기독학생들의 찬송가가 흘러나와 후미진 북쪽 뒷마당을 언제나 밝게 채워주었다.

 

학교 북쪽의 뒷마당은 철조망 담을 사이로 미군부대와 접해 있었는데, 후에 알아보니 한국동란 직후 주둔한 주한미군 극동공병단이라 했다, 철모를 쓴 앳된 미군병사들이 학생들과 대면을 피하려는 듯이 눈을 내리깔고 보초를 서거나 땅바닥에 앉아 독서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우리 또래의 청소년들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공병단장이 새로 부임하여 학교를 방문했다. 남녀공학임에도 아무 트러불 없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대해 교장선생님께 사의를 표하고 남녀학생 약간 명을 용산의 주한미군 본부로 초대했다 한다. 영어회화반 학생들 십수명이 영어선생님 인솔 하에 미군이 보낸 버스를 타고 용산을 방문하여 점심을 대접받았는데, 생전 처음 나이프와 포크를 휘두르며 스테이크와 함께 빵까지 썰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모교의 이웃으로는 정문 오른쪽에 당대 최고의 초등학교라 했던 사대부국이 같은 울타리 안에 있었다. 동쪽 담을 접한 골목길 맞은편에는 북구식 분위기의 깔끔한 메디컬 센터, 즉 국립중앙의료원이 있었고, 그 뒤로는 서울 음대가 있었다. 아침마다 번쩍이는 승용차로 줄지어 정문을 통과해 등교하는 사대부국 초등학생들, 학교 동쪽 담 골목길을 따라 긴 머리를 휘날리며 등하교하는 아름다운 음대 여학생들과 흰 모자와 가운을 멋지게 걸친 메디컬 센터 여학생들의 모습은 자칫하면 궁상맞고 우중충했을 가난한 나라의 국립 고교 분위기를 높이 띄워 주었다.

 

매일 아침 등교시간 9시가 가까워오면, 동대문과 을지로 6가의 버스정류장에 내린 사대부고 학생들이 큼직한 사각형의 부고 도장이 찍힌 뚱뚱한 가방을 들고 교문을 향해서 떼지어 질주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는데, 길가던 사람들이 놀라서 발을 멈추고 구경할 정도였다. 교문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 일찍부터 규율반 학생들이 지키고 서있다. 타의 모범이 되어 뽑힌 이들 규율반원은 등교하는 학생들의 복장을 꼼꼼히 노려보고 초단위로 엄격하게 지각생들을 체크했다. 어쩌다 아침 일찍 등교하는 날이면 규율반원이 없는 대신, 어스름한 새벽을 가르며 창경원에서 발하는 호랑이의 근엄한 포효소리가 동대문과 종로, 청계천을 건너 사대부고 정문에까지 들려왔다. 전통과 초현실주의가 함께 했던 실로 격변의 그 시대였다.

 

매주 월요일 아침은 교장, 교감 선생님 임석 하에 전교생 조회가 강당에서 열렸다. 전국 고교 최고라는 사대부고 밴드반이 연주하는 웅장한 행진곡에 맞추어 남녀 전교생이 학년별, 반별로 줄지어 열석하고 선생님들이 입장하시면 곧 이어 애국가 제창이 있었다. 엄숙한 노신사 음악선생님이 단상에 올라 앨토와 베이스로 나뉜 전교생 혼성합창단을 향해 격렬하게 지휘봉을 휘두를 때는 카라얀이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한 가운데 와있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 교장선생님의 훈시는 대체로 이러했다.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모교의 교훈을 기억하며 격변의 시대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라.... 근엄한 훈시가 이어지는 동안 유독 남학생들에게만 관대하여 장모님이라 불렸던 싸나운 체육선생님이 여학생들의 열 사이를 훑고 다니며 매 같은 눈으로 여학생들의 옷차림과 용모를 살폈다. 긴 머리 짧은 치마는 아닌지, 화장품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점검했는데, 만에 하나라도 찍힐까봐 조마조마했던 순간은 그 시대 고교괴담이었다.

