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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윤석남의 나무와 여성이야기

김윤주  / 기사승인 : 2022-01-25 15: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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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목재에 그려진 여성들의 얼굴에서 와글와글 거친 목소리, 한숨 쉬는 소리, 악쓰는 소리,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부터 어머니, 여성을 주제로 작업을 해 온 윤석남. 그에게 예술이란 고상하고 고차원적인 것이 아니다. 여성의 삶에 대한 사유와 체험에서 비롯된 실존의 문제이며, 자신의 뿌리 찾기, 강력한 자의식에 근거한 정체성 탐구이기도 하다.

 

 

자생적 예술가의 전형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 미술은 보통 1986년 김인순, 김진숙, 윤석남 세 사람이 연 동인전 ‘반에서 하나로’를 기점으로 삼는다. 이 가운데 윤석남은 페미니스트 잡지 의 발행인을 맡는 등 활발한 여성 문화운동을 펼치는 한편 여성의 삶을 평면 작업과 설치 작업을 통해 꾸준히 형상화해 온 작가이다. 

 

‘어머니, 자아 정체성, 여성사, 돌봄의 윤리’라는 단계로 진행된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여성의 이야기’가 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가 작업을 삶과 결부시킬 수밖에 없는 배경이기도 했다. 경기도 화성의 외진 작업실에서 그가 일관되게 모색해온 ‘여성’이라는 주제는 그에게 ‘자존적 주제’였으며 그 작업은 일종의 ‘굿’과 같은 것이었다. 고통을 짊어지고 시대의 질곡에 지쳐 쓰러져간 여성의 혼을 달래는 작업. 그리고 정신적인 방황, 자기를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의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을 그림으로 쏟아놓는 굿이다.  

 

 


윤석남은 미술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고 그에 버금가는 제도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마흔에 그림을 시작했고 1982년 첫 개인전을 연 늦깎이 작가이다. 결혼을 하고 8년이 흘렀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떨쳐버리지 못했고, 존재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36세에 서예를 시작했다. 자기표현에 대한 강한 욕구를 발견하고 나서는 화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 자기 안에 넘치는 물음과 고통을 다 쏟아놓을 수 있는 통로로서의 작업이었다. 

 

역사가, 여성의 삶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사람이 무엇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자 그의 정신적인 방황과 광기가 치유되었고, 그 후 미술은 그에게 존재 의미가 되었다. 체계적 교육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오히려 분야를 넘나드는 풍부한 독서와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라는 긍정적인 동인이 되었다.

영원한 화두, 어머니 그리고 여성

 

 

 


윤석남은 격변기 민족의 회한과 고통을 가장 혹독하게 겪은 여성, 가부장제에 희생된 어머니를 주로 그려왔다. 그가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는 페미니즘이라는 말조차 없었다. 1979년도에 그가 처음 그린 것이 그의 어머니였고, 시장의 어머니들이었다. 미친듯이 드로잉을 했지만 그리면서 마음이 편안했다고 한다.

“사실 어머니를 얘기하지 않고서는 내 얘기를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마치 통과의례를 거치는 것처럼.”


그는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나 해방 전까지 만주에서 생활했다. 한국 최초의 극영화를 촬영한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인 윤백남이 그의 부친. 하지만 윤석남은 유명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원정숙을 더 깊이 존경한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1954년 병으로 훌쩍 세상을 떠났고, 살림밖에 몰랐던 어머니는 서른아홉의 나이로 별안간 6남매를 책임져야 했다. 당시 어머니가 인내해야 했던 시간과 고통의 무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어머니는 그런 가운데 강인함으로 묵묵히 6남매를 키워냈다. 

 

 

 

작가적 삶에서 그의 어머니는 각별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림으로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개인사를 통해 이 시대 여성의 삶을 대변하고자 했고 <어머니의 눈>전으로 그는 제8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한다. 그의 작품들은 코끝을 시리게 했지만 <빛의 파종>, <늘어나다> 등 이어지는 개인전 작품들을 통해 여성에게 단지 슬픔과 고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강인함, 욕망, 거칠고 따뜻함이라는 양면적인 가치들도 있음을 깨닫게 만들었다. 편안히 머무를 수 없었던 자신의 공간, 갈등과 욕망을 쇠갈고리처럼 날카로운 재료와 핑크색의 히스테릭한 화려함으로 표현했고(<핑크룸>), <늘어나다>, <꽃신>등의 작품을 통해서도 여성의 욕망을 드러냈다.

