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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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보약  *
 
 
내가 이 세상에 나와서 처음으로
 
내 몸이 처한 공간을 안타까워하며 서글펐던 때는
 
혈육 중 어느 한 사람도 자리 할 수 없었던 외딴 땅,
 
남의 집 리빙룸에서 웨딩마치도 없는 결혼식을 올리던 때와
 
그 두번째는 아버님의 부음을 낯 모르는 이에게서
 
영어로 전해 듣던 순간이었다. (전보를 전화로 전달) 
 
 
 
첫번째 경우, 나는 전생에 무슨 죄가 그렇게도 많았던가 비감한 기분이었고,
 
두번째는 이승에서 지은 또 하나의 죄과가  그 어느 세상에서
업보로 나타날 것인지.. 망연히 가슴 저려했었다.
 
 
 
아버님 생시 그 병상 머리맡에서  뜨거운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한 내가
 
이제 아버님에 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뵈온지 오래되는 아버님은  그 어느 먼 곳에 여행 중이신 것도 같으며
 
아직도 내가 사는 이 세상 한 끝에서 이 불효 여식을 염려하고 계신 것만 같다.
 
 
 
내가 효하지 못 했음을 조금이라도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은
 
내게 주어진 삶을 아끼며, 어떤 어려움에서도 자포하지 않는 용기와 성실로
 
한 세상을  겸허하게 살아 나가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지난 날 아버님의 꾸중은 내가 나를 때릴 수 있는 채찍이 되었고,
 
그 교훈은 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 되었다.
 
 
 
"운경아!  이 세상에서 너를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결코 물질이 아니다.
 
돈이 육신의 고통을 치료해 줄 수는 있으나 천만금을 주어도 ..
 
마음의 평화를 파는 곳은 한 군데도 없어.
 나는 네가 물질 만능의 나라,  형이하학이 더 고조되어 있는 그 곳에서..
높은 소원을 잃고, 그냥 저냥 그 물살에 떠 밀려가는 것을 본다.
 
 
부디 잊지 말아라!  너는 동양의 신비한 정신의 비를 맞고,
그 이슬을 머금고 자란 것이야.
 네 속에 너를 흐리우려는 그 탁한 물결을 밀어낼 힘이
 
약해지지 않도록  항시 힘 쓰거라!
 
옳고 그름을 가릴 수있는 분별력있는 눈을 가지고,
 
서둘지 말며 주위의 작은 것에서조차 관조하는 자세로
 
맑고 아름다운 너의 삶을 만들거라! "
 
 
 
내가 미로에서 서성일 때마다 이런 아버님의 음성이
 
한 줄기 빛처럼 나를 이끌어내 주시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이 사회에 적응하던 초기,
 
그 가르침에  큰 회의를 가졌던 적이 있다.
 
 
 
"사람이 돈! 돈! 하면 천해지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아버님의 세대엔  돈이 없어도 "이상":에 배 부르고, 우러름  받던 세대였으며..
 
가난한 선생  집 툇마루에  쌀 가마를 몰래 놓고 가던 선심도 있었다지만..
 
우리 세대엔 "돈" 을 먼저 안 사람이 현명한 사람,
 
앞서 가는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은가.
 
 
 
왜 나에게 생활 수단의 기본 도구인 "돈"에 대해서
 
무지하도록 눈을 가리워 두셨던 것인지.
 
아둔한 내가 돈 1불의 가치를 스스로 체험하고 깨닫기엔
 
꽤 오랜 시간의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버님을 원망해보던 것이 얼마나 우매했던가
나는 지금 생각해 본다.
 
"너의 세대엔 돈에 대해 어차피 본능처럼 알게되며
 
그것을 숭상하고 그 매력에 질식되기 십상이다.
 
내가 너에게 할 일이란..  돈의 위력을 일러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돈,  그 뒤에 올 병폐를 막아낼 면역을 길러주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셨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부잣집에서 자기 아이가 일생을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서
보약을 지어 먹이는 듯, 가난한 우리 아버지는 자녀들이
험한 세상에서도 오염되지 않는 맑은 정신을 가지고 
 
 바르게 살아 나가기를 바라시어 예방 주사처럼 철 찾아
아버지 특유의  조제 주사약을 투입하셨던가 보다.
 
 
 
오랜 동안 갈고 찧어 손수 보약을 만드셨던 수고도
이제야 헤아릴 수있을 것 같다.
 
나는 그 때 철 없이 주사 바늘을 피하려 하였고,
그 보약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님의 그 노력과 수고와 정성이
 
내가 정신의 빈곤에서 피해 나올 수 있는 길과
 
영혼의 기아를 달랠 수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것이리라.
 
 
 
이제 중년의 고개에서 자녀를 기르며,  모성애를 키우면서..  
나는 다시금 감사드린다.
 
녹용보다도 인삼보다도 더 진한 내 아버지의 그 보약에..
 
그 효험이 내가 나이를 더해 갈수록
 
더욱 용한 것으로 나타날 것을 믿고 바란다.
 
 
 
또한 부모는 선택해서 가질 수 없음에도 ..
 
어떻게 나같은 것이 정신적으로 부유했다 할 수 있는 집안에
 
태어날 수 있었는지.. 참으로 감사하며...
 
그러나 그 재산을 크게 물려받는 노력에 게을렀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아버님 8주기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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