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LG그룹의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농성중인 노조원들의 피켓에서 뜻밖의 구호가 보였다.

'불우이웃성금 120억, 청소노동자는 집단해고?, LG 규탄한다.'

 

불우이웃성금 120억원은 아마 지난 연말에 LG가 사랑의 열매(공동모금회)에 기부한 120억원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불우이웃돕기 성금 낸 것을 규탄하는 노조원들의 시위는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뜻밖이었다.

공동모금회는 그 투명성에서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심사 과정도 까다롭고 집행에 대한 검증도 꼼꼼하게 이뤄진다. 그래서 경기가 어떠니 해도 국내 최대의 모금 단체로 그 명성이 이어졌다.

올해도 지난 1월 20일 '사랑의 온도탑'의 수은주가 100도를 넘기면서 목표 모금액 3500억원을 넘어섰다. 만약 공동모금회가 사회적 물의나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면 그렇지 않아도 거친 한국의 노동 투쟁이 여기를 바로 덮쳤을 지도 모른다.

 

뒤집어 말해 LG그룹이 어떤 대가를 바라고 공동모금회에 기부했더라면 청소노동자들의 입장이 크게 주목받을 뻔 했다. 공동모금회라는 단체의 투명성이 역으로 LG그룹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공익법인에 기부했다가 크게 낭패를 본 기업이 많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다각도에서 오랫동안 많은 자원을 들여 지속됐다. 그런데 많은 사회공헌 사업이 기업의 현안과 연결되어 있다. 사회와의 접점은 엷어지고 사업과의 연결은 두터워졌다. 미르⋅K재단에 대한 기부가 대표적이다.
 
기업으로서는 억울할 것이고 자원봉사를 한 당사자인 임직원들은 분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와의 연계인 기부와 봉사가 권력과의 거래와 청탁이라는 프레임에 걸려버리면 나머지는 그 진정성이 의심받게 된다. 위안부 보듬이 사업이 개인의 치부와 영달로 초라하게 귀결된 데는 결국 사업 책임자의 진정성의 결여, 그 이외에는 어떤 원인도 찾을 수 없다. 

최근 들어 기업경영에 메가 트렌드로 부상한 ESG는 그 자체가 공익법인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E(환경)에 있어서 환경단체 같은 공익법인이 공세적 입장이면 기업들은 방어적 입장에 있다. 지구환경이라는 대 명제에 우선해 당장 우리 동네, 우리 회사 주변의 환경단체와 공생할 수 있어야 한다. S(사회)는 CSR로 대표된다. 기업 사회공헌의 상당 부분이 공익법인이나 사회적 기업과 연계되어 이루어진다. G(지배구조)는 공익법인과 다소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경영진이 재판에 넘겨지자 ESG평가의 한 지표인 '2018 MSCI 코리아 리더스 지수'에서 삼성전자는 제외됐다. 미르⋅K재단에 대한 기부가 화근이었다. 

대기업의 오너나 법인이 횡령이나 분식에 연루되어 사법 처벌을 받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사내⋅외로 이중, 삼중의 장치를 한다. 독립된 감사 위원회를 두고 사외이사의 비율을 상향조정하고 감사지정인제를 도입하고 특수관계자들간의 거래를 제한한다.

그런데 공익법인들과의 관계를 잘못 설정해 오너가 곤욕을 치른 경우도 많다. 멀리는 일해재단이 그랬고 가장 최근에는 미르⋅K 스포츠 재단이 그랬다. 그런데도 공익법인의 출연에 관해서는 제도적 제한이 사내에 거의 없다. 이 틈새를 사이비 공익법인이 파고든다. 묻지마 성금, 깜깜히 기부가 권력을 끼고, 정실에 따라 성행하는 이유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ESG경영은 기업에 대해 공익법인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요구하고 있다.

차제에 기업이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짚고 넘어가도록, 의무화할 것을 제안한다. 외부감사의 이행은 물론이고 모금비용과 사업비용의 비율, 사회적 물의와 결코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계량해 기부금의 산정에 필수적 사항으로 산입되도록 하자.

또한 기업의 신용평가 보고서와 같은 투명성 리포트 같은 것을 공익법인에 도입 해 줄 것을 제안한다. 이는 기부자로서의 권리를 기업이 되찾는 길이기도 하고 비리로 점철 된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바르게 정립하는 또 하나의 사회공헌 사업이기도 하다. 

빌 게이츠 부부가 설립한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코로나 팬데믹 해결을 위해 1조7500억원이 넘는 재원을 투입해 빈민국의 코로나 대응을 지원하고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도 2500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전에는 나라에서 하던 역할을 민간재단이 하고 있는 것이다. 재단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LG의인상도 기업 사회공헌의 모범이다. 기부금액이나 대상을 기업이 스스로 정한다. 그러나 누구도 LG의 진정성과 투명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상을 제정한 구본무 회장에 대해 그의 사후 찬사가 쏟아졌다. 경영자로서의 구본무 회장에 대한 평가 못지 않게 사회를 변화시킨 한 동력으로서 그의 의지가 높게 평가됐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공익법인은 평가의 예외 지대로 남아있었다. 좋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열악한 환경이라는 이유로 공익분야를 애틋하게 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동네 중국집까지도 리뷰가 붙고 평점이 내려진다. 몇몇 기업은 이미 제휴하고 있는 공익법인에 대한 한국가이드스타의 평가를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공개하고 있다. 한국가이드스타가 지난 10년간 공익법인 평가의 제도를 정비하고 심사기준을 공개해 온 것이 기업과 공익법인 모두에 유용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다.

트윈타워 로비의 농성 노동자들은 왜 불우이웃돕기 120억원을 구호로 내세웠을까? 아마 금액이 크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의 수혜자는 불우한 우리 이웃이고 그 쓰임새를 보면 오히려 그런 돈은 더 써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LG의 진정성을 공동모금회가 직접 나서서 설명해 줄 수는 없을까? 최소한 이 부분에서 회사와 노동자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LG 구광모 회장의 ESG경영은 제 궤도에 올라 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글로벌경제신문(http://www.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