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선농문학상

조회 수 13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Basket of fruits and pineapples, Chagall

 

 

 

<題李凝幽居  이응의 시골 집>

 

閑居少隣幷(한거소린병)      한적한 집, 근처에 같이 사는 이웃도 별로 없고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풀밭 오솔 길은 가꾸지 않아 황량한 정원으로 들어가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는 연못 가 나뭇 가지에 잠들고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스님은 달빛아래 문을 두드린다  

 

                                   -------

 

 

過橋分野色(과교분야색)     (발걸음 돌려) 다리를 지나니 들빛이 둘로 나뉘는 듯          
移石動雲根(이석동운근)     흐르는 구름 따라 돌도 자리 옮기네                
暫去還來此(잠거환래차)     내 잠시 갔다가 다시 돌아와                    
幽期不負言(유기불부언)     함께 지내자한 약속 저버리지 않으리     

 

** 교외 한적한 곳에 은거하는 벗 이응(李凝)을 찾았다가 주인의 출타로 헛걸음을 하고 돌아오며 승(僧), 가도(賈島)는 그 섭섭한 정을 시로 읊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지지난 일요일 (3/10)  다시 Summer time이 시작하던 날, 눈을 떠보니 아침 8시였다.

늘 하는대로 교당에 간단한 음식을 하나 만들어 가야하는데 큰일났다.

대개 아침 7시에 일어나 음식 만드느라 3시간을 난리 법석 치고, 30분 씻고 바르고, 10시반에 집을 나서는데 그날은 한시간이나 늦어버렸다.

 

이럴까봐 걱정되어 전날밤 자기전에 시계도 잘 맞추어 놓았다.
내일부터 몇달동안 한시간 앞 당겨 사는 거라고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해놓았건만 마음 따로, 몸 따로 행동한다.
마치 나쁜 꿈을 꾸는것처럼 설마하던것이 딱 걱정하던 그대로 되어버렸으니 어이가 없고, 한편 우습기도 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억지로 침착하려고 애쓰면서 당면을 찬물에 담그고, 양파를 벗기고, 당근을 벗겨 썰었다.

버섯을 따뜻한 물에 담갔다가 썰어 양념에 재고, 피망을 채치고, 바쁘게 돌아갔다.

 
이럴 경우에 대비해서 전날 밤 양파라도 하나 벗겨 놓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턱도 없는 소리다. 
전날엔 손 하나 까딱하기 싫다.
 
옛날에 친구들이 집에 왔을때 날은 어두어지고 배도 고픈데 연탄불이 시원치 않아 밥이 늦어지면 나는 들락날락 안절부절이였다.

그러나 엄마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건 뱃장인지, 오랜 연륜으로 얻은 경험인지 하여튼 "Everything will be OK.  Don't worry."

속이 타는건 엄마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처럼 발만 동동 구르는건 하나도 도움이 안된다는 식이였다.

 

나중에 보면 엄마가 다 옳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헤까닥 정신을 놓치말고 줏대있게 꿋꿋이 밀고 나가야 한다는 걸 나는 그때 엄마에게서 배웠다.  

 

잡채는 만드는 법은 간단하나 양이 많으면 일도 많고 복잡해진다.

사람이 많으니 0.5 파운드 짜리 마른 당면 다섯 뭉텅이에 야채도 넣어 커다란 대야만한 양푼으로 하나 가득 만들어 가도 넉넉치 않다.

브라질, 페루, 베네주엘라 등지에서 온 사람들은 먹고나서 어머니에게까지 맛보인다고 가능하면 집에 조금씩 가지고 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교당에도 좀 남으면 좋아한다.  

 

잡채를 이미 두세번 이렇게 대량으로 만들어 보았지만 좀 더 잘 해본다고  전날밤,  internet에 들어가 보았다.

남들 하는것도 보고 배워서 나쁠것 하나 없다.  무엇이든 항상 개량의 여지 (room for improvement)는 있는 법이다.

어디 요즘 한국의 신식, 젊은 사람들은 또 어떻게 만드나 들어보자.

 

김치 만드는 법을 잘 가르쳐줬다고 남편이 감탄하는 여자가 올린 잡채 만드는 법을 읽었다.
요령을 말해 주는데 먼저 당면을 찬물에 한 20분 담갔다가 삶는데 물에 간장 1/2컵, 식용유 두어 술을 넣으란다.
그렇게하면 당면이 나중까지 부드럽고 간이 조금 밴다고. 

