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어림도 없는 얘기다."
이건희 컬렉션의 진짜 가치
"홀린듯이 열정에 차서 모았다"
"돈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4대 요건 다 갖춘 '컬렉션의 정석'
이번 기증 목록을 보고 안 교수가 가장 반긴 것은 불교 불화인 '천수관음보살도'다. 그는 "한국 미술사에서 불화가 매우 중요한데도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불화가 없어 늘 안타까웠다"며 "이제야 빈 자리가 메꿔지게 됐다. 국립박물관이 비로소 부끄러움을 면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건희 컬렉션은 절대로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며 "좋은 컬렉션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4가지 요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화재와 미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냥 관심이 아니라 말그대로 지대한 관심이어야 한다.
둘째, 좋은 작품과 중요한 문화재를 알아보는 높은 안목이 있어야 한다.
셋째,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바로 결정할 수 있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소장할 기회가 왔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놓치는 경우도 많다.
넷째, 그걸 확보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안 교수는 "간송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이건희 회장은 그 네 가지 조건을 갖추고 수집했다"며 "절대로 돈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 소장가가 평생 들인 노력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 이번에 우리 사회가 크게 배우고 갈 부분을 놓치고 마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번 기증에 대해 국가와 정부와 국민이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하고 이에 대해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생각하는 합당한 예우란 컬렉션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국민이 알게끔 전시를 잘 하는 일이다. 도록 역시 최대한 성의 있게, 명품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안 교수는 "이번 기증을 통해 온 국민이 문화를 즐기고 누리는 것을 넘어서 문화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정부와 각 미술관이 그 노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우리 모두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홀린 듯 열기에 차서 모은 사람"
이 원로 예술가의 발언은 "내겐 이건희 회장은 사업가라기보다 어딘가 투철한 철인(哲人)이나 광기를 품은 예술가로 생각되었다"는 이우환(85) 화백의 말과 일치한다. 이 화백은 문예지 '현대문학' 3월호에 '거인이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추모한 글을 썼다. 이 글에서 그는 "이건희 회장은 한국의 미술품이라 하더라도 작품의 존재감이나 완성도가 높은 것을 추구하며, 언제나 세계적인 시야로 작품을 선별했다"며 "특히 한국의 고(古)도자기 컬렉션을 향한 정열에는 상상을 초월한 에로스(사랑)가 느껴진다"고 쓴 바 있다.
이우환 화백은 평소 주변의 지인들에게 "이건희 회장은 국보같은 사람"이라고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화백은 "시간이 갈수록 그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라며 "이 회장은 정말 유별나고 독보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젊은 작가까지 배려했다
윤 관장은 "사람들은 이건희 컬렉션의 물량을 보고 먼저 놀라고, 나중엔 그 수준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저는 그 수집품의 다양성을 보고 더 놀랐다"고 전했다. 내로라하는 작가들은 대표작은 물론 젊은 작가들까지도 배려해 수집했다는 설명이다. 윤 관장은 "보통 컬렉터들은 명품 위주로만 모으는데 이건희 컬렉션은 그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이는 다양한 예술가들에 대한 배려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미술계를 폭넓게 본 시각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컬렉션"이라는 설명이다. 윤 관장은 "작품 목록을 보면 다양한 작가 차원에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균형적 안목으로 폭넓게 수집한 것을 볼 수 있다"며 "앞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보존과 연구, 전시의 책무를 다하는 데 온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