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제.개정안 처리 방침을 천명하고 야당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마저 ‘동조’ 의사를 밝히자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재계는 연일 성명서를 내고 수장들은 돌아가며 국회를 찾고 있다. 3법은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국회에 제출됐으며 금명간 관련 상임위원회(법제사법위, 정무위)에서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공정경제 3법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으나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반대로 폐기된 바 있다.
 
한국의 재벌총수 일가는 평균 3%대 지분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공정위가 지난달 말 발표한 '2020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64곳 주식소유현황' 자료에 따르면 64개 집단 중 총수가 있는 55개 집단의 내부지분율은 57.0%다. 이 중 총수일가의 평균 지분율이 3.6%이고 계열사 지분율은 50.7%다. 총수들은 불과 3%대의 지분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너 경영의 이점은 주인의식을 갖는다는 점에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 하지만 폐해 또한 엄청나다. 금호그룹의 경우, 그룹 총수의 독단적인 기업합병 결정으로 기업이 부도나고 계열사의 연쇄 부도와 파산으로 그룹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안겼다. 삼성그룹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도 부당한 기업지배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정경제 3법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 총수의 전횡을 막고 기업과 소액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기업을 투명하고 책임있게 경영하게 하고 재벌 일가의 부당한 사익 편취를 막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3법 중 상법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통한 감사위원 독립성 강화, 감사위원 선출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등이 골자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총수 일가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사익 편취) 규제 대상을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 없이 모두 특수관계인 지분 20% 이상(현재 상장사 30%, 비상장사 20%)으로 일원화하고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부분 폐지하는 내용이다.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감독 실익이 있는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들을 하나로 묶어 내부 통제와 위험 관리를 통해 동반 부실을 막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3법 찬성론자들은 3법이 기업이익을 저해하고 시장 질서를 혼란시키는 일부 기업 총수들의 '무제한 권력남용'을 막으려는 것으로, 친기업적이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친시장질서법”이라고 강조한다. 결코 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상장기업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으로 총수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일감 몰아주기와 담합 같은 불공정 행위를 막는 장치가 어떻게 투자를 위축시키고 경기회복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이들은 “대기업들이 기득권에 매달려 언제까지 정경유착과 로비경영, 문어발식 경영 등에 집착할 것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전경련, 경총을 비롯한 6개 경제단체는 이들 3법에는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없는 독소조항들이 수두룩하다면서 경영권 위협을 증대시키고 투자 위축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더도 말도 외국경쟁국가 수준의 지원과 규제개혁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일부 전문가들도 3법이 통과되면 과거 2.99% 의결권으로 SK그룹을 공격한 소버린펀드 사례와 유사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등 국내기업이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4대 그룹 상장사 55개 중 대주주보다 외국인 지분이 많은 곳이 19개(35%)나 된다. 그만큼 헤지펀드의 공격에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투기자본 등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 경우 특정 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이나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다 보니 자기주식 매수로 공격을 막아야 하는 실정이다. 기업들이 자기 회사 주식을 사는 데 쓴 돈만 2017년 한 해 8조1,000억원에 달했다.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은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 일찍이 도입된 제도다
 
3법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투기자본의 무차별 공격 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법이라면 신중해야 한다. 외국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은 기업의 엄살이 아니다. 1999년 타이거펀드의 SK텔레콤 공격, 2003년 소버린의 SK그룹 경영권 위협, 2005년 칼 아이칸의 KT&G 공격, 2015~18년 엘리엇의 삼성 및 현대차그룹 경영 개입 등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3법 처리를 밀어붙이기에 앞서 이 같은 부작용들을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재계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경제민주화에 동참한다는 자세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펴야 할 것이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
 
필자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