 

정신없이 바쁜중에 그래도 잊지않고 하라는데로 간장과 Olive oil 을 넣으려니 갑자기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들통만큼이나 커다란 냄비로 물이 절반이 넘어 한강수인데 거기다 그냥 간장과 기름을 쏟아붓다니...  이게 뭣하는 짓인가?

당면은 이미 잔뜩 불어 부들부들, 수양버들처럼 유연하기 짝이 없는데 아뭏튼 하라는데로 간장 두어 숟갈, 기름은 작은 술 하나로 넣는 시늉만 했다.

 

하지만 다 불은 당면을 다시 또 푹푹 삶을 이유가 없으니 끓는 간장, 기름 물에 넣었다가 금방 건지는, 이른바 삶는 시늉만 또 한다.

버섯은 간장 양념에 재어 놓았고 당근, 양파, 피망등도 볶을때마다 소금 간을 대충 해서 양념은 거의 다 되었다.

 

그런데 설탕을 좀 넣으란다.  하여튼 요즘 젊은 애들은 설탕을 너무 좋아한다.

잡채에 설탕 넣으면 그렇잖아도 익은 양파때문에 좀 들큰한데 더 들큰해질꺼다.  못 들은척 넘어간다.

 

그런데 또 크게 강조하는 것이 삶아낸 당면을 절대로 찬물에 헹구지 말라는 거다.

뜨거우니 조심하라면서.  하긴 물에 씼어버리면 간장과 기름 넣고 삶은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가뜩이나 시간은 없는데 그 많은 뜨거운 당면을 손도 못대고 일각(一刻)이 여삼추 (如三秋)로 조금 식기만 기다리는 동안

할일없이 볶아낸 야채나 조금씩 슬슬 얹으면서 비로서 후회했다.

괜히 더 잘해본다고 긁어 부스럼으로 이 사람 식을 따랐구나.  지금껏 내가 만들던 방법도 하나 나쁘지 않았다.

 

요즘 당면이 아주 잘 나와서 물에 담그지 않아도 부드럽게 잘 삶아진다. 

익으면 건져서 찬물에 헹구어 물을 쭉 빼면 야들야들, 끈기있고 유연하다.  불어터진 당면이란 옛말이다.

 

볶아 놓은 여러가지 야채를 넣고 소금, 깨소금, 간장, 참기름 조금 넣고 무치면 멋도 있고 맛도 있는 숙채 (熟菜) Noodle Salad가 된다.  

냉장고에 두고 한 이틀 먹어도 당면이 불지도 않고, 딱딱해지지도 않고 ...      맛이 있다. 

옛날 궁중 요리책엔 물에 불렸다가 볶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팬에 붙기도 하고 또 기름이 들어가니까 느끼하다.

 

옛날에 엄마는 내가 궁금해서 잡채는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으면 "너는 그게 좋으냐?"하며 아주 심드렁하게 대답하셨다. 

엄마는 한번도 잡채를 만들지 않았는데 내 생각에 어렸을때 너무나 많이 보아 아주 질리고 물리신 것 같았다.

그때 외가는 먹는 것이 넉넉한 부잣집이라 엄마가 친정에 다니러 갈때면 꼬마 시동생들까지 온 식구가 사돈댁에서 가져오는 음식을 기다렸단다.

 

그렇게 살던 엄마가 양반이라는것 밖에는 먹는것도 부족한 집으로 시집을 오셨다.

먹는것뿐 아니라 신랑 신부가 따로 거처할 방도 없었다.

시부모님은 벌써 돌아가셨고, 시할아버지, 할머니, 시아주버니 식구들, 다 함께 사는데 어른들 진지를 푸고 나면 며느리들에겐 남는 밥이 없었단다.

 

어쩌다 친정엘 가면 걸신 들린것처럼 먹는데 나는 아직 없었고, 그때 애기였던 언니가 무 짠지만 하도 먹어서 외갓집 식구들이 웃었단다.

언니는 지금도 이 이야기만 나오면 화를 막 낸다. 