 

 


<빛의 파종>전의 대표작 <999>는 999개의 여성 목상을 설치한 작품이다. 땔감 같은 나무 기둥들에 그려진 한복 차림의 여성들은 웃기도 하고 슬픈 표정을 짓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999는 천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숫자. 그 하나는 다른 방에 전시되어, 999개 중 어떤 하나와도 대체 가능하다.


“전통적으로 1,000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라고 해요. ‘천수를 누리다’라는 말이 있듯이. 여성의 불완전한 삶을 1,000에서 하나 모자란 것으로 보았어요. 1이라는 격차를 줄이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 여성 하나하나의 가치가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죠.” 그는 시간이 더 흘러야, 인위적으로 더 노력해야 1,000이라는 숫자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등은 육체적으로 고생스럽지만 정신적으로 당당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그의 목상 앞에 서서 그 가치를 깨닫는 관객 한 명을 통해서 그 수는 충만해질지도 모른다. 

 


나무에서 여성의 피부를 느끼다


윤석남의 작업은 여성, 어머니라는 모티프와 함께 나무라는 소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나무’를 만나게 된 데에는 아주 구체적인 동기가 있었다고 한다. 1990년 브롱스 미술관의 남미작가전에서 만난 한 젊은 작가의 작품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나무판에 혁명가 체 게바라, 민주인사 로메로 신부 등 남미 독립을 이끈 6명의 인물을 마치 행진하듯 입체적으로 새긴 작품이었는데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내가 어떻게 평면에서 튀어나와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나에게 개입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였어요. 내 작업에 설치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이전부터 더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싶은 소망이 먼저 있었던 것입니다. 설치 작업은 연극적인 효과, 강렬함이 있어요.” 

 

 

 

 

귀국 후에는 선조 여성 예술인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가 허난설헌의 생가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 감나무 밭에 떨어진 가지 하나를 주워 와 나뭇가지에 허난설헌을 새겨보았다. 나무를 손질하면서는 마치 나무가 여성의 피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는 단단하고 다루기 어려워 흔히 여성적 소재는 아니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윤석남은 그 감나무 가지에서 따뜻함과 함께 여성의 피부를 느꼈다. 그 다음부터 목재상에 가서 버려진 나무 조각, 쓸모없는 나무를 주워다 작업하기 시작했다. 남미작가전에서 보았던 나무 조각의 강한 인상, 생생하고 입체적인 표현과 감나무 가지의 촉감이 평면 작업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그에게 탈출구를 제공해 준 것이다.

 

 


“목재상에 가보니 버려진 나무가 아주 많은 거예요. 나무의 결이 부드럽고 쭈글쭈글했는데 늙은 여자 피부 같았어요. 표면에 손을 대지 않고 그 위에 얼굴을 그리면 여자가 되었지요. 내가 인위로 만들 수 없는 부분들에서 얼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얼굴을 그리면서 대화를 나눴고 눈을 그리고 나면 마치 나무가 스스로가 여성이 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윤석남은 버려진 나무가 가지고 있는 상처, 벌레 구멍, 검은 얼룩과 옹이들을 기꺼이 이용했다. 그의 작업은 자연과 대결하는 자세가 아니라 자연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보통의 조각가들이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결함을 그대로 살려 역사의 질곡 속에 고통 받고 억압받은 여성들의 상처를 표현했다. 나무에 번지는 물결무늬, 주름살 진 피부, 매끈하지 않은 것이 그에겐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작업의 규모가 커지자 폐목만으로는 크기와 물량이 부족해져서 현재는 정제된 나무도 사용하고 있다. 주로 쓰는 ‘마티카’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나오는 무른 나무로 잘 오려지고, 색을 잘 받아들인다. 그의 작업실 한 쪽에는 방대한 물량의 나무와 주워 온 것들이 쌓여 다음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저작권자ⓒ 우드플래닛.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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