 

을지로 시대 우리의 매일 매일, 매시간의 수업시간 만큼은 엄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쩌다 떠들거나 조는 학생은 있다 해도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또한 수업이 이유 없이 바뀌거나 일찍 끝나는, 말하자면 땡땡이치는 선생님들도 단연코 없었다. 은사들 중 많은 분들이 대학의 교수로 옮기셨는데, 당시 선생님들 대부분이 석,박사 과정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만큼 수업의 학구적 수준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수업시간에 교과서와는 동떨어진 “용감한 신세계”와 같은 듣보잡 이야기로 학생들에게 크게 어필한 색다른 은사도 우리 곁에 계셨음은 행운이었다. 또한 매년 교생실습 기간에 만나는 뉴페이스의 젊은 선생님들과 그들의 실수만발한 신선한 수업도 커다란 자극이었다. 실로 천하부고의 명성에는 다양한 은사들의 공이 있었음을 이제 깨닫는다.

 

학교생활의 숨통을 터주는 것은 특별활동, 소위 특활이었다. 좋아하는 수업과 취미에 맞추어 골라서 참가할 수 있는 다양한 반이 있었고 게다가 남녀 합반이어서 용기백배 활기찼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남녀공학 특활경험은 지금의 사대부고 동창회가 그 어느 학교의 동창회보다도 월등하게 잘되는 이유임은 확실하다. 특활반 선배들은 저마다 신입생 교실을 방문해서 특활반을 소개하고 똘똘한 후배들을 뽑아갔는데, 제발로 들어간 것보다 선배들의 권유를 받고 들어갔을 때의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더하여 특활반 지도를 위해 모교를 자주 방문했던 열성파 대학생 선배들과의 친교의 기회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듣기로는 깡패클럽에서도 후계자 양성을 위해 유능한 후배들을 면접하고 선발해 갔다 하는데, 내가 아는 한, 그 시절 모교에 여학생 깡패클럽은 없었다고 단언한다. 특활반 중에서도 밴드부, 럭비, 레슬링 등 체육반, 영어회화반, JRC, 기독학생회 등의 사대부고 특별활동은 학교 밖에서도 명성이 자자하여 천하부고 명성에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모교에서 남쪽으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퇴계로의 대한극장 역시 우리들의 인격과 지적형성에 중요한 존재였다. 최고의 명화가 개봉되면 오전수업 대신에 선생님 인솔 하에 1,2학년 전체가 줄을 지어 걸어서 대한극장에 가서 조조할인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당시 우리가 본 여러 영화중에는 <벤허>, <남태평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지상최대의 작전(the longest day)> 등의 명화가 있었다. 수업시간을 대체하여 실시된 영화감상이지만, 인문,사회학 학습의 견지에서 본다면 수업보다 백배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시절 대한극장과 함께 우리들의 교양습득에 빼놓을 수 없었던 곳은 다양한 문고판이나 전집을 싼값에 고를 수 있었던 청계천 헌책방 거리와 함께 동대문 시장 안에 있었던 동시상영 동대문극장이었다. “고교생 입장 가”로 판정이 난 영화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외근 중의 규율반에 걸릴 것을 각오하며 막무가내로 밤늦도록, 또는 휴일 아침의 조조할인으로, 지루한 방학 동안 친구들과 함께 청계천과 동대문시장을 수없이 배회했다. 그 시절 동대문극장에서 보았던 <여로(the Journey)>, <페이톤 플레이스>, <슬픔은 그대 가슴에(Immitation of Life)>, <지상에서 영원으로>, <쿼바디스> 등등의 주옥같은 동시상영의 흘러간 헐리우드 명화는 오늘날 내 교양과 안목의 원천이라고 단언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을지로 모교시절의 추억 중에 가장 잊지 못할 즐거움은 수업이 끝난 후 늦도록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도서관이 끝날 무렵인 밤 9-10시쯤 교교한 달빛과 별빛을 보면서 집으로 향할 때의 만족감이다. 그런데 졸업이 가까웠던 고3의 어느 날 밤 도서관 문을 나서다 보았던 장면이 생각난다. 몹시 추웠던 늦은 밤, 도서관 입구의 키 큰 은행나무 높이 올라 어둠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기대어 데이트를 하던 동급생 남녀학생 두 명이 있었다. 입시공부라는 절박한 현실을 초월하여 공중에서 노닐던 그들, 마치 샤갈의 그림에 등장하는 듯한 아름다운 영혼이 그때 우리 주변에도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들의 그 시절은 갔다. 을지로의 모교 또한 내가 졸업한 다음 해부터 이리저리 옮겨 다닌 끝에 지금은 종암동 새로운 건물에 안착했다. 이러다 아주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 했던 모교에 대한 걱정은 놓아도 될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가 본 을지로 모교의 옛터는 한적한 훈련원 공원이 되어있다. 원래의 터였던 조선시대 군인들의 훈련원을 기리는 훈련원공원이 들어선 것이다. 모교가 이전된 후 한때는 헌법재판소의 청사로 사용되었지만, 헌재가 떠나고 난 이후 미군부대가 모교의 교정 쪽으로 확장된 것이 분명했다. 대폭 줄어든 교정에 들어선 훈련원공원에는 고려시대 여진족을 정벌했다는 장수 윤관(尹瓘)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 주위에는 어린 소나무들 사이로 허름한 벤치 몇개가 놓여있을 뿐, 을지로 시대 모교의 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붉은 벽돌의 교사도, 강당도, 도서관 건물도 보이지 않고 그 앞의 우람했던 은행나무는 베어진 것이 확실했다. 교정 동쪽에 있던 사대부국 건물도 사라졌는데, 아마도 확장된 을지로 대로에 흡수되었을 것이다.