 

그렇게 혹독한 시집살이에 육이오 사변까지 거치고도 잡채가 별로이셨으니 얼마나 진력이 났던 음식인지 상상이 간다.

그래서 집에서 엄마하는 것은 한번도 못보고 미국에 와서야 책을 보고 배웠다. 

 

옛날 어느 책에서 간장을 많이 넣으면 색이 검게 되니 소금으로 간을 하라고 했다.

절 음식처럼 고기 하나 없이 야채만 넣은 내 잡채는 맨끝에 가서 소금으로 간을 살짝 맞추면 갑자기 그윽한 풍미가 살아난다.

투명하게 가느다란 국수에 느끼하지 않게 살짝 볶은 야채를 섞고, 볶은 통깨와 후추, 소금으로 맛을 낸 잡채는 Diet Food 같아 더 인기다.

 

그런데 오늘, 뜨거워서 만지지도 못하겠는 당면은 흐믈흐믈, 힘 하나 없고 보프라기 잔뜩 일어난 털실 덩어리처럼 서로 단단히 뭉쳐져 있었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였다.
더 맛있게 생기기는 커녕 모양만 봐서는 긁어 부스럼의 커다란 근심 덩어리였다.   
 
야채와 간장, 기름 등의 양념으로 엉겨붙은 뜨거운 국수 가닥들을 조금씩 풀어 헤쳐  간신히 마무리를 지었다.
국수는 쫄깃한 맛이 전혀 없고 힘없이 흐믈흐믈, 좋게 말해서 부드러웠다.

사람들은 인사 치례인지 몰라도 더 맛있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느라  분주한 속에서도 냉장고에 남은 잡채 국수를 한가닥 떼어 입에 넣어 보았다.

그렇게나 흐믈거리던 것이 하룻밤 냉장고에 있는 사이에 벌써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내 식으로 만든것 보다도 더 딱딱했다.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니라.   다시는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것이다.

 
힘도 별로 안들고, 또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의미로 요즘 잡채를 자주 만들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Who knows?   She might like the Japchae I make now. 

 

 

 

 

 La Rencontre (The Encounter, the meeting, 뜻밖의 만남 ), Marc Chagall

 
(3/2013)
 
 

  1. 17회 이강선 - 본향

    Date2021.09.27 By사무처 Views81
    Read More
  2. 나의 영원한 벗 근식이

    Date2021.09.27 By홍경삼 Views162
    Read More
  3. 포스트 코로나 2

    Date2021.09.24 By신비 Views50
    Read More
  4. 포스트 코로나 1

    Date2021.09.23 By신비 Views43
    Read More
  5. 오늘 아침에 쉽게 천불 벌었다.

    Date2021.09.22 By홍경삼 Views78
    Read More
  6. 앗, 바람 났네

    Date2021.09.22 By신비 Views49
    Read More
  7. 정 많은 집 / 신현숙

    Date2021.09.21 By신비 Views62
    Read More
  8. 아~ 잊고 싶은 그 눈빛

    Date2021.09.20 By홍경삼 Views140
    Read More
  9. 사랑이 넘친 것인가? 어린 것인가?

    Date2021.09.18 By홍경삼 Views78
    Read More
  10. 전복죽

    Date2021.09.18 By홍경삼 Views62
    Read More
  11. 감명 깊은 건효의 생일

    Date2021.09.18 By홍경삼 Views65
    Read More
  12. 풍선 껌

    Date2021.09.16 By신비 Views67
    Read More
  13. 바람 소리

    Date2021.09.15 By신비 Views57
    Read More
  14. 夫 唱 婦 隨 (18회 용 선 식)

    Date2021.09.15 By맑은바람 Views99
    Read More
  15. 19회 김종성 - 단 한번 밖에 없는 일

    Date2021.09.13 By사무처 Views78
    Read More
  16. 19회 김종성 - 안개 낀 날

    Date2021.09.13 By사무처 Views54
    Read More
  17. 19회 김종성 - 생각을 정리할 때

    Date2021.09.13 By사무처 Views69
    Read More
  18. 19회 김종성 - 새그림자

    Date2021.09.13 By사무처 Views71
    Read More
  19. 19회 김종성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Date2021.09.13 By사무처 Views66
    Read More
  20. 구름따라 움직이는 돌

    Date2021.09.13 By이신옥 Views13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