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100조원, 지난 3월 11일 뉴욕 증시에 데뷔한 쿠팡의 시가총액이다. 2010년 30억원으로 창업된 스타트업이 단숨에 삼성전자에 이어 국내에서 두번째로 큰 회사가 됐다. 쿠팡의 태풍 같은 성장은 혁신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혁신은 사회의 기업에 대한 약속이다. 높은 효율을 위한 전폭적인 협력이다. 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기업은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한다. 혁신은 무엇인가? 쿠팡의 창업자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혁신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정의한다. 뒤집어 보면 문제는 혁신의 동기가 되는 셈이다. 시총 100조원의 쿠팡은 어떤 문제가 있길래 미국이라는 사회를 택했을까? 그리고 미국이라는 사회는 어떤 약속을 쿠팡의 혁신에 해 줬을까?

 

장기적 기업가치의 실현은 쿠팡의 가장 큰 문제였다. 창업자는 단기적인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 성장전략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영권의 안정이 필수다. 뉴욕 증시는 이를 위해 차등의결권을 줬다. 경영권 안정의 문제가 일거에 해결됐다. 김범석 의장은 복수 의결권 행사가 뉴욕행에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2%의 지분으로도 58%의 의결권을 가져 경영권을 보호받게 됐다. 

중국, 인도를 비롯해 런던, 뉴욕, 나스닥 등 세계 5대 증권거래소는 혁신기업의 상장을 유도하기 위해 모두 이 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법과 한국거래소 상장 규정 모두 복수 의결권을 허용하고 있지 않고 있다. 장기적 가치 창출과 경영권 안정이라는 문제의 해결을 약속 치 않고 있는 셈이다. 혁신의 동력이 현저히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쿠팡은 매년 조(兆) 단위의 적자를 내면서도 꿋꿋했다. 2010년 8월 이후 단 한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누적으로 발생된 4조5000억원의 적자는 투자자들의 돈으로 메웠다. 2018년 이후는 손정의 회장의 추가 투자가 없어서 더는 못 버틴다는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쿠팡은 당장의 이익을 떠나 덩치를 키웠다. 규모의 경제가 통할 것이라는 아마존 식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그럼에도 적자는 문제다. 회사에 돈을 마르게 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어렵게 한다. 한국에서 적자 기업은 자금을 조달할 길이 없다. 가장 가깝다는 처갓집이나 친구도 손사래를 친다. 상장도 막혀있다. '적자는 의도 된 투자'라는 창업자의 문제를 보는 전략을 미국이라는 사회가 알아 줬다. 구글을 키운 미국의 세콰이어 캐피털은 1억 달러, 세계 최대의 자산 운용사 블랙록은 3억 달러를 초창기에 쏴 줬다.

쿠팡이 누적 적자로 고생할 때 30억 달러를 수혈 해 준 곳도 소프트뱅크였다. 미국 증시는 적자를 보는 눈이 달랐다. '소비자가 쿠팡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하게 만들겠다'는 창업자의 장기적 성장 전략이 실현될 수 있는 충분한 실탄을 공급해 줬다. 이제 쿠팡은 혁신 할 길만 남았다, 사회의 이해와 지지를 바탕으로.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돕는 사회의 약속이 혁신이라면 ESG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기업의 약속이다. 쿠팡의 뉴욕 행은 대주주가 외국인이고 본사가 미국에 있는 기업이 미국에 간 것 뿐이라며 기업의 국적을 따지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쿠팡은 엄연히 한국에서 4만 명을 고용해 사업을 하는 한국의 기업이다. 당연히 한국이라는 사회의 성장에 기여하고 지원해야 한다. 김범석 의장도 상장으로 조달 된 5조원의 자금은 한국에서의 추가 투자와 고용, 서비스 기술 개발에 쓰일 것이라고 했다. AI를 활용한 배송 기술의 개발에 투자하고 5만명의 고용을 더 늘리겠다고 했다. 전북 완주에 당장 투입되는 1300억 원의 물류센터 투자는 상장의 첫번째 선물이었다. 투자와 고용창출이야 말로 기업의 가장 큰 ESG경영인 셈이다. 

 

쿠팡의 독특한 노무시스템도 ESG측면에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쿠팡의 배송 기사는 정규직 사원이다. 자영업자로서 배달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기존 택배회사와는 다르다. 쿠팡의 배송 기사는 수수료 대신 월급을 받고 공정거래 법이 아닌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다. 당연히 상장으로 인한 혜택도 받아 목돈을 쥘 수 있게 됐다. 괜찮은 서비스 일자리로 고용을 확 늘린 이런 방식은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를 향한 쿠팡의 ESG 경영이다. 휴가 제도를 포함한 보상체계 재정립, 내부 결속을 통한 노사관계의 안정화가 향후에 이뤄진다면 젊은 글로벌 기업 쿠팡은 또 하나의 ESG성과를 경영으로 창출하는 셈이다. 

쿠팡의 배송 방식은 ESG에서 E(환경)와 관련이 크다. 1인 가구의 증가, 코로나로 인한 생활 습관의 변화로 우리는 지금 비대해진 포장의 문제에 직면했다. 배달의 빠른 속도가 주는 효율은 지난 해만도 플라스틱 18.9%, 발포수지 14.4%라는 폐기물 증가로 돌아왔다. 택배 상자와 같은 종이 폐기물도 24.8% 늘었다.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는 쿠팡의 효율을 가능케 한 원천이었지만 골목을 누비는 내연기관 차량과 집 밖에 차곡차곡 쌓이는 폐기물은 쿠팡이 해결에 나서야 할 ESG의 과제가 됐다. 지구 환경의 문제(E)에 쿠팡은 당연히 눈을 돌려야 한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규제와의 싸움에서 이룬 승리다. 자기 고객에게 배송 할 때는 화물차 허가가 필요없다는 법원의 판결로 지켜낸 게 로켓배송이다. 국내의 높은 규제와 반기업 정서는 제2, 제3의 쿠팡 키즈들에게 큰 걸림돌이 된다. 규제를 뚫고 세계 시장에 도전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은 기업이 홀로 커야 하는 한국사회에서 쿠팡 같은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의 창출(S)이다.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공동체의 화합을 다질 수 있는 공익 플랫폼의 구축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향한 쿠팡의 ESG 경영활동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부호들은 이를 이미 실천하고 있다. 

 

쿠팡이 상장되던 날, 뉴욕 증시에는 '상거래의 미래'(The Future of Commerce)라는 쿠팡의 슬로건이 새겨지고 태극기가 게양됐다. 기업과 사회의 연대를 다짐하는 장면이었다. ESG와 혁신을 약속하며 하나가 된 기업과 사회는 쿠팡이라는 기업의 꿈이기도 하고 한국사회의 바람직한 미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