 

미군부대도 작년 말 평택으로 이전되어, 방치된 그 부지 또한 지금은 폐허 일보직전에 있다. 들여다 볼 틈새 하나 없이 높은 블록 담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군부대 터는 철문이 굳게 잠겨있어서 그 안의 모습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데 블록 담 위로 삐죽이 보이는 예전의 군부대 바라크 건물의 지붕 뒷편에 무성한 플라타나스 나뭇잎 사이로 낯익은 벽돌건물이 살짝 보인다. 확인하기 위해 이웃 평화시장 건물 3층 옥상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놀랍게도 폐허가 된 미군부대 부지 안에 모교의 낡은 2층 벽돌건물의 뒷모습이 보인다. 방치된 채였지만, 온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자주색 지붕위에 난 작은 굴뚝들도 그대로이며 뒷마당의 작은 음악실까지도 남아있다. 이 건물에서 우리 1,2,3학년 학생들이 3년을 보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은 건물이다. 그러나 이 옛스런 건물은 지금은 사적으로 보존되어 있는 혜화동의 문예진흥원 청사(구경성제국대학 본관이었고 전 서울대 문리대 본관) 건물의 축소판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건축가 박길용(朴吉龍)의 몇 채 안 남은 근대 건물 중의 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비범한 국립고교의 내력을 지니고 한때는 헌법재판소의 청사였던 이 고아한 건물은 서울시 문화유산으로 영구히 보존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기대를 가져볼 만도 하지 않을까?

 

돌이켜 보건데, 천하부고의 명성을 드날리며 십수년 존재했던 을지로 시대의 이 붉은 벽돌건물은 사대부고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특별히, 저녁 무렵 석양빛에 휩싸인 검붉은 벽돌 건물의 실루엣을 많은 동문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동급생은 이 모습이야말로 우리들이 모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라고 졸업한 해의 교지에 고백했다. 그 시절 청계천과 을지로의 매연이 뒤섞인 검붉은 석양 속에서 처절하게 아름다웠던 모교의 모습은 마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짙은 일몰을 배경으로 포연 속에 사라지는 미국 남부의 웅장한 이미지와 겹쳐진다. 왜일까? 이것이야 말로 사대부고 을지로 시대의 주인공인 우리들의 이미지이며 자화상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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