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 주필
▲박현채 주필
전세매물의 씨가 마르면서 수도권 곳곳에서 전세대란이 전개되고 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조차 현재 전세로 살고 있는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 면서 집을 비워달라고 해 2억원을 더 주고 인근 전셋집을 구해야 하나 매물이 거의 없어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련 와중에 전셋값이 매매가를 넘는 아파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어 첩첩산중이다.  과거에는 환금성이 떨어지는 일부 주택에서만 전셋값이 매매가를 추월하는 현상이 빚어졌으나 최근에는 서울의 소형 아파트에서까지 나타나고 있다. 나중에 아파트를 팔아도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기 힘든 이른바 ‘깡통전셋집’이다. 

  지난달 전셋값은 수도권은 물론 5대 광역시, 지방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 올랐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9월 전국 주택 종합 전셋값은 전달 대비 0.53% 올랐다. 2015년 4월(0.59%) 이후 5년 5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수도권 주택 전셋값은 0.65%로 더 많이 올랐다. 2015년 6월(0.72%) 이후 5년3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이젠 원룸 전셋값도 가파르게 뛰는 등 전세대란은 서민주택까지 옮겨 붙었다. 더 큰 문제는 전세 물건이 아예 씨가 마르고 있다는 점이다. 부르는 게 값이 되면서 전세를 찾는 사람들은 도심에서 먼 곳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변두리로 나가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서민 주거지로 손꼽히는 지역의 전셋값도 급등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도봉구는 1월 8141만원이었던 30㎡ 이하 원룸의 전세보증금이 1억2826만원으로 뛰었다. 올해 상승률이 무려 57%에 달한다. 부동산 업체 다방이 서울의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서민 주택인 30㎡ 이하 단독·다세대·연립주택의 지난 8월 평균 전세보증금은 1억6246만원으로, 올해 1월보다 2296만원이나  올랐다. 

 전세시장의 불안은 수급 불균형이 가장 큰 원인이다. 전세 공급이 줄어드는데 반해 전세 수요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차보호 3법과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화, 초저금리 장기화 등으로 전세 매물은 갈수록 더욱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서울과 수도권에 총 13만2000가구를 추가 공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 8·4대책 발표 이후 청약을 기다리는 대기수요가 주택임대차시장으로 유입되는 등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전월세 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한 임대차법 영향으로 기존 주택에 눌러앉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세 물건이 부족해졌다. 이 조치는 서민을 위해 추진된 것이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결국 피해는 부메랑이 되어 약자들의 몫이 됐다. 이젠 신혼부부나 재계약을 못한 임차인이 새 전셋집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투기 수요를 잡고 집값과 전셋값의 폭등을 막는다는 대책들이 오히려 전세시장을 망가뜨린 셈이다. 

 문제는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전셋값이 계속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점이다. 임대차 보호법과 3기 신도시 청약 등으로 인한 전셋값 안정 요인보다 상승 요인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전셋값 상승세가 올해를 넘어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본다. 정부가 3기 신도시 등을 건설해 서울과 수도권지역에 13만2000가구의 주택을 추가 공급하기로 했지만, 입주까지 최소 3~5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분간 전셋값 오름세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갚지 못하는 ‘깡통전세’까지 등장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뚜렷한 근거 없이 “몇 달 있으면 안정을 찾을 것”이란 낙관론만 반복해 왔다. 부동산 문제의 상당부분은 정부가 시장원리에 따라 수급으로 풀기보다는 규제에 치중한  규제 폭주가 부른 화(禍)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과거의 예가 보여주듯 규제로 시장을 누를 수는 없다. 틈만 보이면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곳이 부동산 시장이다. 그래서 규제가 규제는 부르는 상상 이상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진영논리에 함몰되거나 부작용을 고려해 치밀하게 다듬지 않은 어설픈 정책으로는 치솟는 집값과 전셋값을 잡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 대표는 이번 전세보족 현상이 큰 정책 변화에 따른 과도기적 진통인지 아닌지, 정확한 전세시장의 실태 파악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한 토론회에서 “일단 정부 설명대로 전환기의 진통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현장 전문가들로 TF를 발족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전세시장을 안정시킬 어떤 보완책이 나올지 자못 궁금해진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필자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